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역사책같은데 책표지를 놓고보면 과학책 같은 "빅 히스토리".
"빅 히스토리(Big History)" 란 우주,지구,생명,인류의 역사를 통합 학문의 방법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내게는 다소 생소한 이 용어는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빅뱅에서부터현재까지의 역사를 아우르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으며 이미 20여 년간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등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저 무지를 탓할 밖에. 우연히 이 "빅 히스토리" 강의를 접하고 크나큰 자극을 받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빅 히스토리" 시범사업이 시작되었고 현재마이크로 소프트의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 온라인 정규교육과정 콘텐츠가 완성되어 일반 교사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전문용어도 많이 나오고 소인인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의문들에 관해 설명하는 이 책은 첨부사진도 많고 문체가 참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다. 평소 즐겨보는 'EBS 다큐 프라임'을 책으로 읽는 느낌이다.
쳅터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그에 걸맞은 화면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기에 혹시 이 책은 그런 과학다큐를 책으로 엮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했다.
책의 말미 옮긴이의 말을 보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는데 이 책은 빌 게이츠가 지원하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의 기본 텍스트를 번역하여 엮은 것이라고 한다. 10부로 구성된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는 2~3개의장이 있고 각 장에는 한 개의 기본 텍스트와 이 기본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영상 강의가 있는데 영상 강의는 학생들이 필요로 할 때 언제나 쉽고 반복적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5~6분의 길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각 장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자연과학자들의 영상자료,문헌자료,주요 개념에 대한 설명들이 제공된다.
임계국면이라던가 전하, 광자, 세페이드 변광성, 주기율표등등 전문용어가 눈을 압박하는 동시에 익히 아는 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에서 유래한 골디락스의 조건이라던가 그 옛날 동방박사 세사람이 보았던 베들레헴의 반짝이는 별은 결국 초신성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흥미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또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청주도 언급이 된다는 사실이다.
남대문 시장은 집단학습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를 논할 때 무려 세 장의 사진이 나오는데 택스트만으로는 나의 두뇌에 한계가 있어 영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확인해 보고도 싶다.
그리고 청주는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이용한 서적이 인쇄된 곳이라는 소개와 더불어 "직지심체요절"의 사진이 나오는데 그 중요한 문화재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가슴아프다.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은 승려인 백운 화상이 부처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간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뽑은 내용을 수록해 놓은 책으로 본래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남아 있다.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으로 본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며 "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체요절","직지심체","직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스님이 입적하신 지 세 해째 되던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되었으며 인쇄를 주도한 사람은 승려였던 석찬·달잠·묘덕이다. 석찬 스님은 "백운화상어록"을 쓴 승려로 백운 화상의 비서 역할을 했던 시자(侍者, 귀한 사람을 모시고 시중드는 사람)였으며 달잠 스님 또한 백운 화상의 제자였다. 이 두 사람이 여승이었던 묘덕 스님의 재정 지원을 받아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을 간행했다.
이 책이 빅뱅이론이나 인류의 기원에 대하여주구장창 나열만 한 것이라면 여타의 다른 과학책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나 이 책은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에서 제공하는 교육내용의 핵심이자 교육과정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톡톡이 해내고 있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음에 안타깝기도 하다.
옮긴이 조지형교수의 말을 빌면 아직 초기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 정규과목과 중등학교 방과 후 활동 프로그램에서 빅 히스토리를 가르치기도 했다니 그 활동을 같이 했던 학생들이 자신들이 행운아였음을 언제나 알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사회라는 단위는 커지고 그 안은 복잡다단해지지만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그 변화하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기만 한다. 그것에 대비해 137억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모든 것의 시작을 연구하는 빅 히스토리를 읽고나니 오히려 인간사 80년에 대해 여유로움을 찾게 된다. 우주를 놓고 볼 때 우리 인간은 티끌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일 것인데 당장 눈 앞의 이익에 일희일비하는 지금이 가소롭기만 한 것이다.
만약 1초에 숫자하나를 센다고 할 때 137억 년을 세는데 438년이 걸린다니 불평불만이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만 하면서 삶을 마친다면 끝내지도 못할 숫자만을 뇌다가 삶을 마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인생이 되는 것같아 섬뜩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하고 특히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좀 전에도 과학이 재미있다는 중1 아들녀석에게 슬그머니 권하였건만 얼른 외면을 해버리고 만다. 히스토리라는 제목의 책이라면 외워야한다는 스트레스로 받으니 그럴 것이다. 알고보면 생각의 저변을 무한히 확대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차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달리겠다고 집밖으로 나갔다. 그 바람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해하면 좋으련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부엌에서 책읽기 > 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넘브라의 24시 서점-로빈 슬로언 (0) | 2013.11.01 |
---|---|
역사의 날실에 개인사의 씨실을 교차시킨 '홍도'-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著 (0) | 2013.10.16 |
청춘에게 박수를...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넘버원!" -박유찬 (0) | 2013.09.10 |
옛날이야기 들어볼래? "조선백성실록"-정명섭 (0) | 2013.08.30 |
한국에는 애플스토어가 없다. "애플스토어를 경험하라."-카민 갤로 (0) | 201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