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중학교 2학년 큰 아이의 중간고사가 있었다.
과외나 학원을 안 다니기에 시험 때가 되면 은근히 불안해지는 게 엄마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다.
제 방에 책상이 있음에도 꾸역꾸역 식탁 앞으로 공부거리를 들고 오는 딸아이를 보며 아울러 공부하는 책도 슬며시 넘겨다본다.
우리도 배웠던 같은 제목의 교과목인데 그 내용은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느 과목은 재미있다고 흥얼거리며 공부를 하고 수학과목에서는 안 풀린다고 남들처럼 수포(수학포기)를 할까 고민을 하고 , 그래도 끝까지 풀어서 답이 나오는 희열을 맛보고 싶어 새벽 2시까지 문제에 매달리고 풀어보고, 맞춰보고.
그런 아이를 보면서 왜 그렇게 세상은 급변하는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고 외워야 할 것들은 초단위로 생산되어져 자고나면 머리맡에 한 무더기이다.
할수록 어려워지는 수학문제와 몰입영어로 골머리를 썩히다가도 내신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암기 과목이 있으니 효율적 시간 분배를 위해서는 아예 전 과목 학원에라도 다녀야 안심이 될 것 같다.
게다가 연일 터지는 사건 사고가 후일에는 교과서에 기술되어져 입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신문도 열심히 봐야하고 논술이 있으니 책도 읽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부족하니 족집게 논술강사에게라도 가봐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야 아이의 학업 뒷바라지를 좀 할 터이니 대부분의 가정이 사교육비 조달을 위해 돈을 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딸아이의 학교 아이들 중에는 학교에 와서 부모 욕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왕따나 학교 폭력도 무섭지만 감히 자기의 부모를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모독하는 그 아이들
얘기를 들으면서 섬짓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딸 아이 말로는 그런 아이가 한 둘이 아니라는데.
들어 보면 그 부모들이 그리 욕먹을-더구나 자신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뒷바라지 해 주고 있는 자식에게서 그런 쌍욕을 먹을 부모는 더구나 아닌 것이다.
그 아이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친구를 잘 못 사귀어서?
가정교육의 부재일까?
인터넷의 부작용일까?
학교교육의 폐단일까?
대만작가 호우원용의 ‘위험한 마음’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이나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위험한 마음은 대만의 중학교 3학년생인 시에 정지에에게 일어난 담임의 부조리한 체벌과 후폭풍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초반에 나오는 정지에는 여동생의 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찾으러 다닐 정도로 지극히 정상적인 학생이다.
그러나 이미 끝나버린 교과 과정에 있던 일회성 누에는 더 이상의 효용가치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어른들의 인식은 모든 대상을 수단으로만 취급하고 있는 작금의 교육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쉽게 얘기한다.
“이 담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네 앞에 펼쳐진 기나 긴 인생의 여정에 비하면 12년간의 학교 생활은 그리 긴 것이 아니다.
6년만, 3년만, 일 년만이라도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그 이후에는 모두 네 세상이다.”라고.
우리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던 말이기에 그만큼 쉽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입시로 점철된 학창시절을 지나오니 우리 앞엔 또 다른 장벽들이 줄지어 가로 막고 서있다.
단순히 외우고 참고서를 뒤져 봐야 해답이 안 나오는 엄청난 거대 현실 앞에서 우리는 절망을 하고 왜 학교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원망도 해 보지만 내가 진저리를 쳤던 획일화 된 그 교육의 틀 안에 지금은 우리 아이들을 가두고 무감각하게 사육하고 있다.
학교라는 철창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억눌린 아이들의 살아있는 마음은 어디론가 분출 될 곳을 찾아 방황하게 마련이다.
주인공 정지에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숱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힌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고 끝내는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아니면 스스로가 답이 없는 이 세상에 대해 입을 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 다른 사람들은 다시 그들의 자리를 찾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웃으며 이야기 한다.
언젠가 정지에가 말문이 트이면 몇 시간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겠노라고 약속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대만의 교육현실이 우리나라와 너무나도 닮아있음에 적잖이 놀랐다.
어쩌면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선 학문을 접해야 하는 동양권의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만히 보면 요즘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이나 음악, 미술, 특기적성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시간표는 오로지 국영수 위주로 짜여져 있으니 학생들의 정서함양 시간은 그 설자리가 없는 듯하다.
공부가 인생의 다는 아니라고 누누이 말은 하면서도 결과론 적으로 놓고 볼 때 공부가 아니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또 어떻고.
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인성 교육을 시간표에서 몰아내고 있는가.
딸아이의 도덕책에는 우리가 이론으로 알고 있는 삶의 근본적인 성찰이 중요한 덕목으로 올라 있는데 왜 실생활에서는 도외시 되는가.
그러면서 일이 날 때마다 요즘 아이들이란...하면서 혀만 끌끌차면 되는 것인가.
무한경쟁 속으로 내몰린 8차 교육과정에 있는 우리 딸과 그 친구들의 마음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인생의 황금기인 청소년기를 캄캄한 암흑과 같은 터널 속에서 걷고 있는 그들은 태양이 찬란한 금빛이라는 것을 이론으로만 알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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