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만지기(companion )

夫...1편.

hohoyaa 2006. 9. 16. 01:15

오늘 새벽에 엄마의 밥짓는 소리에  귀가 열렸다.

'아~! 아침이구나. 학교 가야지...'

조금만 더 잘까?  하다가 어느 학교에 가야 할 지 잠시 망설여진다. 생각이 잘 안난다.

그리고 익숙하게 코끝을 간지럽히던 엄마의 음식냄새가 나질 않는다.

웬일로 덜그럭 거리며 그릇 부딪는 소리만 들리고,,,,,,

 

눈을 떠 보니 내 방이 아닌 안방이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다.

나는 결혼했구나.

그런데 부엌에서 나는 저 소리는?

남편이다.

 

그러고 보니, 아~! 지금은 어머님이 와 계시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얼른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어제 저녁 설겆이를 하고 있었다.

늦은 퇴근을 하고 들어와 보니 저녁 설겆이 거리가 개수대안에 그대로 있었다.

남편은 마침 저녁 후에 아이들 학습지 선생님이 오셔서 설겆이를 할 수가 없었고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 하기가 싫어졌단다.

훔! 그 정도는 내가 이해하쥐. 경험자니까, 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남편에게 '죽고잡냐?' 하며 평소 남편이 잘 쓰던 그 사투리를 나도 흉내 내어

심사가 틀린것을 표현하고 잠이 들었었지.

 

아마도 내심 켕기던 남편이 오늘은 새벽같이 일어나 설겆이를 하는 것이리라.

어머님도 벌써 거실 소파에 앉아 환하게 웃는 얼굴로 늦잠 잔 며느리를 맞으신다.

사실 늦잠도 아니것 같은디,6시 30분도 안 되었으니...

늘 6시면 부엌에 들어섰었는데 오늘은 6시에 일어 났다가 깜빡 잠이 들어 잠시나마 아무 책임감 없이 살았던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했나 보다.

 

요즈음 우리 집엔 어머님이 와 계신다.

허리가 너무 편찮으셔서 치료차 오셨기에 날마다 침맞으러 다니시기에도 힘에 겨운 상황이다.

어제는 어머님이 "여기 온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는구나."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야 그리 시간이 흐른것을 알았다.

나는 회사일로 신경쓰랴, 2학기로 접어 든 아이들 돌보랴,상혁이 어린이 집 알아보랴,어른 모시고 살림하랴...

나만 힘들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날짜를 꼽지 못했는데 어머님은 막내 며느리 손에 하루 세끼를 맡기고 계시면서 어지간히도 마음이 불편하셨었나 보다.

결국은 내가 건성 건성이었나 하는 죄책감도 든다.

 

이사 한 후 채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생면부지 남편의 지인들과 가족 여행을 떠났었다.

회사일이 바빠서 잠시 뜸을 들였더니 정 힘들면 애들 데리고 혼자 다녀 오겠단다.

생각해 보니 뭐 그리 잘난 여편네라고 남편에게 애들만 달려 보내 궁상스럽게 만들까 싶어 내 일을 포기하고 같이 다녀 왔다.

덕두원으로...

 

그 담주엔 어머님의 허리 때문에라도 방학이 끝나기 전 목포에 다녀 와야 할것 같아 애들과 함께 또 떠났다.

밀린 일이 바빴지만 휴가는 가고 시댁은 안가나 싶어 떠났었다.

 

 

 

청계천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딸이겠지? 며느리는 같이 안 다녀...!

 

 

 

 

남편은 어느 때에는 참으로 일방적이다.

그리고 나는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특히 부정적인 표현엔 더더욱이나 서툰 편이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혼자 속으로 삭이고 또 삭이는 편이다.

목포에 가기 전 청계사는 둘째 시누댁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늦은 시간에 술상을 봐 놓고 모두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다 파주에서 군대 생활을 하고 있는

조카 얘기가 나오자 대뜸 남편이 낼모레 서울갈때 같이 올라가서 면회를 가자고 한다.

옆에 앉았던 나는 가슴이 철렁해서 아무말도 못했다.

이사하고 정리도 못하고 왔는데,음식도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손윗시누 부부를 모시고 가자니...

이제껏 땡땡이 친 회사일도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같이 올라가시자고 남편 말을 거들었다.

불규칙적인 직장 생활로 어느 때에는 더러 출근을 안 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책상앞에 꼬박 앉아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기에 우리집에 누가 온다는 소리만 들어도 바짝 긴장이 된다.

남편은 그런 나는 안중에도 없는듯 하다.

물론 친 누나니까 아무런 흉이 안 되겠지.

그러고 보면 우리 시댁은 특별히 시집살이를 시킨다거나 말 한마디라도 서운케 하는 이가 없어 늘 남들에게 자랑하던 터였지만 이런 경우엔 갈등을 겪게 된다.

 

다음 날 목포 본가에 와서 인사 드리고 근처 사시는 큰 형님댁에 다녀 왔다.

남편은 이미 고향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고 아이들과 함께 본가로 갔더니 어머님 하시는 말씀.

"하나 아빠가 날더러 내일 같이 서울 올라가 진찰 받아 보자고 하더라."

내 머릿속에서는 시누 부부와 함께 어머님,그리고 당연히 같이 가실 아버님까지도 한데 그려진다.

당장 쌀부터 주문을 해야 하고 이불은 어찌 하누?

베개는??

회사 일은???

그리고 무엇 보다 큰 문제인 하루 세끼 식사는????

정리도 안 했는데,흉잡히면 어찌 하나?????

어머님은 계속 이야기를 하시는데 나는 속으로 그런 걱정과 함께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일을 처리한 남편에게 화가 났다. 

그래도 겉으로는  "같이 올라 가셔요. 하나 아빠가 생각이 있겠지요." 했다.

방에 들어 와 누우면서도 쉽사리 잠이 안 온다.

새벽녘에 남편이 들어 오는소리가 들리는데도 그냥 자는 척 죽은듯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엔 어머님만 모시고 올라 왔다.

작정은 1주일을 병원에 다니면서 확실한 진단을 받아 보고자 했었는데 여기 저기 알아 본 병원들이 파업때문에 진찰조차 여의치 않아 그냥 앉아서 날짜를 다 보냈다.

나는 나대로 1주일이니까 내 일을 조금만 포기하면 모두가 편하리라는 생각으로 회사일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어머님이 여기 계시니까 서울 사는 형제들이 한번씩 다녀가니 것두 3~4일 이다.

집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며느리가 밥만 먹으면 쪼르르 책상 앞에 앉아 등돌리고 있는것이 안 좋을까 봐서 일도 못하고 마음속에서는 그야말로 먹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 올라 곧 다가올 폭풍을 대비해야 할것만 같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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