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상혁이의 혼자 놀기

hohoyaa 2006. 5. 1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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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그래도 세 살까진 내가 곁에 있었다.

결혼 전 다니던 직장을 다시 나가기까지 근 3년간은 아르바이트 식으로 집에서 일을 했었다. 

 

다시 본격적으로 사무실로 출근을 하게 되자

그 시간동안 떨어진 감각을 되찾느라 정신없이 보낸 세월이 수년이었고.

안양에 아파트를 분양받고 IMF가 터져서 중도금 마련하느라 이 곳 남양주까지 오게 되었다.

이 곳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것이 친정 선산이 있어서 해마다 추석이면 새벽밥 먹고 할아버지 손 잡고 집안의 어르신들과 늘 다니던 곳이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안양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었는데,

6년만에 갖게 된 상혁이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울 친정 부모님도 안양에서 이곳으로 옮겨 터를 잡으시는 바람에

당장 안양으로 돌아가면 애들을 어찌 할 수가 없어 그만 눌러 앉게 된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상혁이 생일이 12월 8일인데 12월 5일쯤까지 회사를 다녔었다.

임신 했다고 눈치 주는 이는 없었지만 누가 예정일을 물어 오면 아직 멀었다고만 했다.

이상하게도 내 자신이 초라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니메이션같은 직업의 특성상 출퇴근이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집에서 9시에 길을 나서도 회사 도착하면 11시였고 퇴근은 늘 10시니 12시나 되어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되고 말았다.

왕복 4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기특도 하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 친정 엄마는 울 하나를 알뜰하게 돌봐 주셨고,하나 아빠도 최선을 다해 도와 주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부러 서울에 볼일이 있다고 나를 회사가 있는 양재까지 태워주곤 한것이 그 중 한가지였다.

덕분에 하나는 방학이면 과천 '서울랜드'를 제 집 드나들 듯 했으니...

하루종일 질리도록 놀다가 회사앞에서 만나 세식구가 같이 퇴근을 하는 날이 많았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오던 해 겨울.

상혁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곧 한두달 후면 새로운 작품이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상혁이를 백일까지나 봤을까?

 

그 전까지 세식구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갓난애까지 네 식구가 길거리에서 상봉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집에 오셔서 상혁이를 봐 주시던 큰시누님의 퇴근길에 바통 터치 하듯이...

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엄마의 손을 타지 못햇던 하나는 그래서 살이 안 찌는가 싶기도 해서 늘 미안하다.

 

그래도 세월은 가느니,어느 새 상혁이도 저리 커서 하나 아빠 쉬는 날엔 어김없이 서울의 용마산 공원으로 나왔다.

내가 갈아타는 전철이 7호선이라 그 곳에서 늘 헤어졌었는데 오랜 습관 탓인지 우리 애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울지도 않았다.

물론 살뜰하게 보살피는 아빠가 있어서겟지만.

 

나는 늘 저 사진만 보면 눈물이 나온다.

혼자 노는 상혁이의 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물가에 앉아서 상혁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 아빠는 '아빠가 같이 잘 놀아 주고 사진도 찍어 줬는데 뭐~.' 라고 하지만...

하긴 다른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에 비하면 행운일 수도 있겠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가까이 계시고 아빠도 잘 놀아 주는 편이니까.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상혁이를 가졌을 때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가슴아파 운적도 있었길래 혹시 애가 우울한 성격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었는데 다행히도 밝게 자라주니 고맙기만 할 뿐이다.

 

두 녀석이 경쟁하듯이 하루종일 내 볼에 뽀뽀를 해 대고 머리카락 속에다가 코를 박고 킁킁대는 이유를 나는 안다.

하나가 아직도 안방에서 같이 자는 이유를 나는 안다.

퇴근하는 문소리에 자다가도 나와서 안아 달라고 팔 벌리는 그 마음을 나는 안다.

내 베개를 가지고 냄새맡고 껴안고 뒹구는 그 마음도 나는 안다.

 

더 이상 아이들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제발~'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게로 오는 애들을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자꾸 밀어내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