나의 첫번째 재봉틀

 

 

친정 엄마는 손뜨개는 하셨으나 재봉틀은 안 하셨다.

할머니가 워낙에 바느질 솜씨가 좋아서 별 필요성을 못 느껴서였을까?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손바느질 솜씨도 좋으셨지만 늘 발틀앞에 앉으셔서 한복이며 이불보며 조각보를 만드시던 모습이다.

방학이면 할머니 옆에 붙어서 헝겊을 갖고 놀거나 창구멍을 이용 해 고름을 뒤집는 일,바늘에 실 꿰는 일,다림질,동정 달고 난 후 길이에 맞게 잘라 주는 일,남자 동정 여자 동정 구별 법,깃고대에 풀칠하는것등을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용모 또한 고우셨던 할머니는 여름이면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 적삼을 손수 지어 입으시고 외출을 하시곤 했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어쩜 그리 깨끗하고 곱게 늙으셨느냐는 질문이 잇따르는 할머니와의 외출은 내게 있어 커다란 즐거움이자 자랑거리였다.

당시 할머니, 할아버지와 우리는 따로 살고 있어서 함께 하는 그 시간이 많지 않았고 같이 살게 된 이후에는 연로하신 할머니가 더 이상 재봉틀을 안 하시게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방의 웃목을 지키고 있던 재봉틀은 시집 온 올케 언니가 가져가서 모터를 달아 개조해서 쓰고 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것들이다.

                    행주치마는 내가 중학교 때 특별히 주문을 했었다.

                    나중에 시집가서 입겠다고 한복위에 길게 내려오는 행주 치마를 만들어 달라고

                    한참을 졸라 받았다.

                    풍성한 한복 치마를 행주치마가 소담스럽게 감싸는 그 모습을 꿈으로 그리곤 했었다.

                    할머니는 간단하고 이쁜것들이 많은데 왜 굳이 옛날식을 고집하느냐시면서도

                    광목과 모시로 두개를 만들어 주셨는데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 찾을 수가 없다.

                    버선도,조각보도...... 넉넉하게 몇개씩 해 주셨건만 남은것은 몇개 안 된다.

                    내가 '결혼은 안 할거라'고 하면서 주위의 누군가가 결혼하면 선물로 주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서랍만 열면 안에 든 내용물이 한 눈에 들어와야 서랍 정리를 잘 하는 것이라지.

                    하지만 우리가 자랄 적엔 저렇게 서랍 속에 보를 덮어 보관을 하는것이 보통이었다.

                    계절 옷에 쌓이는 먼지도 그렇지만 속옷같은 것은 좀 남사스러우니까... 

                    서랍마다 색색의 조각보가 있다면 여는 손과 보는 눈이얼마나 즐거울까?

 

 

 

 

                    보를 펼쳐 보았다.

                    색 배합이 지금 봐도 이쁘다.

                    할머니가 만드시는 버선을 보면서 수눅이니 코니,어느 쪽이 안쪽인지 배웠기에

                    가사 시간엔 얼마나 들떴었는지.

                    평생을 버선만 신고 사셨던 할머니의 발등은 하이얀 발과는 달리 까맣게 죽은 색이었다. 

                    안쪽으로 가지런히 모아진 채 옥죄인 할머니의 다섯 발가락은 여장부처럼 대찼던

                    할머니의 펴지 못한 이상이었을 것이다.                                       

 

 

 

 

                    뒷면을 보니 역시 이것 저것 자투리 천으로 만드신 것이다.

                    자투리 천도 할머니의 손이 가면 고쟁이로 속치마로 조각 상보로 이불보로

                    다시 태어나곤 했었지.

                    할머니가 지어 주신 한복을 입고 찍은 가족 사진을 보면

                    할머니 당신의 한복만 낡은 것이었다.

                    대학 때는 중문과에 입학한 손녀딸을 위해 중국식 치파오를 지어 주셔서

                    학교에서는 교수님 다음으로 중국 옷을 입는영광을 누리기도 했었다. 

 

                    

                     

 

                    할머니와의 추억 때문에...그래서 아마 재봉틀을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우여곡절 끝에 재봉틀이 도착했다.

                    요즘엔 저렇게 편리한 조명 기능까지 갖춰 나오는가 보다.

                    실도 자동으로 꿰어 주고,북실도 간단하게 생겼다.

 

 

 

 

                    연습을 해 보았다.

                    할머니의 발틀은 박음질을 하면서 천을 뒤에서 계속 당겨 주었었는데

                    이것은 자동으로 나아간다.

 

 

 

 

                    바늘 땀의 모양도 여러가지.

                    

 

 

 

                    옆에서 추근대는 하나에게 한번 해 보라고 넘기고는 저녁을 짓는데

                    비상 사태라며 하나가 허둥댄다.

                    보니까 아래 북실이 한꺼번에 엉켜 버렸는데 하나를 겁 주느라 심각한 척을 해 본다.

                    왼쪽의 달팽이 모양을 하나가 박았는데 또 다른 면을 박다가 저렇게 엉킨 것이다. 

 

 

 

 

                    그 이전에 이미 그 조짐도 있었다.

                    쯧쯧쯧..덕분에 당분간은 재봉틀에 접근 불가령을 내렸다.

 

 

 

 

                    덮개를 씌워 나의 수공예용품 장에 넣으니 안성 맞춤이다.  *^^*

 

 

 

이제 남은것은 가까운 문화 센터에 등록하는 일.

올 한 해는 바쁜 한 해가 될것 같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이 어리숙한 엄마를 믿고 자신의 신발 주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