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진짜 용감한 후보

hohoyaa 2011. 7. 15. 15:20

상혁이의 선거운동이 생각처럼 되지않는 눈치이다.
날이면 날마다 비가 억수로 오니 등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의 공약을 알리기도 힘들다.
확성기까지 준비해 온 상혁이의 친구도 그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지 못함에 아쉬워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잊고 있었다.
문득 그저께에서야 선거운동이 생각이 나 학교에 다녀온 상혁이에게 물었다.
"오늘 선거운동 했니?"
"네."
"그래? 어떻게?"
"그냥 교실 돌아다니면서 기호1번을 찍어달라고 했지."
"그래? 친구들이랑 같이?"
"아니, 혼자서."
"뭐? 혼자서? 왜? 친구들이 안 도와준대?"
"아니,그냥. 애들도 놀아야하니까 미안해서 말안했어."
어이쿠~! 이 녀석....... 가슴이 철렁한다.
"상혁아, 네가 친구생각해주는 것은 좋지만......너무 외롭지 않니?"
"괜찮아요. 교실에 가보면 한두명씩은 아는 애들이 있더라고. 태권도랑 피아노,바둑을 오래 했더니
그런 좋은 점도 있어. ^^"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의 교실에 혼자 들어갈 생각을 하니?
그렇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상혁이가 정말 용기가 있고 씩씩하구나."

4년을 다니던 학교에서 작년에 전학을 와 이제 1년 반이 되어가는 상황에 전교부회장 선거에 나간다니
그 무모함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너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굳이 막지는 않겠다고 했었다.
이번 5학년이 이 학교에서 만난 두번째 공동체이다보니 상혁이를 알아주는 학생들이 그 얼마나 될까?
낯설다면 낯선 학교를 혼자 돌아다녔을 아이 생각에 눈물이 핑돌지만 애써 밝게 칭찬을 해주니 상혁이는 신이 났다.
"엄마,엄마. 내가 머리는 잘 돌아가는 것 같애. 오늘 아랫층에 있는 교실부터 가려고 했더니 그 아랫층에는 벌써 다른 팀들이 돌고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얼른 이틈에 윗층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윗층에 있는 교실을 돌아다녔지.그러고 다시 아랫층 애들이 윗층으로 올라 올 때 내가 아랫층을 돌았어.아무래도 같이 맞닥뜨리면 복잡하니까. 내가 머리를 잘 쓴것 같애.ㅎㅎ"
그 말도 내게는 곱게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다니는 다른 아이들의 기세에 눌려 피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연신 상혁이 칭찬을 해주었다. 아마 녀석도 엄마의 마음이 아플까 봐서 그렇게 돌려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녀석이다.

       엄마 가슴이 아플까 봐서...   http://blog.daum.net/touchbytouch/9452582

어제는 교실을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다리가 너무 아프다며 오자마자 어리광을 부렸다.
하루만이라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길 바라면서 오늘은 친구들이 도와줬니?물으니 아니란다.
그래도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안도와준 것은 아니고 아침에는 같이 선거운동을 했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나 점심시간에 친구들에게 놀지 말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은 역시나 미안한 일이란다.

더구나 부회장선거는 자기 일이니 스스로 해야한다고 생각한단다.

어제 방학식을 하고 온 하나와 외갓집을 가면서 이 이야기를 했다.
평소 동생의 성격을 너무 잘알고 있는 하나도 한참을 조용히 있더니
"유상혁, 진짜~! 상혁이가 친구를 배려해서 그렇게 하는 건 정말 누구도 할 수없는 행동이고 내 동생이지만 정말 착해. 그런데 세상에. 어떻게 선거운동을 혼자서 해? "
하나도 울컥하는 모양이다.
거칠고 고집스런 동생이 아닌 정말 순하고 얌전하고 착하기만 한 동생임을 알기에 그런 아이가 홀로 낯선 교실에 들어갔을 생각을 하니 저도 엄마만큼 속이 상하는거다.
"그런데 상혁이는 의외로 굉장히 씩씩하더라~. 어느 반에 갔더니 그 반 아이들이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향하면서 우~우~하고 야유를 보내더래. 그래서 내가 속상했겠다고 했더니 상혁이는 원래 그런 애들도 있는 거라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끝까지 기호1번 찍어달라고 하고 나왔대."
"어휴~! 누구야. 그런 야유하는 녀석들. 상혁이처럼 착한 아이도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는 자신이 야유를 당한 것처럼 펄펄뛰더니 내게 한마디 했다.
"이건 엄마한테도 문제가 있어. 아들이 선거에 나간다고 하면 엄마가 애들을 불러모아서 빵도 사주고 그러면서 선거운동하라고 구슬러야한다고."
"학교에서 그런 것 하지 말라고 가정통신문이 왔던데,그리고 친구들인데 아무렴 그렇게까지야 하겠니?"
"엄마, 나도 초등학교 때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알았어.학교에서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뒤로는 다들 하고있다고. 오늘 우리는 임원 수련회가 있었는데 벌써 전교회장,부회장 엄마들이 도시락에서부터 간식에 이르기까지 정말 엄청 근사하게 준비하셨더라고. 고등학교도 이런데 초등학교는 오죽하겠어? 물론 엄마가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 다 그래. 엄마들 선거라고. 그나저나 걔는 왜 선거에 나가서 나까지 속상하게 만들지?"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하나가 초등학교 때 자기가 반장을 하면 애들한테 뭘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반장선거      http://blog.daum.net/touchbytouch/14689705

오늘이 선거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는 주룩주룩온다.
우리 상혁이가 연설도 어찌나 재미있게 하는지 어제 동영상촬영을 하려다가 친정에 다녀오느라 못했다.
오늘 돌아오면 당락에 관계없이 연설하는 모습을 찍어 간직하련다.
우리 상혁이처럼 진짜 용감한 후보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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