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고3 딸이 엄마에게 선사하는 시. "뿌리에게"

hohoyaa 2012. 4. 28. 02:45

야자를 끝내고 돌아온 아이의 얼굴이 밝다. 

씻으러 욕실에 들어간 아이에게서는  연신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고3이라고,피곤하다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돌아오는 딸이 아니라 고맙기 그지없다.

 

무슨 기분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특별히 엄마를 위한 감동적인 선물을 준비했다고 맞춰보라고 하는데,

나는 선물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이해를 하고 "문화상품권?" 하고 답을 한다.

고개를 설래설레젓는 딸아이는 힌트가 '아마존수족관'이란다.

'아마존수족관'이란 이름이 익숙한 듯하여 나는 또 "물고기 받아왔니?" 하며 봉창두드리는 소리나 하고.

-엄마,엄마는 '아마존수족관' 몰라요?

-응, 그게 뭔데? 어디서 들어는 본 것 같은데.......영환가? 책이야?

-엄마, '아마존수족관'은 시야.

-그래? 시인은 누군데?

-아,누구더라?? 생각이 안나네.......

 어쨌든 아마존수족관에서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시를 선물하는' 거라고 나오는데, 딱히 부정적인 상황에 처한 건 아니지만 시험 공부를 하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시를 선물하려고~ ㅎㅎ

 

 

 

싱그러운 초록물이 오른 딸아이는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어준다.

-엄마, 엄마는 이 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애?

-글쎄...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그런거?

-맞아, 희생이야. 그래서 엄마생각이 났어.

 그리고 이 그림도 내가 직접 그렸는데 왜 땅과 하늘만 색을 칠했는지 알아?

-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까, 앞으로 어느 색으로든 채색될 수 있어서?

-아니야.

-그럼 투명하듯 순수해서?

-아니~.

-아하, 색연필이 더이상 없어서?

-아휴~,엄마는. 이건 말이지 땅과 하늘은 엄마 아빠라 생각을 했어.

 내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들이니까 강조하고싶었지.

 

 

 

뿌리에게- 나희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 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 테니.


 

 

'아마존수족관'이란 시를 찾아보았다.

최승호시인의 시다.

내가 이 시의 제목이 제법 익숙했던 이유가,

 

최승호(55·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 시인이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 문제를 풀어 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고 18일 말했다. 그가 풀어 본 문제는 2004년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였다. 최씨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 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돼 왔다. 그는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며 쓴소리를 했다. 최 시인은 올 8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국어교사 400명을 대상으로 ‘시의 이해’를 강의했다. 이 자리에서 수능 시험과 고교 시 교육에 대해 직격탄을 날려 화제를 모은 그를 만났다.

-자신이 쓴 시가 나온 문제를 틀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언젠가부터 내 시가 교과서나 각종 수능 모의고사에서 나오고 있다더라.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 본다. 시를 몸에 비유해 보자.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학생들에게 살과 피는 빼고 숨겨진 뼈만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틀리는 게 아닌가 싶다.”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내가 쓴 ‘너구리, 너 구려. 너 구린 거 알아’라는 시를 보자. 이게 모국어의 맛과 멋이다. 그런데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思潮)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 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 ‘가래침’ 같은 거다.”

-시인의 시 ‘북어’에 대해 고교 참고서는 ‘시인은 부당한 독재 권력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못 하는 굴종의 삶을 비판한다’고 풀이했다. 이건 맞나.

“그것 봐, 또 한정한다. 1979년 사북에서 전두환 정권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 쓴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시는 죽음의 탐구로 볼 수도 있다. 작품은 프리즘과 같아서 눈 밝은 독자를 만나면 분광하며 스펙트럼을 일으킨다. 이런 해석은 노을을 보고 허무·열정의 이중성을 느끼는 사람에게 ‘빛의 산란’이 정답이라고 못 박는 꼴이다.”

-객관식 시험이라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사람 사이의 대화나 교류가 일어나는 곳은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다. 그런 골짜기에서 나오는 메아리가 중요하다. ‘나는 이 산꼭대기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저쪽에도 또 나름의 산맥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산과 산 사이에 골짜기가 생겨난다. 오지선다 시험은 골짜기를, 골짜기 사이에서 나오는 메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행 교육의 문제가 뭐라고 보는가.

“요즘 국회가 하는 일을 보자. 골짜기가 없다. ‘사이가 좋다’는 말처럼 사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이가 없는 거다. 여당과 야당, 중앙과 지방이 대립하는 세종시 문제도 그런 거 아닌가. 참 답답하다.”

-그렇지만 수능은 15년이 넘은 시험이고, 아주 엄밀한 과정을 거쳐 출제된다. 이의 신청을 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고 싶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건지…. 그렇지만 문제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거 같다. 나는 감정과 예술의 자리에서 얘기하고, 수능은 이론과 논리의 자리에서
-그럼 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웃는 것, 안목을 높여 주는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감상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지금 여기 경험의 총체이니 그 경험을 최대한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면 좋겠다. 어린이가 덜 자란 어른인 게 아니라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일 뿐이다.”

-학생들도 시를 쉽게 쓸 수 있나.

“시인은 언어의 요리사고 작품은 음식이다. 독자는 미식가고, 맛을 음미하면 된다. 나는 쉽게 언어를 물감처럼, 음표처럼 사용한다. 시 ‘숫소’는 증기기관차처럼 콧김을 뿜는 수소가 빼빼 마른 백정에게 맞아 쓰러지는 얘기다. 의미에 연연하지 말고 더 많은 작품을 즉물적으로 감상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 

이원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최승호 시인은=1983년 출간된 첫 시집 『대설주의보』 이후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고비』 등 문제작들을 내놓으며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딸덕분에 새로운 시의 세계를 알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