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집을 생각한다 - 나카무라 요시후미

hohoyaa 2012. 2. 26. 10:35

집을 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산 책이다.

요즘 리폼열풍이 불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자신의 취향이나 편리에 맞게 고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인터넷을 들어와 보면 솜씨있고 센스있는 주부들의 결과물이 전문업체의 그것보다도 훨씬 나은 것도 많다.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집이라는 것을 살기 편하고 가족들의 동선이나 생활습관에 맞추는 것보다는 카페같이 쾌적하게 호텔같이 럭셔리하게 모델하우스처럼 전시용으로 꾸미고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을 하게 된다.

 

 

나역시도 근사한 집의 사진을 보면 내가 몸담고 있는 집을 한 번 둘러보게 되고 곧이어 한숨과 함께 도리질을 하며 머릿속에 들어앉은 환상을 털어내게 된다.

집이란 결국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건축책들은 이름부터 흥미롭다.

이번 '집을 생각하다'도 그렇지만 '평범한 주택 예술'이라던가  '내 마음의 건축'도 마음이 간다.

 

 

목차또한 다채롭다.

편안함과 감촉,세월.......

몸을 들이는 순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집에서 손 끝에 닿는 감촉이 낯설지 않음을 느끼며 세월을 보낼 수 있는 집이 진정한 내 집이어야 할 것이다. 

 

 

프롤로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키다리 아저씨'의 쥬디 애벗의 이야기가 나온다.

17세까지 고아원에서 자랐기에 보통의 집과 보통의 가족을 본 적이 없던  쥬디는 친구 샐리의 집에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격과 그 집의 인상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었다.

 

샐리의 집에 와서 저는 최고로 편안한 휴가철을 보내고 있어요.샐리의 집은 시내에서 좀 딸어진 곳에 있는,하얀 회반죽으로 가장자리를 꾸민 크고 고풍스러운 벽돌집이랍니다.제가 존 그리어 고아원에 있을때 '저 집의 내부는 도대체 어떤 모양일가?'궁금해하며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하던 바로 그 집과 비슷한 모양이에요. 제가 그런 집에 발을 디디고 두 눈으로 내부를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 저는 이 집 안에 들어와 있어요!

모든 것이 아주 편안하고 포근하며 아늑합니다. 저는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방을 꾸며놓은 모양이나 벽 장식을 보면서 황홀해하고 있어요.이곳은 아이를 키우기에 최고로 훌륭한 집이에요.숨바꼭질하기에 딱 좋은 컴컴한 구석도 있고,팝콘을 만들 수 있는 벽난로에다가 지루하게 비가 오는 날 뛰어놀기 좋은 다락방도 있어요. 게다가 계단에는 미끈하고 촉감좋은 손잡이 난간도 있답니다.손잡이를 잡고 내려가다 보면 난간 끝부분에는 나도 모르게 만져보고 싶어지는 둥근 빵을 눌러놓은 모양의 나무장식도 있고요.아,맞다.게다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나게 넓은 주방도 있어요.주방에는 13년간 샐리의 가족과 함께 생활해온 마음씨 좋고 친절한 뚱보 식모 아주머니가 계세요.언제나 아이들을 위해 빵반죽을 남겨두고는 구워주신답니다.이런 집을 보면 누구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거에요.

 

 

또 가난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계절이 없는 거리"라는 소설 중 '단바씨'의 이야기도 있다.

 

 

다다미 6장으로 이루어진 단바씨의 집.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생활을 자신만의 속도로 해나가는 독거노인 단바씨의 집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는 저자의 고백이 나에게도 울림을 준다.

온갖 사치품과 일회성 물건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극도로 절제된 단바씨의 집은 앞으로 내가 집안의 거의 모든 물건들을 처분해야함을 조용하고도 강렬하게 설파해 준다.

 

 

저자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건축물의 사진이다.

집안에 저런 공간이 있으면 자신을 들여다 보기에도 좋고 잠시잠깐 눈을 붙이기에도 더없이 좋은 공간일 것 같다.

 

 

이건 후니마미님과 나누고 싶은 사진.

마당을 면한 복도에 책꽂이를 두고 유리는 자외선차단유리를 사용해 책이 바래지않도록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툇마루처럼 마당을 보고 앉아 책을 읽으면 그 시간이 참 행복할 것 같다.

나중에 후니마미님이 집을 짓게 되거들랑 꼭 이렇게 지으라고 압력을 좀 넣고싶다.

구경이라도 가게~ ㅎㅎ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서양처럼 넓은 거실의 벽난로가 아닌 좁은 공간을 이용한 벽난로도 사람간의 간격을 좁혀주어 좋을 것 같다.

요즘엔 아파트 거실에도 전기벽난로를 들여놓고들 있는데 벽난로 앞에서의 소통보다는 단순히 근사한 그림을 얻기위한 노력임이 보일 때 무척 아쉽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결정적인 사진이다. 

아이디어가 정말 독창적이고 개구장이같다.

2층집을 짓는다면 꼭 만들고싶은 공간이다. 굳이 책이 아니어도 좋다.가구를 움직이며 정체되어 있는 공기들을 활발하게 운동시키면 집안 전체가 활기찬 공간이 될 것 같으니.

또 작정한 한 권을 다 읽기 전에는 절대 내려오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스릴도 함께 느끼며. 

 

 

남자이지만 요리를 즐긴다는 작가는 마침 내가 만들고 싶은 부엌가구를 이미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도마의 경우 저렇게 사선으로 자르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고 한다. 머릿속에서는 아직 그 편리성에 의문이 들지만 다음에 놀고있는 편백도마를 저렇게 잘라봐야겠다.

 

 

작가의 어머니가 물려받아 사용하던 낡은 장롱의 서랍만을 모아 재구성한 오동나무 서랍장.

본래 가지고 있었던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고 배치에 변화를 주어 오밀조밀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의 서랍장이 되었다.

낡은 가구라면 무조건 밀크페인트를 칠하거나

부러 사포질을 해서 빈티지를 흉내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빈티지가구이다.

 

책이 단순히 저자의 창작물을 자랑하기 위한 책이었다면

그에 들어가 있는 서양의 고급 자재라던가 값비싼 장식품들을 나열한 것이었다면

이 책을 고른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적은 페이지나마 저자의 집에 대한 생각을 설명해 주는 글과 그림이 있어 더더욱 좋았던 책이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집이 아닌 우리 가족의 손때가 감촉이 되고 성향이 동선이 되어 서로에게 익숙한 집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집이 좁은 것이 아니라 물건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나의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보고난 후 시간이 좀 지났지만 지난 번 인간극장의 정영희씨가 번역한 책이라 다시 들춰보았다.

두번 보아도 감흥은 여전하다.

 


집을 생각한다

저자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출판사
다빈치 | 2008-06-24 출간
카테고리
기술/공학
책소개
주택전문건축가가 이야기하는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주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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