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시작하는 첫 장에는 조선왕조 18대 왕 '현종'과 사헌부 '남구만' 사이에 있었던 팽팽한 기싸움에 대하여 적고있다. 몇 시간 동안 말다툼을 하다가 남구만이 물러가자 현종은 사관에게 험악하게 오간 말을 기록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러나 사관은 왕이기록하지 말라고 한 것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혹 사관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센스있는 첨언(添言)을 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사관 개인의 사견일지라도 그 정도의 기개는 갖추고 있어야 사관의 자격이 주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사관(史官)이 자기에게 관계되는 사건을 싫어하거나 친척과 친구의 청탁을 듣고 관련 사실을 없애고자 하여 문서철을 훔친 자는 '제서(制書, 국서)를 도둑질한 법률'로써 논죄하여 목을 베고, 사초를 도려내거나 긁어 없애거나 먹으로 지우는 자는 '제서를 찢어버린 법률'로 논죄하여 목을 베며, 동료 관원으로서 알면서도 고하지 아니하는 자는 법률에 의하여 한 등급을 줄이고, 사초의 내용을 외인에게 누설하는 자는 '근시관(近侍官)이 중요한 기밀을 남에게 누설한 법률'로써 논죄하여 참해야 할 것입니다.
1449년(세종 31년) 3월2일, 조선시대 실록을 편찬했던 사관들이 근무하던 춘추관(春秋館)에서 세종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 보고는 세종의 윤허를 얻어 조선의 기록 관리에 관한 기초 법령이 되었다. 이후 연산군 4년 성종 시대 실록을 편찬하던 과정에서 이극돈은 김일손의 사초에 적힌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빗댄 것이라고 연산군에게 고자질해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이 경험을 바탕으 로 중종 2년에는 사초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사초를 누설해도 마찬가지로 목을 베는 규정이 추가됐다. 이렇게 해서 인류 역사상 거의 독보적인 역사 자료의 지위를 가진 < 조선왕조실록 > 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다.
오항녕 | 전주대 교수·국가기록원 심의위원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요즘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다. 딸아이가 고등학생이던 때에도 국사과목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사를 가르쳐야한다는 것에 찬성한다. 뿌리없는 나무가 없듯이 역사를 바로알지 못하고서는 그 어떤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자.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회의록으로 인해 되짚어 본 우리 정부의 기록물 보관상황을 보면 참여정부의 기록물이 200만건인데 비해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 때 까지의 기록문건은 30만건 정도라고 하니 간난(艱難)의 세월을 지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조선왕조실록'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지극히 큰 것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실록의 사전적 의미는 '한 군주 일대의 통치기간에 있었던 중요사건을 정리한 편년체 기록'인데 파주 출판단지에서 커피를 내리던 바리스타 정명섭씨는 그 안에서 특별히 일반 맥성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추려 우리에게 들려주는데 "조선백성실록"이 그것이다.
책에 있는 '들어가는 말'을 보면 작가의 의중을 잘 알 수 있겠다. "<실록>에는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민초들의 삶과 애환은 물론 지금으로 치면 신문 사회면의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코너에 실릴 만한 흥미롭고 때로는 엉뚱하기까지 한 기사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선데이 서울>이 아직 발간되고 있다면기자들이 틀림없이 군침을 흘렸을 만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추적 60분>이나 <시사IN>같은 언론매체가 심층보도로 다룰 만한 사건도 보인다. 이렇듯 <실록>에는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백성들의 삶이 현장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런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가가이 들여다보고 나서역사가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역사가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독점되지 않았으며, 또한 이름 없는 민초들의 흔적 역시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점을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잊지 말아야 한다."
조선왕조실록 ㅡ>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조선백성실록을 읽다보면 세종대왕시대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32년이라는 긴 재위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군으로 추앙받던 세종의 면면이 실록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세종은 답험손실법이라는 새로운 공법(貢法)을 도입하기 전 5개월에 걸쳐 조정신하와 양반, 농민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하는등 민주적으로 접근했음에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농민들의 저항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440년 경상도 주민 1000여명이 상경하여 등문고를 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이처럼 난감한 상황에서도 세종은 결코 그들의 뜻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상경시위를 막지는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주동자를 처벌했다는 기록도 없으니 비록 민주주의의 개념이 없었던 시대이기는 했으나 백성을 위하고 군주의 도리를 아는 왕은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책 전체가 참 재미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실록에 나온 몇 줄의 글에 피와 살을 붙여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 준 저자덕에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수백년을 오간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조선시대 csi 이야기도 재미있고 지금의 골프와 비슷한 '봉희'라는 놀이가 있었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왕권강화에 힘 썼음에도 측근들의 비리에는 눈을 감은 몇몇 왕의 일면도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더하여 또 한가지 전라도에서 거둔 곡식을 개경이나 한양으로 옮기는데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곳이 바로 태안반도 앞바다였으나 물살이 세고 암초가 많아 배들이 침몰하는 까닭에 고려시대 인종부터 조선시대 현종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에 걸쳐 운하를 만들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운하의 필요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유생들과 지반이 너무 무르다는 이유로 수세기에 걸친 운하건설계획은 백지화 되었지만 육지로 물길을 내느라 안면도가 섬이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더불어 현재 우리가 안고있는 4대강 정비사업과 맞물려 생각케하는 바가 컸다. 역사는 순환되는 것인가?
역사는 지겨운 학문이 아니다. 한국사가 어렵다고 외워야 할 것이 많다고 도리질을 할 것만은 아니다. 역사를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보다 이런 책 한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기에 어느 말솜씨좋은 아저씨가 풀어놓은 옛날이야기 한자락 속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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