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자췻방은 대학로 윗동네.
삼청동 꼭대기에 살다가 차비도 아낄 겸 이사를 했단다.
연극 공연이란것이 수지 맞는 장사가 아니라서 공연이 다 끝나고 현금으로 페이를 받기는 애시당초 기대하기 어려우니 중간중간 스폰서가 쏴주는 술이 곧 고된 노동의 댓가이자 마시는것이 남는것이다 싶어서 죽어라 하고 마신단다.
그러다 버스를 놓치거나 택시비가 없어서 집에 걸어가야하는 걱정을 덜으려 대학로 근처에 방을 얻었나 보다.
그 방에 나도 가 봤다.
구식 양옥에 문이 쪼르르르륵 붙어있는 다세대 방이었는데 내부는 제법 넓고 반듯했다.
햇빛은 잘 들지 않아 명색뿐인 창문도 하나 있었고,세면장겸 간이 부엌도 같이 딸려 있었다.
남자 혼자 사는 방이 그의 겉모습과는 달리 너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정리정돈을 잘 하는가보다고 했더니 자신은 너무 게을러서 청소하기가 싫으니까 아예 어질르지를 않는다고 하는 그 말이 너무 진지해서 유머인지 진실인지 헛갈렸다.
그 후로는 가끔씩 그 방에 갔었다.
오후 시간에는 공연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우리의 데이트 시간은 늘 이른 아침부터였다.
그렇게 다니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뭘 먹겠느냐고 물어오면 나는 라면을 먹겠다고 했다.
라면은 그냥 끓여 먹으면 될텐데 ,그리고 자기는 질리도록 먹어 봤다며 다른것을 주문하라 해도
연극 배우의 주머니가 깃털처럼 가볍다는것을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라면이나 붕어빵 이상은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낼 수도 있었지만 그건 자존심 문제라 삼가고 있었고,또 그 시절 내 지론은 절대로 남자의 밥값을 내면서까지 만나지는 말자는 주의였기에.
궁여지책으로-라면을 돈주고 사먹을 수 없는 그의 상식선에서- 자기 자췻방에서 라면을 맛있게 끓여 주겠다고 데려 가더니 나를 앉혀 놓고는 혼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지런히 라면을 끓여 왔다.
작은 소반에 수저와 젓가락을 올리고 냉장고에서 김치도 꺼내 놓고, 보니까 그 안에는 쌀통도 들어 있고 파도 썰어서 얼려 놓았었는데 그 파를 라면에 넣는것으로 보아 자취 생활에 이력이 나서 살림 솜씨가 보통은 넘어 보였다.
이 방법은 결혼 후 내가 계승 발전시켜 송송 썰은것,채 썬것,흰뿌리 부분 썰은것,푸른 잎부분 썰은 것으로 구분해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그때 그때 음식에 넣어 먹으니 파 한단을 알뜰하게 다 먹을 수 있는 잇점이 있긴 하다.
이 남자 이걸로도 잘난척 엄청한다.
그래도 식사 후 그냥 있으면 맹숭맹숭하고 결국엔 비싼 커피를 마시러 거리로 나가기도 했고,때로는 문예회관의 친구에게 가서 자판기 커피를 얻어 마시기도 했다.
나는 친구가 제일 괜찮게 생각하는 연극 배우라해서 특별히 얼굴이 잘 났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술적인 기질면에서 뭔가 특출한 줄 알았다.
사귀면서 보니까 내 눈이 너무 저급한지 그 끼가 별로 보이질 않는것이다.
친구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니 자기가 아는 배우들중 대부분은 자신의 예술활동에만 치우치고 가정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
현재 돈은 못 벌지만 최소한 가장으로서의 자기 몫은 해 낼것이다라는.
공무원이었던 친구의 눈에는 아마 그게 가장 중요한 1순위였던것 같다.
ㅎㅎㅎ
그래도 나는 내심 기대하는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우머였다.
나는 나를 웃겨주는 사람이랑 살겠다라고 했으니 나를 재미있게 해 주는 사람을 소개 시켜 주었겠지.
그런데 이사람을 만나보니 떨어진 배꼽을 찾아야 할 만큼 웃기다던 그가 하나도 안 웃기는 것이다.
처음 만나고 와서 느낌이 어떠냐는 친구에게 '별로 안 웃기더라.'했더니 조금만 더 만나 보란다.
그렇게 한 달을 만나고 일년을 만나도 별로 웃기는 일이 없었다.
남들은 모두 재미있다던데......
그랬더니 내 친구,결혼해서 살아보라고 한다.그러면 무진장 웃겨 줄거라고.
그래서 결혼도 해봤다. 하나도 안 웃긴다. 오히려 내가 웃기려고 애 쓴다.
그래도 자기는 나를 꽤 웃기는줄로 착각하고 산다.이 날까지도...
그 시절의 그는 커피를 안 마셨다.
그래서 집에는 인스턴트 커피믹스도 없었는데 어느날 원두커피를 끓여 내 오는것을 보고는 그제서야 간이 여과기와 유리 포트가 눈에 들어 왔다.
ㅎㅎㅎ근사한 카페의 커핏값이 아까워 마트에서 요리조리 물어보고 세심하게 살펴보고 골랐을 커피와 그 친구들.
그의 그런 진심 때문에 모든것이 덮어졌는가 보다.
공연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면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나는 그 시간에 다른 연극을 보면서 때로는 그의 방에서 책을 보면서,tv를 보면서 중간에 걸려오는 그의 전화에 응대하면서 그를 기다렸었다.
분장만 간신히 지우고 뒷풀이 자리에도 안 가고 들어 와서는 나보다도 서둘러서 집을 나서고 삼청동 가는 버스를 타고 내린다.
경복궁을 끼고 돌아 낙엽 깔린 길위에 운치있게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을 맞으며 걷다가 안양가는 좌석 버스를 탄다.
그리고 우리 집 앞에서 헤어진 그는 홀로 대학로로 돌아간다.
그 시간에 어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어쩌면 아무 얘기 안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마 하나도 웃기지 않는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가지는 지금도 기억한다.
혼자 돌아가는 외로움은 많이 익숙하지만 함께 나란히 앉아서 가는 길의 그 설레임은 늘 새로운 것이어서 그 먼길을 간다고.
'등신과 머저리'는 70년대에 실제 있었던 구로공단 카빈총 강도사건을 '김상열'씨가 극화한 작품이다.
실제 인물이었던 이종대와 문도석,그들은 개봉동의 어느 주택에서 가족들을 죽이고 자살했는데 그 동네가 바로 내가 살던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나는 그 사건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나에게도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그 사건이 꽤 흥미있는 일이었을까?
어느 날은 그집이라고 추정되는 집앞으로 일부러 길게 돌아 학교를 가기도 하고 굳게 닫힌 철문사이로 몰래 들여다보다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잽싸게 도망도 갔었다.
그러면서 신문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피가 흥건한 층계참과 마루가 뇌리에 박혀 마치 내가 그 집에 살면서 그 사건을 다 보고 있었던 듯한 착각까지도 들게 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는 사건제목만 듣고도 그 사건을 꿰고 있는 내가 신기하게 보였을까?
나는 그 사건의 한 인물인 문 도석 역을 맡은 그를 보면서 운명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되는 느낌을 가졌다.
그 공연을 하면서부터 그는 더욱 바빠졌고,어느 날은 연습장에까지 가서 앉아 있어 보기도 하고,공연은 되풀이해서 여러 번을 보았고,뒷풀이 때에는 그의 애인역으로 함께 갔었다.
그러면서 연극 배우의 애인이라는것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늘 일요일이면 대학로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만났었고,낮 동안은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점심은 그가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을 받았으며 저녁거릴 마련 해 놓고 공연하러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주윗사람들은 우리가 그 방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해 했다.
어떤이는 갑자기 들이닥쳐서 방문을 열게 만들었는데 우리의 모습을 보고난 후 무척이나 실망한 모습이었음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 조그마한 소반 위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그의 수첩 정리를 하거나,내가 좋아하는 레고를 조립한다거나,눈 좋아지니까 집중력이 생기니까 한번 해보자며 사 들고간 '매직 아이'책을 눈에서 눈물이 나도록 노려 보며 지냈다.
부모님께 부담 드리지 않고 주변의 협찬과 잡지사의 쿠폰으로 치러질 간소한 결혼식에 관한 계획표를 짜며 지냈다.
아마도 그 어떤이는 그런 우리를 굉장히 부러워 했을거라고 한다.
그 어떤이는 가정을 소홀히 해서 이리저리 떠돌며 생활했기에 보통의 평범하고 익숙한 풍경들이 가장 눈물나는 것이라니.
그런 일련의 소박한 단어 조합들이 나로 하여금 그에게로 마음이 가게 만들었는가 보다.
항상 자기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인정하는 용기.
그는 전혀 내 이상형도 아니었고,친구들도 모두 이전에 내가 사귀던 사람들과 너무도 다른 분위기에 설마 했었는데 사람일은 모르는것,사람의 감정은 더더욱 그 향방을 모르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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