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자식이란,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친정엄마를 서운하게 만드는 적이 많다.
시나브로 집수리를 하느라고 어질러져있는 모습을 보신 엄마는 지난 번에는 앞치마와 청소도구를 갖고 오셨다. 전화로 가도 되겠느냐고 물으시더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자원봉사하러 왔다."하신다.
무슨 얘긴가헸더니 정신없는 우리 집을 두고 한마디라도 하시면 딸인 내 입에서 퉁명스런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니 아예 직접 샷시 문틀을 청소해 주시려고 집에서부터 칫솔이며,세제를 챙겨오신 것이다.
우리 집에도 세제가 있고 칫솔도 있는데 뭣하러 이런걸 들고 다니시느냐고 했더니 "얘, 내가 와서 청소하게 이러이러한것좀 다고하면 하지말라고 안줄 것이 뻔하니 아예 챙겨왔다." 라며 바닥에 앉아 문틀을 닦기 시작하신다. 옆에서 아무리 말려도 안들으시니 나도 이참에 유리창이나 닦자하고 어머니와 청소회동을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 친정엄마의 마음이로구나 새삼 울컥했다.
딸네집에 오시면서도 늘 무언가를 들고 오셔야 떳떳하시니 가끔 시누이가 보내주는 진짜 참기름을 나눠드리기라도 할라치면 손사래부터 치시는 친정엄마.
시누이가 엄마몫으로 따로 챙겨 보냈으니 아무 걱정말라고 해도 친정엄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손이 부끄러운 듯 영 낯설어하시고 내가 저걸 속도없이 왜 받아왔나하고 후회도 하신단다.
그 후로 비도 계속오고 내 몸도 피곤하니 친정엄마가 전화를 하시면 오시라는 말보다는 다음에 시간나면 제가 갈께요라는 말로 대신하곤 했다.
전화로 "얘,이번에 총각김치를 담갔는데 맛있게 되어 너희것을 좀 덜어놨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시는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이들이 어릴적과 지금, 내 마음이 친정엄마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이 달라져 있는 듯하다. 그리고 늘 오시면 우리 집을 검사하듯 둘러보시며 유리창이 뿌옇다, 아직도 정리가 안되었네, 애들 방이 깨끗해야 앉아서 공부를 해도 집중이 잘되지등등 딸에게 잔소리를 하시는 걸로 모자라 직접 정리를 해주시곤 하니 내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누가 우리 집에 오면 같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다.
더구나 친정엄마니까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엄마는 늘 나에게 긴장을 풀지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엊그제 잠시 비가 그치고 모처럼 날이 화창하길래 엄마에게 오시라고 했다.
아침에 전화를 드리고 기다리는데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오신 어머니의 손에 들린 것들.
마늘을 찧어 얼려서 며느리들에게도 나눠주시고 우리 집에까지 차례가 왔다.
직접 담그신 오이지와 오시라는 전화를 받자마자 도토리묵까지 쑤어 오시느라 늦으신 것이 틀림없다.
차라리 사람을 사서 하지 여전히 집수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영 마뜩찮아 하시는 표정. ㅎㅎ
"지난 번보다는 많이 정리가 되었구나. 근데 저기 저항아리들도 좀 치우고 화초를 이쪽으로 옮기면......."
계속 코치를 하시고 나는 나대로
"저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나중에 다 정리되면 그 때 오셔서 보시라고요."라면서
엄마, 자꾸 그러면 우리 집에 못오게 할거야라는 말이 목구멍속에서 삼켜진다.
물 한잔 드시면서도 눈빛은 어딘가를 살피시는 모습.
엄마의 손.
올해 만75세이신데 나와는 달리 매니큐어도 바르시는 분이시다.
요즘엔 수영을 다니시느라 피곤하신지 매니큐어가 벗겨져 부끄러워하시는 천상 여자이시다.
엄마도 젊어서 무척 고생을 하셨는데 그 팍팍한 삶을 헤쳐나가시면서 우리에게 화를 내셨던 기억이 없다.
늘 조용조용히 말씀하시고 짜증이나 신세한탄, 잔소리는 들어보질 못했다.
그래서인지 자식에게조차 생색내는 것을 안좋아하시고 지금은 며느리뿐만 아니라 딸의 눈치도 보신다.
혹여 우리에게 부담이 될까 늘 신경쓰시는 것이다.
워낙 부지런하셔서 날마다 집근처에 새로생긴 공원으로 운동을 가시는데 그 공원이 동생네 집과 가깝다. 유치원생인 손주며 이제 중학생이 된 손녀가 한참 이쁠 때라 얼굴이라도 보고싶지만 며느리가 신경쓸까 봐 멀찍이서 집만 바라다보고 오신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평생을 친구대신이라며 속에 있는 말씀을 다 하시면서도 딸네에 오려면 뭐라도 들고와야 발걸음이 가볍다고 하신다. 아니면 청소자원봉사를 하러 오신다니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엄마와 나는 그게 뭐 우스운 일이라고 마냥 깔깔대고 웃지만 그 속은 서로가 잘알고 있다. 그러니까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 웃음끝에 눈가에 이슬이 살짝 비치는 경우라고 할까.
그게 바로 딸과 친정엄마이다.
나역시 나중에 우리 하나가 시집을 가서 살게 되면 서로 상처주고 그아픔을 웃음으로 날려보내며 그렇게
나이들어 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 딸이니까,우리 엄마니까 믿으면서...
'어루만지기(feel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게 다~지하철동영상때문이다. (0) | 2011.07.08 |
---|---|
나의 기대수명 (0) | 2011.07.03 |
후니마미님께 무슨 일이?? (0) | 2011.07.01 |
반가운 2D, 반가운 사람. "소중한 날의 꿈" (0) | 2011.06.25 |
고물가시대,따끈따끈한 신간책 공짜로 읽기. (0) | 2011.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