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거의 모든 주검의 역사

hohoyaa 2011. 8. 29. 21:48

 

 

 
요즘들어 부쩍 죽음에 대해 좀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란 화두에 앞서 어떻게 죽어야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더 촛점을 맞추게 되어 자연 이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제목으로 보건대 한 인간이 삶을 정리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적인 접근을 기대했으나 결국엔 죽음 그 자체보다도 죽음이후에 남겨지는 '주검'에관한 이야기였다.
만약 영어 원제인 'The Dying Game'을 알아봤더라면 애초 내가 기대하던 류의 책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터인데 약간의 실망감속에서 책을 넘기다보니 죽음과 주검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기도 한다.

 

1장 무덤에서 나는 소리    -조기 매장과 대응
2장 살아계십니까?    -사망진단의 문제점
3장 휴식을 방해하는 자    -도굴과 이장
4장 뿔뿔이 흩어진 자취들    -유해의 각 부위와 그 활용
5장 발전하는 미라 제작술    -방부 처리와 인체 표본화, 수축 기술의 합작품
6장 태고의 기술    -부패하지 않는 미라와 천연 방부
7장 지상에서 우주까지    -추모의 다각화
8장 이승과 저승의 행보, 축제와 속죄    -영혼의 구제
9장 대세는 과학 수사    -범죄와 감식
10장 죽음의 재발견    -신기술, 대안을 제시하다

 

책은 '무덤에서 나는 소리'라는 챕터로 시작을 한다.

한여름 머리칼을 쭈뼛세우게 만드는 무덤으로부터의 소리......

그 이유를 책에서는 생매장으로 풀고 있으니 정작 그 순간 두려움에 떠는 이는 무덤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무덤안에서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깨닫게되는 조기매장자들이었고 그 대응법으로는 확실한 사망진단을 위해서 고문에 가까운 여러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했다.

뜨거운 왁스를 머리에 붓고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직장을 찌르는등 끔찍한 방법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고 보면 생매장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죽은 이들이 아니고 산사람들인 것이 확실해 진다.

 

사실 완전한 죽음을 진단해내기란 현대의학으로도 어려운 일이라 간혹 사망진단을 받은 사람이 관속에서 눈을 뜨게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관속에 전원이 꺼진 핸드폰을 같이 넣어달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캄캄한 관속에서 눈을 뜨게 되면 부디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지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관속에서 살아있다는 문자메시지나 전화가 왔다는 제보가  없는 것으로 봐서 다시 깨어나지 못했거나 어쩌면 묘지아래에는 통신케이블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헛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이 책의 묘미는 그런 것에 있다.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 죽음과 주검에 관한 글쓴이의 잡학다식한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흥미를 갖게 되는데 여기에 몇가지를 적어본다.

 

*미라는 예로부터 약재나 기관차 연료로도 쓰였으며 미리를 갈아 만든 물감도 있었으니 그 색은 짙은 갈색이 나는 Mummy Brown으로  그림자를 표현할 때 자주 이용되었다고 한다.

화가중 '에드워드 번 존스'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머미브라운이 사실은 미라가루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큰 충격에 빠져 머미브라운 물감 튜브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이론의 창시자인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사체조차 실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 자신의 시신을 의학자에게 기증하여 사망한지 사흘째 되던 날 고인의 희망대로 동료 24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부되었다. 그의 머리는 미라로 만들어졌고 유골은 솜으로 채워 천으로 둘러싼 다음 밀랍머리 모형을 얹어 런던 유니버시티 대학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또 프라팔가 해전 당시 함선에서 사망한 '넬슨'제독은 브랜디 술에 절여져 영국으로 귀환조치되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당시 넬슨은 사실 브랜디가 아니라 해군들이 마시던 럼주에 절여졌으며 영국에 당도했을 때 술통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고 한다. 즉 생전 그의 부하들이 규율을 어기고 몰래 통속의 술을 빨대로 마셨던 것이다.오늘 날 불법음주를 뜻하는 'tapping the Admiral'을 직역하면 '제독의 즙을 따르다'라는 뜻으로 뒤에는 이런 일화가 있었던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신기술이 나오는데 고인을 화장하고 남은 재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그것을 목걸같은 장신구로 몸에 착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체는 탄소를 토대로 구성되므로 화장된 재에 3000℃의 열을 가하면 흑연으로 바뀌고 이 흑연을 압축하면 인공다이아몬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장이라는 방법도 그리 친환경적이지 못해서 우주로 추모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방법도 개발되었다고 한다.세계 최초의 추모우주선에 탑승한 유골 24구중에는 tv시리즈 '스타트랙'의 제작자 '진 로덴버리'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고 뒤를 이어 '엔터프라이즈'의 스카티로 잘알려진 배우 '제임스 두한'의 유골이 우주로 솟았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사후 처리는 금전적인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부자는 죽어서도 늘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니 입맛이 그리 달지만은 않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를 안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한결 마음이 유쾌해졌다.

겁이 많은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나면 아마 귀신을 무서워하기보다는 딱하게 여길 것 같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상상을 불허하는 엽기적인 주검의 역사때문에 굳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우리같이 연륜이 있는 사람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