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친정엄마와 함께 보라고 남편이 영화표를 끊어주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반은 혼이 나간 상태에서도 일부러 왕십리에 들러 예매를 해왔다.
보청기사용이 익숙치않아 외화를 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는데 '댄싱 퀸'처럼 신나는 영화도 좋을 것 같았다. 홀로 계신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들의 관심이지만 보이지않는 무형의 관심보다는 엄마 혼자서는 너무나도 버거운 시간이라는 괴물을 같이 잡아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평생을 타인을 위해 살아오신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오롯이 당신만을 위한 시간 보내기란 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이나 힘겨운 일이란 생각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좀 즐거운 마음으로 빼앗아올 수 있을까?
함께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고 날마다 전화를 하는 생색부리기도 엄마에게는 그저 새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일주일에 사흘은 수영을 다니시고 하루는 성당 모임이 있으시고 날마다 찾아오는 동네 친구분이 계시지만 잠이 없으신 분에게 지나간 겨울 밤은 고문 그자체였으리라.
밤 11시에 자리에 들더라도 늘 2시면 잠에서 깬다고 하시니 새벽이 오기까지 홀로 뒤척이실 모습이 눈에 밟힌다.
차라리 소일거리라도 있으면 잠안오는 시간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해서 얼마 전에 부업사이트에 들어가 봤었다. 부업의 종류도 다양해서 양말 뒤집기,실밥 정리하기,쇼핑백 접기등 70노인이 할 수 있을만한 부업거리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받으면 책임감때문에 최선을 다하시는 엄마의 성격상 되려 해가 되지나 않을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사업체쪽에서는 노인분들을 꺼리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엄마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셔서 내가 부업을 같이 하고 우리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면 엄마의 허전함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엄마는 이사 올 생각은 없으시고 부업은 생각이 있으시단다.
전에 비수기가 너무 무료해 하나친구 엄마의 소개로 화일의 지퍼를 끼우는 부업을 해본 적이 있는데,
처음 일을 시작하면 익숙치 않다는 핑계로 대부분 제대로 계산을 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공교롭게도 부업거리를 받아오자마자 회사일이 시작되어 나는 회사로 출근하고 남편이 나머지 일을 다해서 가까스로 납품기일을 지켰다.
남편은 꼼꼼한 사람이라 깔끔하게 마무리를 잘했고 나는 나대로 이 부업을 계속할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 소개한 아이 친구엄마의 얼굴을 생각해 남편의 일을 검수해서 완벽하게 했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그 얼마되지않는 돈을 초보라는 이름하에 아예 무시하는 업체에 너무 서운했다.
그리고 괜히 똑순이인척하는 아내덕에 덤탱이를 쓴 남편에게도 미안했고.
그 일 후 우연히 회사에서 부업이야기를 했더니 후배 하나도 그런 경우를 당했다고 한다.
미대 출신의 후배는 카드에 색칠하는 부업을 좀 해봤는데 업체측에서는 이 카드는 여기가 잘못되었고 저 카드는 저기가 잘못 되었고하는 식으로 크레임을 걸어 한푼도 주지 않더란다.
차라리 봉사활동이라 생각했으면 기분이나 좋을텐데 괜히 노동력착취를 당한 것 같아 우리끼리 성토를 했었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 섣불리 부업도 못할 것같아 망설여진다.
낮시간을 함께 보내드리는 것도 일주일에 하루이틀이고 내가 바꿔 생각해 봐도 밤시간이 문제다.
전에는 아버지한테 모든 이야기를 다했는데 요즘엔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입을 닫고 있는 날도 있다고 하시니 치매도 걱정이고 그렇다고 내가 그리 싹싹한 딸이 아니니 참으로 난감하다.
댄싱 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춤이나 노래를 잘하면 엄마앞에서 한바탕 쇼를 하고 웃겨드릴텐데.
영화를 보는 동안 엄마는 몸을 앞으로 기울기도 하시며 집중하시는가 싶더니 끝나자마자
"재미있구나,재밌다! 참 재밌게 봤다!"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오늘 하루는 영화보기로 메꿨지만 다음은 또 어떻게 보내야하나?
엄마와 돌아오는 발걸음이 영화관에 가던만큼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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