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에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상혁이는 다짜고짜 오는 토요일엔 '탑'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갑자기 무슨 노래방??
'엄마,아빠 그리고 누나랑 같이 탑 노래방에 가야 돼,거기서 조 윤덕이랑 만나기로 했어.'
'몇시에? 왜?'
'그냥 토요일에. 약속했으니까 가야 돼.'
'ㅎㅎㅎ너희나 가라.누나랑 갈래?'
'아니야,엄마 아빠도 같이가~.'
'엄마는 재미 없어.'
'아니야~? 엄마도 재미있어. 거기 탑 노래방옆에서 막걸리도 판대.'
'뭐? 너 막걸리가 뭔지 알아?'
'아니,윤덕이가 그러는데 우리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부르고 엄마랑 아빠는 막걸리 마시면 된대.'
그렇게 생각나면 졸라대는 상혁이 때문에,옆에서 거드는 하나 때문에 어젠 우리 4식구가 노래방에 갔다.
탑 노래방이 진짜로 있긴 있었다.
가서는 상혁이에게 물었다.
'친구 왔나 살펴 봐봐~.^^'
'안 왔어.그건 벌써 지났는걸?'
첫 곡은 내가 스타트했다.
잘 불러서가 아니고 선곡하느라 마구 마구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일단 눈에 띄는 곡으로 한곡 .
두번째 곡부터 상혁이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놓질 않았다.
모르는 노래라도 일단 자막이 있으니 무조건 읊는다. 춤을 출때에도 마이크를 들고 춘다.
하나는 제법 노래를 맛깔나게 잘 부른다.
남편은 하나가 부르는 자우림 노래를 따라 부르고,요즘 나온 노래를 제법 많이 알고 있다.
우리 연애 할때엔 그 흔한 노래방에도 딱 한 번밖에 안 갔었다.
그것도 남편이 사무장으로 있던 극장 아랫층 노래방에 친구 부부랑 함께 갔었다.
조금은 서먹함이 있던 우리 사이였는데 남편은 노래방에서 '옥경이'를 개사해서 나에게 불러 주었다.
연극적인 제스쳐까지 가미해서 불러주는그 노래에 나는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부끄러웠다.
노래에는 별 소질이 없는 나였기에 남편의 노랫소리는 충분히 나를 사로잡았었다.
노래를 잘 한다고 했더니 배우는 노래도 연기로 한다는 말로 자신의 노래 실력을 가늠해 주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결혼 전에는.
남편이 한 공연 중 재일교포 출신 원작자 츠카 고헤이가 직접 연출을 한 작품이 있었다.
내가 남편을 알기 전 최주봉,전무송,강태기,김지숙등이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초연한 것을 보았는데
당시 객석에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갑자기 나타나는 주인공의 등장이 가히 충격적으로 신선해서 몇번을 봤던 기억이 있다.
공연이 워낙 좋아서인지 그 후에도 몇 번 리메이크 되었었고 남편은 당시 최주봉과 더블 캐스팅으로 주인공인 '모모따로'역을 했었단다. 어느 날인가는 멀리 목포에서 부모님이 공연을 보러 오신다는 말에 최주봉씨가 일정을 바꿔주기도 했는데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소품으로 쓰는 돈을 준비못해 당황했던 일도 있었단다.
아쉽게도 난 당시 남편을 알지 못했었고 당연히 남편의 공연은 못 봤다.
세월이 흘러 결혼 후 다시 그 배역을 맡게 되었었다.
이번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손병호라는 배우와 함께 원작 "아다미 살인사건" 으로 제목과 각색, 출연진들을 달리해 '뜨거운 바다'와 '평양에서 온 사나이'라는 두가지 작품으로 따로따로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평양에서 온 사나이"의 손 배우는 노래 실력이 좋아서 공연중 'my way'라는 노래를 아주 멋드러지게 소화해 내었단다.
"뜨거운 바다"의 모모따로인 남편도 날마다 연습장에 다녀 온 후 my way의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며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배웠다.
그러다가 남편의 곡이 바뀌었다. 엘튼 존의 'Candle In The Wind' 로.
당시 일본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던 곡이었고 연출자가 개인적으로 앨튼 존을 좋아해서 직접 테이프까지 빌려 주며 곡을 익히게 했고 옆에서 얻어 듣던 나도 대충은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작품에서 갈라져 나온 '뜨거운 바다'와 '평양에서 온 형사'는 같으면서도 아주 다른 공연이 되었다.
남편의 공연장엘 갔었다.
대극장이야 내게 너무도 익숙한 곳이었지만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 서는 곳이라 생각하니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곳으로 다가 왔다.
그 곳 로비에서 우연히 연출자인 츠카 고헤이선생님과 마주쳤고 그 인연으로 인한 그 날의 공연은 기어이
나를 감동으로 떨게 만들었다.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되면 모모따로역을 맡은 남편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candle in the wind를 부르며 등장한다.
객석의 나는 혹여 남편이 나를 의식해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켜가며 숨을 죽였다. 집에서 연습한 것보다 더 멋지게 곡을 소화한 남편은 곧 이어
'오늘 이 자리에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긴 대사로 공연시작을 알렸다.
그 대사의 말미엔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어두운 객석에서 숨죽이며 보고 있던 나는 너무 놀라 내가 잘 못 들은것인가 했는데 계속 되는 대사로 보니 틀림없는 현실이었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며 알수 없는나를 찾기도 한다.
아무도 모를 터인데도 괜히 얼굴이 달아 올랐다.
그 날 객석의 반응이 좋았는지, 그런 대사를 하는 남편의 무언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출자는 그 날 이후로 그 대사를 매 공연마다 하게 했단다.
나는 그 날 한 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다른 날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 날만큼은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는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그랬듯이 그저 대사겠지,진짜일까하는 의구심도 약간은 가졌을까?
어쨌든 '옥경이'로 어설픈 프로포즈를 받고 그 날의 공연에서 연극배우와 결혼한 이래 최고의 극치를
맛 봤으며 이제는 세월이 흘러 우리 아이들이 목청껏 부르는 노랫소리에 몸과 귀를 다 맡기고 있자니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것이라 생각되어졌다.
노래방을 나오며 상혁이는 내일도 오자고 한다. 아님 토요일마다 오자고 한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까 하나가 하는 말이 "마이크 잡으려고 그렇게 쫓아 다니니 다리도 아프겠지.ㅎㅎㅎ"였다.
돌아 오는 길 우리 4 식구는 채 가시지않은 노래방의 여운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높이 높이 쏘아 올렸다.
Goodbye England's Rose
May you ever grow in our hearts.
You were the grace that placed itself
Where lives were torn apart.
You called out to our country,
And you whispered to those in pain.
Now you belong to heaven,
And the stars spell out your name.
And it seems to me you lived your life
Like a candle in the wind:
Never fading with the sunset
When the rain set in.
And your footsteps will always fall here,
Along England's greenest hills;
Your candle's burned out long before
Your legend ever will.
Loveliness we've lost;
These empty days without your smile.
This torch we'll always carry
For our nation's golden child.
And even though we try,
The truth brings us to tears;
All our words cannot express
The joy you brought us through the years.
Goodbye England's Rose,
From a country lost without your soul,
Who'll miss the wings of your compassion
More than you'll ever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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