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모 친구분 중에 그런 분이 계셨다.
무슨 복이 많아서인지 평생 남편 심부름이라곤 안 해 보신 분.
저녁이면 이부자리까지도 남편이 다 깔아 주고,그 흔한 재떨이 심부름도 안 해 보신 분.
그렇다고 해서 남편 되시는 분이 백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속된 말로 잘나가던 모 은행의 지점장이셨다.
그런데 그 자상하던 남편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배우자와의 사별도 아픔이지만 그보다 더 한것은 남편 없이 당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는것.
지금 와서 생각 해 보면 남의 얘기가 아닌듯 싶다.
결혼전에는 제법 독립적이고 쬐금 똑똑하다고 생각했었고 무슨 일을 하건 어디에서건 자신감이 있던 나였는데,남편을 만나고는 좀 달라졌다.
사실 내가 남편의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없지 않았다.
막연하게 연극 배우는 경제 관념이 없이 그저 이상을 좇는 동키호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그 가련한 연극 배우를 내가 구원해 주어야 한다고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한 것이다.
1년의 만남 긑에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어느 날 전철을 타고 가던 남편이 신혼 집 걱정을 하면서 '월세 얼마면 전세가 얼마.'하는 계산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 말고도 저런 계산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두 나와 동갑인데.
그래서 내 무식을 들통내는 용기를 내어 그런 계산이 어떻게 나오는것인지 물어 봤다.
그랬더니 시중 이자가 천만원에 얼마면 월세,전세 계산이 나온다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는 것이다.
아~! 나는 감동을 했다.
그렇게 세상사에 밝은 동갑내기가 너무 존경스러웠고 무엇보다 면박주지 않고 조근 조근 설명해 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시중 이자는 어떻게 아느냐고 감히 물어 보지를 못했다.
남편도 이미 그때 짐작을 했겠지. 내가 경제면에서는 쑥맥인것을.
남편이야말로 나보다도 훨씬 강하게 땅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서울내기인 나는 그저 뜬 구름잡는 허풍선이였던 것이다.
우쨌든 어찌 어찌해서 결혼을 하고 내 인생은 달라 졌다.
무슨 일이든 내가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성미에 안 차던 내가 어느 새인가부터 모든것을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애를 둘 낳아서 13년을 키웠지만 남편의 도움(차량 포함...)없이 움직여 본적이 거의 없는것 같다.
마트건,은행이건,친정이건,,, 늘 남편과 함께였다.
그래서 사실 애들을 포대기로 야무지게 업지도 못했다.
이제껏 이사를 여러번 다녔지만 한번도 내가 동사무소나,아파트 관리 사무소,이삿짐 센터,부동산 등등 내가 일을 처리해 보질 못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해야 짐을 다 부리고 나를 태워 갈 남편만 기다리면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남편이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혼자 일을 봐야 했던 것이다.
남편 없이 더구나 애들을 데리고 이사를 한다는것이 너무 마음에 짐이 되어 짜증이 다 났다.
남편은 남편대로 내가 걱정이 되는지 미리 미리 여기 저기 연락 해 놓고 결국엔 자신의 스케쥴을 늦춰가면서까지 최대한으로 내 편의를 봐 주고 떠났다.
그 후로도 칠칠치 못한 마누라가 걱정되는지 한시간이 멀다하고 전화로 물어 보고, 격려하고, 코치하고, 부탁하고...
나는 오늘 난생 첨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 신고도 하고 잘난척 하고 싶어서 남편을 위한 주민등록 초본도 떼어 왔다. ^^;
그리고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삿짐 센터, 가스회사,통신 회사 사람들을 진두 지휘했다.
좀전에 걸려온 남편의 전화에 대고는 에고에고 힘든 양도 부려보고
'임무 완성 이상무'를 자랑스레 외쳐도 보고.
이제는 남편에 의한 배려 중독에서 서서히 벗어나서 홀로 서기를 연습해도 될것 같다.
남편 말대로 내가 더 오래 살게되면 닥칠 가시밭 길을 미리 예습을 해 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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