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

hohoyaa 2014. 4. 8. 19:57

 

 

 

디즈니사의 영화치고는 입에 딱 달라붙는 제목이 아니다.

'메리 포핀스'의 작가 이야기인 것 같은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달콤한 제목대신 굳이 이런 제목을 붙여야만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토요일 저녁마다 '월트 디즈니의 원더풀 월드'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자란 나는 잠깐씩 보여지는 그야말로 놀라운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다른 것들도 재미있었지만 특히 얼굴에 검댕을 뒤집어 쓴 굴뚝 청소부들의 군무는 늘 감질나게 보여줘 언젠가 꼭 그 장면이 들어간 영화를 모두 보리라 다짐을 했다. 성인이 되어 그 영화가 '메리 포핀스'의 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았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가 아니라 영화에의 욕구는 아쉬움에 머물렀고 당시 디즈니의 영향인지 꿈에 그리던 애니메에션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어 '메리 포핀스'는 잊어버린 채 일속에 파묻혀 지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부터 다시금 디즈니의 고전작품으로 눈을 돌리게 되어 비디오를 사모으다가 다시 DVD 수집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메리 포핀스'도 당연히 있었고 애들과 함께 몇 번을 돌려 보았는지 모른다. 1964년도에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영화였던 것이다.

 

영국의 문학작품을 보면 가정교사나 유모가 나오는 작품이 꽤 많아서 '메리 포핀스'라는 인물역시 영국의 전래 동화속 인물일 것이라 상상하고는 별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P.L.트래버스(Pamela Lyndon Travers)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었음을 이번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영화를 보는내내 궁금했던 그녀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트래버스의 본명은 헬렌 고프, 호주 퀸즐랜드출신으로 개인적으로 교육을 받은 그녀는 19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배우가 되어 주로 셰익스피어의희곡에 출연했다.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의 초반에 남자 배우로서 '딕 반다이크'를 염두에 두는 디즈니에게 반대해 이 배역이라면 당연히 '로렌스 올리비에'가 맡아야한다는 의견이라던가 뮤지컬을 극도로 싫어했던 이유는 아마도 배우 시절 정극에만 출연했었던 그녀의 이력때문이었을 것이다. 1934년 그녀의 첫번째 책인 '메리 포핀스'는 마음씨 착하고 매우 유능한 유모에 관한 이야기로 출간되자마자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고 2년 뒤 첫번째 속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배우로서의 길을 접고 글쓰기에 몰두한다.

 

영화는 디즈니가 메리 포핀스를 영화화하기 위해 20년 동안이나 공을 들이다가 마침내 트래버스를 설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가장 디즈니스러운 영화임에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올해가 메리 포핀스를 영화로 만든지 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실제로 작품이 쓰여진지도 80년이 되었는데 당시에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가장이 있었다. 더구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에는 지나치게 섬세하고 심약했기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던 가장은 대신 자신의 딸을 통해 상상의 나라로 곧잘 빠져들곤 하였다. 헬렌은 알콜중독자라며 남들이 손가락질하던 아버지의 참모습, 그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기에 병석에 누운 아버지에게 술병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상상의 세계를 함께 구축해 온 아버지의 이름 Travers 를 가져와 동화작가로 성공을 하게 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아버지로 인한 부채감이 있었을 것이다.

'메리 포핀스'의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뱅크스씨의 성격을 알지 못하지만 작가가 애초 '메리 포핀스'의 영화화를 완강하게 반대한 이면에는 트래버스가 아닌 헬렌으로서 자신의아버지를 마주해야하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이 자리하고 있기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감성 풍부한 아버지와 체온 없는 돈을 만지는 세상사에 지쳐 알콜에 의존하던 은행원의 두 얼굴을 감당하기에 헬렌은 너무 어렸기에 할 수 있는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동화라면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만큼만 표현하며 양지만을 그려낼 수 있지만 제3자가 만드는 영화라면 인물들이 철저히 해부되어지고 원치않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갈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업을 하는 모든 시간을 녹음하고 매 순간 그녀의 감수하에 있지않으면 자신의 세계가 흔들려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들었을 것이고.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에서 미스 트래버스가 보여주는 시종일관 고집스런 표정은 미스터 뱅크스를 몰인정한 은행원으로만 그려지는 것에 불만이 있었으면서도 그 원인을 계속 다른 것에서 찾으며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나 마침내 디즈니팀은 미스터 뱅크스를 구원하는 방법을 찾게 되고 '메리 포핀스'를, 미스 트래버스를 구원하게 된다. 세상의 차가운 눈으로부터 아버지를 지켜내는 순간 비로서 미스 트래버스가 쌓아왔던 견고한 담장이 와해되어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된다. 제작자들이 미스터 뱅크스를 몰인정한 은행원이 아닌 가족을 사랑하고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귀울여주는 아버지, 망가진 연을 고쳐 함께 날리러가자며 손을 잡아 이끄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었다.  그래서 Let's Go Fly A Kite 는 특별하다.

 

 

어릴 적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극장에서 보여주신 친정어머니도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고 좋아하셨다. 집에 돌아와 영화이야기를 하자니 놀랍게도 하나의 친구들은 '메리 포핀스'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장에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았는가 보다. 좋은 영화를 보고 스포일러가 될까 말도 못하고 안타까워하니까 남편은 오늘 상혁이를 데리고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를 보러갔다. 상혁이 녀석, 돌아오면 아마도 며칠간은 계속 Spoon Full of sugar 를 비롯한 OST를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