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일을 하는 주부로서 간혹 반찬투정을 하는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에서 여기 이 부엌만은 절대적으로 엄마의 구역이야.
잡곡밥을 하든 현미밥을 하든 엄마가 선택할 수 있고 반찬또한 엄마의 영역이야.
나름대로 성의껏 준비하는 음식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든지 기어이 불만이 있으면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 먹든지."
이런 한마디면 대개는 혼비백산하는척 엄마의 비위를 맞추느라 머리를 조아리며 나의 식탁으로 모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집에서 흔한 풍경이다.
이번에 리뷰어로 선정되어 읽게된 리처드 랭엄의 '요리본능'은 '요리하는 자, 지구를 지배하다!!'라는 부제처럼 결국 '요리는 권력'이라는 평소 나의 지론을 확인시켜준 책이었다.
언젠가부터 건강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화두로 떠오르게 된 생식과 유구한 역사에 비례해 그 부작용또한 적지 않은 화식.
아마도 화식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성인병의 원인이 된 비만이나 암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고픈 것이 그 시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식품을 불로 익혀 먹으면 치아와 소화관의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화 체계도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에 익히면 음시의 화학적 구조가 달라진다.전에 없던 독소가 생기기도 하고,있던 독소가 없어지기도 한다.이를 먹는 우리의 소화 효소에도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복소고리식 아민과 아크릴 아마이드같은 메이야르 화합물을 살펴보자.이들 복한 분자는 당분과 아미노산의 결합으로 시작하는 화학번응에서 생성된다.메이야르 화합물은 신체 내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데,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생긴다.
이 화합물은 자연샹태의 식품에서는 낮은 농도로 발견되지만 불로 익히거나 연기로 그을리는 등 가열 과정을 거치면 그 농도가 매우 높아진다. 구운 돼지 껍데기나 빵껍질이 갈색을 띠는 것은 바로 이 물질 때문이다.메이야르 화합물은 박테리아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물질이며 인체 내에서는 몇몇 암을 유발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한 만성 염증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생식주의자들은 바로 이 가능성을 뿌리 뽑은 덕분에 자신들의 건강이 좋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화식가설은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인간은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메이야르 화합물에 노출되어 왔기 때문에 다른 포유동물보다 그 피해에 대한 저항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비만이나 당뇨,또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인 암의 공포로부터-탄 음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체요법이 성행하고 절대적인 생식을 권하는 경우도 보았다.
실제로 생식주의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렸더니 응답자들은 생식을 하는 목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질병을 예방하려고','오래 살고 싶어서','자연에 맞춰 살려고'등을 꼽았다고 한다.
요리 본능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누구보다 건강한 인생을 꿈꾸는 욕망을 채워 줄 방법으로 화식보다는 생식을 그리고 고기보다는 야채를 선호하는 경우 그것이 우리 인체는 물론 인류의 생존에까지 영행을 주는 부작용에 든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의 영양학자 코리나 쾨브닉의 '기센 생식 연구'를 보면 생식주의자가 겪는 심각한 에너지 결핍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여성은 생식을 많이 할수록 체질량 지수가 낮아졌고 생리가 완전히 중단되거나 불순해질 가능성이 컸다.완전 생식을 하는 여성의 경우 50%는 생리가 완전히 끊겼고 10%는 생리불순을 겪었다고 한다. 생식을 하는 남성 또한 성 기능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위에서 보다시피 우리 인류가 불을 이용한 화식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미 이 지구상에서 멸종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익히면 음식이 더 안전해지고 맛이 더 진해지며 변질이 덜 된다.뿐만 아니라 질긴 음식도 자르고 으깨기 쉬운 상태로 변하며 우리가 그로부터 얻는 에너지의 양이 늘어난다. 최초로 음식을 익혀 먹은 사람들은 이처럼 추가된 에너지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고지에 서게되어 생존률과 번식률이 높나져 유전자를 더널리 퍼뜨릴 수 있게되었다고 랭엄은 주장한다.
그러나 화식과 생식을 그 기능면에서만 비교하려하면 섣부른 판단이다.
익힌 음식은 익히지 않은 음식보다 맛이 좋으며 야생동물 또한 익힌 음식의 냄새와 맛, 감촉을 좋아하도록 사전에 적용되어 있다는 설이 있다.이와 관련해 이 책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 인간과의 의사소통 방법을 학습한 암컷 고릴라 '코코'가 그것이다.
코코는 익힌 음식을 좋아한다. 인지 심리학자 '패니 패터슨'은 "나는 비디오 녹화를 하면서 코코에게 채소는 익힌 것(내 왼손을 지정하면서)이 더 좋은지, 아니면 날것/신선한 것(내 오른손을 가리키면서)이 더 좋은지 물었다. 그러자 코코는 내 왼손(익힌 것)을 만졌다.그래서 나는 한 손은 '맛이 좋아서', 다른 손은 '먹기 쉬워서'로 정하고, 익힌 채소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코코는 '맛이 좋아서'쪽을 가리켰다. "
만약 화식의 장점을 일찌기 자각했더라도 생식에 비해 맛이 월등하지 않았다면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오는 중요한 요리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부엌에서의 절대 권력자 엄마는 화식과 생식을 적절히 배합해 우리 가족이 생존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만들 의무가 있으며 영양만큼이나 중요한 맛에 대해서도 한 점 흐트러짐없도록 다양한 요리법을 습득하기 위해 오늘도 두 손에 조리도구를 불끈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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