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죽은자의 입김.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hohoyaa 2009. 12. 30. 20:58

비오는 날 시끄럽게 울어대는 청개구리의 우화를 빗대어도 얼추 들어 맞을 듯한 이야기이다.

 

더운 여름 날 침대에서 죽어가는 엄마는 아들이 자신의 관을 짜는 지루한 소리를 듣고 있다.

엄마는 남편인 가장에게 자신이 죽거들랑 자신의 고향에 묻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여기까지 읽고나니 토미 리 존스가 메가폰을 잡았던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http://blog.daum.net/touchbytouch/10312460) 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는 밀입국을 한 멕시코 남자이고 그가 총격사건으로 숨지자 그의 동료는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기 위해 시신을 말등에 태우고 사막을 가로질러 그의 고향 멕시코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는 시신에 무슨 방부 처리를 했던가,시신에서 물도 나오지 않았고 건조한 사막기후하에서 퍼석하게 말라 밀랍인형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에서는 그 계절이 장마철이 아니던가.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왜 자신의 시신을 고향에 묻어달라 했던가?

무책임하고 얌통머리없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알면서도 왜 그런 주문을 했던가?

그냥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남편이 편해질까 봐 말하자면 그것도 그럴듯한 복수라고 그 방법을 선택했을까?

 

친정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 어느 날 아침 너희들이 내가 있던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 '어? 엄마가 돌아가셨네?' 이런 얘기가 나오도록 조용히 죽고싶다."

엄마와 우리는 가끔씩 그 얘기를 하면서, 들으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박장대소를 했는데 엄마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그게 참 궁금했다.

엄마는 늙어서 몸이 아플 때마다 자식들한테 구구절절이 하소연하게 되는 시간이 올까 봐,

그것이 못견디게 싫다고 하셨다.

의지가 강하고 자존심도 강한 분이시라 절대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셨다.

그 저변에는 아마 멋대가리없는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이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고 행여 엄마 당신으로 인해서 자식들이 남의 식구(며느리나 사위가 되겠지.)에게 기를 못펴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으신게다.

나는 엄마에게 돌아가신 후에 우리 자식들에게 꾹 눌러진 짐 한덩이씩을 내려 놓고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라고. 하지만 정작 자식들을 위한다면 자식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늘 말씀드렸었다.

비록 우스갯소리로라도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시길 원치 않는다.

 

그런데 애디는 그 편을 택했다.

남편과 자식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보이지 않고 진정으로 위로를 받거나 용서하는 시간을 거부했다.

그건 남겨진 사람들에게 '엿먹어라'하고 손가락을 곧추 세우는 것과 뭐가 다른 것일까.

결국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그 곳은 그녀에게 있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척박한 모래밭이었을까?

아주 어린 바더만이있는 것을 보니 나이도 그리 많을 것 같지 않고 학교 교사였던 전적으로 미루어 볼 때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닐진대 애디는 돌이킬 수 없는 한마디를 던지고 죽기 위해 누워있다.

아마도 청개구리같은 앤스가 마지막까지도 그 먼길을 가는 동안 땀이 흐를까 걱정되어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디를 자기 집 근처에서 장사지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

그러나 결국은 앤스가 애디의 마지막 소원을 충실하게 들어주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남몰래 자신이 준비해온 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면죄부가 필요했던 것이다.

애디를 고향에 묻어주기 위해 떠난 험난한 여정을 통해 동네사람들에게도 할만큼 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자신은 응당 선물을 받을만한 자격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게다.

아들인 캐시의 다리가 시멘트독으로 썩어가던 말던, 듀이 델의 배가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던 말던, 달이 경찰서로 잡혀가던 말던, 쥬얼에게 그토록 비굴하게 굴면서까지 자신은 새 장가를 들기 위해 새 틀니가 필요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멋지게 한 방 먹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자신이 아끼던 자식들만 못할 고생을 시키고 앤스라는 남자는 이제 기꺼이 땀을 흘리고 싶어할 것이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저자
윌리엄 포크너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3-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넘어가는 오디세이장인 정신과 천재성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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