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이의 글씨에 대해 속상한 글은 블로그에도 몇번 올렸었다.
6학년인데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글씨.
그래도 자꾸 글씨갖고 나무라면 아예 쓰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까봐서 부러 무심하게 지나쳤다.
오늘도 방에서 숙제를 하던 상혁이는 노트를 갖고 나와서 나에게 말을 시킨다.
"엄마, 제말을 끝까지 듣고 속상해하지 말고 저에게 격려를 좀 해주세요."
녀석이 시작하는 말은,
오늘 선생님이 한석봉의 후예에 부끄럽지않은 반이 되자며
글씨를 못쓰면 벌점 자석을 게시판의 단체사진얼굴에 붙이겠다고 하시면서 예를 드신 노트가 바로 상혁이의 노트였단다.
글씨를 못쓰기도 했거니와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다며
어디 나가서 우리학교 전교회장이라고 하면서 글씨쓰지 말라며
그리고 6학년 5반이라고 말하라고(상혁이의 반은 6학년 2반이고 5반은 없으니 5반 학생은 상혁이 혼자라는 말이다.) 아이들앞에서 농담아닌 농담처럼 말씀하셨는가 보다.
상혁이는 자기가 글씨를 못쓰는 것은 사실이니 인정을 하지만
정성이 안들어갔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숙제장의 글씨는 말그대로
날아간다.
하지만 아이들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준 선생님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좋을리만은 없었다.
5학년까지만 해도 학교가 좋아서 일찍일찍 등교를 하더니
6학년이 되어서는 등교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그리고 부쩍 5학년 때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하더니 여름방학에는 꼭 전근가신 선생님을
만나러 가겠다며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는 눈치이다.
숙제가 너무 많다고, 어느 때에는 며칠 전과 같은 내용의 글짓기를 며칠째 계속 숙제로 쓰고있는 아이가
왜 선생님이 같은 글짓기를 자꾸 써오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면 늘 선생님편을 들었었다.
아마도 너의 글짓기가 형식에 안맞았는가 보다.
아마도 내용이 너무 장황하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이번엔 너무 요약을 했나보다등등 같은 내용의 글을 쓰고 또 쓰게 시켰다.
이번에는 선생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점점 글씨쓰는 자체가 아이에게 버거운 일이 되었던지 글씨체는 계속 나빠졌다.
상혁이는 늘 글씨때문에 내게 잔소리를 들었으니 아마도 오늘의 일을 털어놓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자식이라 그런지 오늘은 선생님의 편에 서기보다는 우리 아들의 마음에 공감을 해주고 싶었다.
반 친구들 앞에서 실명을 거론당하며 그런 말을 들었으니 속상했겠구나.
엄마가 상혁이의 입장이었어도 기분이 안좋았을 것 같애.
무릎에 앉은 상혁이는 설움이 북받치는지 대성통곡을 했다.
글씨는 못쓰지만 장난으로나마 이런 그림을 그리면 나는 기분이 좋다.
시튼 동물기를 보고 그저 심심해서 그린 낙서지만 기특해서 스크랩을 해두었다.
이미 돌아가신 고모께 편지를 쓰는 정많은 아들이다.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글씨지만 독후감의 내용은 좋았는가 보다.
지금도 우리 상혁이가 글씨를 좀 잘썼으면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글씨를 잘써야하는 이유도 말해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루 30분씩이라도 엄마와 글씨쓰기 연습을 해보자고 했다.
아마 선생님도 상혁이의 글씨가 안타까워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고 상혁이라면 충분히 잘 쓸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아이를 위로했다.
하지만 며칠전 알림장을 내고 돌아서는 아이의 뒤로 선생님이 혼잣말처럼 하신
"꼭 자기 얼굴처럼 글씨를 쓰는군......."이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에 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쩌랴~. 우리 상혁이나 나나 상혁이의 글씨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인정하는데.......
선생님도 오죽 알아보기 힘들었으면 그러셨을까 싶다. ㅠㅠ
오늘아침 갑자기 상혁이의 이닦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더라니
오늘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랬는가 보다.
글씨도 양치처럼 오른손을 사용하면 좀 덜 지저분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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