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마당을 나온 암탉, 국산토종 애니메이션의 비상

hohoyaa 2011. 8. 16. 12:31

 

                                                                        출처;마당을 나온 암탉, 네이버블로그       

 

"엄마, 대사가 영어로 되어있다면 더 재미있을것 같은데......."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러가면서 아들녀석이 하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보았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디즈니사의 작품이었고 더빙보다는 자막이 있는 것을 선호했기에 어린 나이에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는가 보다.

그러나 여름방학 전에 열린 독서골든벨대회 추천도서라 몇번을 읽으면서도 읽을 때마다 눈물짓던 그 책이 아니던가. 애니메이션역시 감동적일 것이라며 기대를 부풀리는 것 또한 잊지않는다. 

 

잎싹은 산업화된 양계장의 수많은 암탉중 한마리이다.

몸을 돌릴 여유조차 없는 비좁은 양계장에서 잎싹은 문틈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마당을 꿈꾼다.

마당에는 문지기 개가 있고 시끌벅적한 오리가족과 함께 늠름한 수탉과 멋쟁이 암탉, 그리고 노오란 병아리가 있다.

잎싹은 다채로운 빛깔이 있는 마당풍경을 보며 그저 사람이 주는 사료를 받아먹으며 하루종일 앉아서 알만 낳고있는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저들은 마당에 있고 자유로운데 나는 왜 이런 비좁은 곳에 앉아 알을 낳아야하는 것일까? 그것도 품을 수도 없는 알을.......'

'나도 알을 품어보고 싶다.' 입싹이 꿈꾸는 것은 좀더 쾌적한 집도 아니었고 맛있는 음식도 아니었다.

잎싹이 그토록 간절하게 꾸는 꿈은 자신의 다리밑으로 허망하게 빠져나가버리는 알을 품어보는 것이었다.

그 알이 무정란인 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그렇게 알을 부화시켜 자신의 가족을 만들고 싶은 것이었을게다.

 

생각많은 암탉 잎싹은 우여곡절끝에 닭장을 벗어나게 되고 청둥오리'나그네'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굶주린 족제비에 먹힌 어미오리를 대신해 알을 품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알이 오리의 알이던 누구의 알이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미의 온기가 가시기 전에 자신이 품어줄 수 있다는 것, 깨지기 쉬운 것을 지켜주면서 스스로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잎싹으로서는 가슴벅찬 일이었으리라.

나그네또한 잎싹이 알을 품는 동안 부지런히 먹을 것을 구해다주고 밤이면 잠도 자지않고 족제비로부터 그녀의 곁을 지켜주며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달이 차오르는 날, 나그네는 결국 족제비의 제물이 되고 그 사실에 슬피 울던 잎싹은 알을 깨고나온 초록머리 오리를 발견하게 된다.

초록이는 청둥오리이지만 자신을 잎싹과 같은 닭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엄마와 자신이 닮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수영도 못하고 날지도 못할 뿐더러 멋진 깃털도 없는 엄마인 잎싹에게 불만을 갖게 된다.

잎싹에게서 멀어지면 자신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겨졌지만 초록이는 늪지대에 살고있는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좌절을 맛보게 된다. 고개를 숙인채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온 초록이에게 잎싹은 해줄 말이 없다.

사실 잎싹에게도 양계장이 세상의 전부였기에 청둥오리에 관해서나 자연이 주는 위대한 교훈같은 것은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나그네의 말대로 늪으로 왔고 그 말의 의미를 알고싶어 때를 기다리던 잎싹과 초록이.

어느 날 초록이는 자신의 심장이 뛴다고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고 잎싹에게 이야기한다.

무언가 굉장한 것이 다가오고있다는 느낌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되고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며 날아오고있는 청둥오리떼와 만나게 된다.

그제서야 초록이는 자신이 청둥오리라는 것을 알게되고 이제는 늙고 병약해진 잎싹은 자신보다 훨씬 커버린초록이를 그 무리속으로  떠나보낸다.

 

자연은 평화로운 겉모습에 잔인한 발톱을 숨기고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아래 먹고 먹히는 관계, 나그네와 초록의 엄마를 희생시킨 족제비에게서 잎싹과 초록이 또한 안전할 수 없었기에 늘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었다.

원작도 그렇고 애니메이션도 그렇고 많은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장면은 족제비의 새끼를 위한 잎싹의 숭고한 희생이다. 더군다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입싹을 향해 달려드는 족제비의 화면가득 흩뿌려지는 눈물이 인상적이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5학년 아들은 볼이 발그레 상기된채 말했다.

"책이랑 영화는 좀 다른 것 같애. 그래도 마지막에 족제비의 눈물을 보니까 마음이 뭉클했어요.

아무리 잔인한 육식동물이라도 사냥을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었거든요.

그리고 엄마, 죽어가면서 잎싹은 정말 행복했을까? "

엄마인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잎싹의 위대한 모성본능.

그와 더불어 우리사회의 한 단면인 다문화가정과의 소통과 포용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애초에 양계장속 잎싹이 꿈꾸던 곳은 몇걸음 앞의 마당이었으나 그 마당의 동물가족들은 잎싹을 받아들여주기는 커녕 평화로운 자신들의 일상이 무너질까 봐 잎싹을 내쫓는다. 본의 아니게 야생으로 내몰린 잎싹의 처절한 고군분투를 보면서, 청둥오리의 알을 품는 모정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려 들어온 외국인들을 떠올렸다.겉모습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르다고해서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맴돌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아프리칸이나 동남아인들에게 향하는 시선에는 백인이 아니라는 편견도 한몫을 하고있다.

타종족- 그것도 자신의 적이었던 족제비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놓는 잎싹의 결연한 의지앞에서 우리가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운 계기가 되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흥행으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한다.

물론 원작인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의 탄탄한 스토리가 일등공신이지만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업계에서 묵묵히 제 할일을 해내면서 늘 국내 순수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날개짓을 해오던 수많은 잎싹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애니메이터들은 젊은 기수들이다. 길지 않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부분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하청을 받아 기술력을 키운 선배들의 노고가 있다. 실패에 실패를 딛고 늘 암중모색을 하던 수많은 잎싹들이 이번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청둥오리를 탄생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저/김환영 그림
멀뚱이의 곤충일기
김지희 글/김영곤 그림
그런 편견은 버려!
홍준희 글/고상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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