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커피맛도 모르면서...

hohoyaa 2010. 5. 23. 07:30

그 동안 블로그에 심히 소홀했다.

많이 게을렀다고 자책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딱히 잘 쉬었다고도 할 수 없고,

지난 이틀간은 거의 밖에서 지내고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일찌감치 눈이 떠져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려고 에스프레소를 내려본다.

 

에스프레소를 마신다하니 내가 커피깨나 아는 줄 알지만 난 커피맛도 모르면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단지 양이 적어 부담이 없고 진한 맛의 여운이 좋을 뿐이다.

학교 앞 카페에서 사이펀 커피가 한창 유행할 때 양이 적은 커피를 마시고 싶어 소개받은 에스프레소.

그 카페 주인은 젊은 남자였는데 간혹 커피 이야기를 하면서 마주 앉을 때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각종 커피기구들의 향연이 무르익을 무렵 그 남자가 길다란 다리를 슬쩍 꼬아 올리면 위로 걷어올라간 바짓단 아래로 여자들이 신는 살색 스타킹이 드러나곤 했었지.

요즘에야 남자들도 신는 스타킹이지만 근 30년 전 당시에는 우리를 충분히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늘 그 스타킹속 털이 부숭부숭하던 그 남자의 다리가 생각난다. 난 그 스타킹 신은 남자에게서 에스프레소를 소개받았다.

'거미 여인의 키스'를 읽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그 스타킹을 생각하노라니 이런 기막힌 상황이 재미있다.

 

 

평상시처럼 가스레인지에 포트를 올려볼까하다가 비도 오니까,모처럼만에 느긋한 기다림을 즐기고자 워머에 올려 본다.과연 될까하면서 올려놓고 2분여를 기다리니 커피가 추출되기 시작한다.

마침 '거미여인의 키스'도 다 읽고 작품해설을 보면서 기다리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울 아들녀석 어느새 이 엄마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나 보다.

엄마를 놀래켜 주려고 살살 기어나오는 스치는 소리가 내 귀에도 똑똑히 들리거늘 짐짓 모른척하며 이제나 저제나 나를 놀래켜 주길 기다리니 촛불위에서 커피가 나오는 광경에 제가 먼저 놀란다.

 

 

 

 

 

 

내일이면 다시 한주일이 시작되고 블로그에 기록도 열심히 하리라고 다짐해보는데

지금도 아들녀석이 어찌나 수선스럽게 다니는지 한마디 쏘아붙이고 나니 커피맛이 쓰다.

 

나중에.......

 

괜시리 퉁박먹은 아들은 엄마 컴퓨터한다고 커피잔을 노트북 옆으로 옮겨놓아주고 다 마신 커피잔을 깨끗이 씻어 올려 두었다. 내가 몬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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