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이혼 지침서

hohoyaa 2008. 4. 16. 21:24

 

<민정씨의 선물> 

 

 

 

 

요즘 부쩍 꾀가 늘어 자꾸 게을러지는 상혁이는 자기도 얼른 커서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고 시험도 안 보고 매사에 룰루랄라 즐겁게만 살수 있다고 여기는지...

남편은 얼른 아빠가 되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데 공부를 못해서 직업이 없으면 여자들이 결혼도 안해준다.

직업도 없는 남자랑 결혼 할 여자가  세상에 너희 엄마말고 또 있겠느냐고 대꾸를 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인연이란...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무슨 용기로 결혼을 했는지.

우리 부모님들은 그 속이 어떠셨는지.

실제적으로 조건을 따져야할 것은 아무것도 따지질 않았으면서도 나도 나름대로 까다롭게(?) 내세운 조건이 한가지 있긴 있었다.

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을 때 내 입에서 이혼하자는 말이 나오면 깨끗하게 이혼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조건이 바로 그것이다.

남편은 두말없이 동의했었고 알량하나마 전셋돈을 다 달라면 다 주고,딱해서 반만 가질테니 너도 반만 가지라하면 주는대로 받겠고,자기더러 나가라면 나가주고 ,아이들은 내가 키우겠다하면 그렇게 해주고 못키우겠다 하면 자기가 키우겠다고 덧붙여 약속을 했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확실하게 못을 박고 한 결혼이라 이제까지 숱하게 부부싸움을 했으나 한 번도 이혼이란 말은 뱉어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이혼을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누구네처럼 남편 겁주려고, 기선 제압을 하려고 ,욱하는 마음에라도 이혼하잔말은 해 보질 않고 살았다.

이혼이란 말이 나오면 우리는 진짜 이혼을 할 것으로 알고 살았기에 빈말로 쉽게 내뱉는 그 이혼이란 말의 가벼움이 난 너무 싫었다.

 

이번 5월1일이면 결혼 14주년이다.

아직까지 별탈 없이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는 부부인가하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일년에 한두 번씩은 크게 싸우던 부부싸움의 횟수가 줄어가는게 아마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는 증거겠거니하며  그날 그날을 살아넘긴다. 

그런데 가끔가다 남편은 헐리우드 스타들의 혼전 계약서처럼은 못할 망정 언제든지 원하면 이혼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결혼했던 지난 날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찔러본다.

괜한 객기였을지는 모르지만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내게는 이혼이 결혼만큼 참 중요하게 생각되어졌었다.

특별히 내 주위에 이혼으로 인해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있어서 그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것도 아니면서 '최선의 것을 희망하되 최악의 것에 대비하라'는 학교 화장실 문에 붙어 있었던 경구처럼 두사람이 만나 함께사는 것보다 잘 헤어지는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게 생각되어졌던 것이다.

 

'이혼지침서'는 세가지 소설로 이루어진 책이다.

쑤퉁은 이미 '눈물'로 알게 되었고

그 쑤퉁의 '처첩성군'이 영화 '홍등'의 원작인 것은 이번에 알았다.

첫번째 이야기 '처첩성군'을 읽으면서는 비슷한 류의 또다른 중국소설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그 제목이 확실치가 않다.

아마도 첩을 많이 거느리고 살던 어느 집안의 이야기로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은 나지만 작가나 제목은 전혀 감깜이다.

그래서 읽은 책은 반드시 짧으나마 기록을 해야 하는데......

영화 '홍등'은 보았으나 '붉은수수밭'처럼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는 아니었기에 대충 장면만 기억난다.

세번째 이야기 '등불 세개'는 많이 아쉬웠다.

만약 우리나라의 조정래같은 작가가 이 글을 썼다면 향토색 짙은 사투리로 그 이야기의 감칠맛을 훨씬 잘 살려 냈을텐데 아무래도 번역의 한계인지 다소 부자연스럽게 귀를 울리는 딱딱한 목소리가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등불 세개'에서 작가가 최근에 발표한 '눈물'과 오버랩되어지는 부분도 발견하게 되어 흥미로웠다.

두번째 이야기 '이혼 지침서'라는 제목에 난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유쾌한 소설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좀 짜증이 났다.

이혼을 결심한 한 남자와 죽기살기로 그 이혼을 피해 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아내를 보면서 내가 결혼을 앞두고 우려했던 그 상황을 보는 것 같아 끔찍했다..

아~! 난 그래서 미리 이혼을 생각했던 것이다.

난 어느 날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통보받기가 싫었고 치사하게 바짓가랑이에 매달리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리고 내가 이혼을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결혼을 무덤삼아 산 송장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던 거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던 한 번 날아가 버린 마음을 붙잡으려고 빈 허공에 손을 내미는 자체가 너무 하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을 해 본다.

과연 나는 이혼을 할 용기가 있는지,

이혼 후 내 생활을 해 나갈 능력이 있는지,

이미 나는 안락한 결혼 생활에 길들여지고

남편의 눈길에 길들여졌고

아이들을 우리 가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길들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