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엄마, 나좀 때려주세요.

hohoyaa 2011. 6. 14. 16:15

아침마다 깨운다.

하나는 문여는 소리만 들려도 자동으로 벌떡 일어나 모든 것을 어둠속에서 눈을 감고 수행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이 감긴다.

하나가 6시 반에 학교에 가고나면 한시간 후에 상혁이를 깨운다.

상혁이는 늘 자기를 기분좋게 깨워달라고 한다.

날마다 레퍼토리를 바꿔가면서 아이가 호기심이 생길만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신이 들기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하루중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지난 금요일에도 "와~! 상혁이가 어느 새 이렇게 커서 침대가 모자라 다리가 밖으로 나왔구나."하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자는 얼굴에 피식 웃음기가 돈다.

그러니 이제 2차로 다리도 주물러주고 간지럼도 태우며 세수하러 가기를 종용한다.

여전히 눈은 감겨있어도 녀석은 들을 것은 다 듣고 있다. 그래서 간혹 대꾸를 하기도 한다.

그 날은 "엄마, 어제 제가 정말 1등한 줄 아셨죠?" 라며 목이 잠긴채 묻는다.

"그래.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게 꽃다발같은 것까지 들고 있으니 정말인줄 알았지."

 

전날에 집을 들어서는 상혁이의 얼굴은 땀범벅과 함께 선물같은 것이 손에 들려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독서골든벨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1등이지만 정말인줄 알고 우리 상혁이 장하다고 카메라부터 찾았다.

그랬더니 녀석, 당황해서 1등이 아니라고 한다.

"엥~? 그럼 이 선물은?"

"아! 이건 바둑학원에서 뽑은 거에요."

"뭐야~....깜빡 속았잖아. ㅜㅡ:"

 

"엄마, 나좀 때려주세요."

눈은 안떠지고 잠은 깨야겠으니 때려달라고까지 말하는 아들.

나는 양볼을 맛사지하듯 손바닥으로 착착착 때려주었다.

그래도 눈을 안뜨니 좀더 세게 때리고 양팔과 다리도 찰싹찰싹 때렸다.

여전히 소식없는 아들, 장난기가 생겨 양볼을 다시 때린다.

여전히 눈을 감고 웃으면서도 약간 아픈지 살짝 찡그린다.

"아프지? 이젠 일어나."

"엄마. 제가 왜 때려 달라고 한줄 아세요?"

"잠깨려고 한거 아니야?"

여전히 눈은 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아들이었다.

"어제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더라."

"언제?"

"내가 골든벨 1등했다고 하니까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어."

"아하! 그거? 당연히 좋아하지. 그게 왜?"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난 1등을 못했으니까 전날 책을 한 번 더 읽을걸하고 후회했어.

 그랬으면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을텐데."

"잠깨려고 그런게 아니고 그것때문에 때려달라고 한거야?"

"응."

"괜찮아, 괜찮아. 1등은 아니어도 3등했다며?"

"그래도 1등은 아니잖아요. 나도 1등해서 엄마한테 문화상품권드리고 싶었거든.3등은 아무것도 없어."

 

 

며칠전 누나가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해서 내게 문상을 상납하는 것을 옆에서 보더니 자기도 언젠가는

엄마한테 문상을 선물로 드릴거라고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문상이 나올 구멍은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바둑학원에서 돌아오는 상혁이의 손에는 날마다 장난감 칼이나 사탕,연예인브로마이드같은 것들이 들려있길래 그런 상혁이를 보고 어디서 이런걸 갖고 오느냐고 했더니 뽑기를 하는 것이란다. 돈이 어디에서 나서 날마다 뽑기를 하느냐고 했더니 바둑학원에서 자세가 바르고 열심히 수업을 하면 학원에 있는 뽑기기계에서 뽑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데 다른 것보다도 이런게 더 잘뽑혀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젠 학원에서 뽑기를 하라고 해도 하지 말라고 하는 내게 그 기계안에 문상이 있어서 언젠가는 자기도 엄마한테 문상을 드리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은 기계에서 이런 상품이 나왔으니 은근 장난기가 발동을 했고

이제껏 1년이 넘게 뽑기상품을 갖고 왔으나 이런 것은 처음 보는 것이기에 나도 깜박 속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진도 상혁이가 하도 신기해서 찍어두었는지  usb에서 발견했다.

 

 

월요일인 어제 상혁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더니 자랑스레 내미는 문상.

하하하하. 독서골든벨 우수상이라 선명히 찍힌 문상이다.

자기도 문상을 탔으니 사진을 찍으라고 해서 찍는데 거꾸로 들린 상장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박완서의 '자전거도둑'과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이 두권이

이번 5,6학년 독서골든벨 대회 추천도서이다.

이 책들을 사주었더니 학교에 가져가서 책이 없는 애들에게 빌려주고 정작 자기는 다른 책을 보고있던 녀석.

독서골든벨 날짜가 다가와도 책은 돌아오지 않고 다시 상혁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애들이 아직 다 안봐서 달라고 하지 않았단다.

하나도 나도 혀를 끌끌찼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는 책을 빌려주는 사람이고 더 바보는 빌린책을 돌려주는 사람이란 말도 있건만..."

내 탄식에 하나는 "엄마,그건 비유가 이상해. ㅎㅎ" 그러면서도 동생의 대책없는 자비심에 말문이 막혔다.

낼모레 골든벨이라더니 어쩌려고?? 내일은 꼭 받아와서 한번이라도 읽고 학교에 가라고 일러주면서도 녀석 성격상 책을 받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생각은 좀 있는지 책을 받아왔다고 하더니만 태권도하느라 피곤해서 일찍 자고 책은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읽겠단다.

그렇기에 더더욱 기대를 하지 않았던 독서골든벨.

 

 

아침에 잠이 덜깬 상태에서도 전 날 자기의 거짓말에 엄마가 좋아하던 얼굴을 생각하고 울컥했다는 상혁이.

뒤늦게나마 자기가 좀더 열심히 읽었더라면 1등도 했을텐데 후회를 하던 상혁이.

드디어 누나처럼 문상을 상납하며 저리도 기뻐하는 상혁이.

그 문상은 지금 내게 있다.

그 문상으로 무엇을 할까나?

엄마가 상혁이가 좋아할만한 재미있는 만화책 사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