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에 있던 하나가 전화를 했다.
윤흥길의 '장마'와 카프카의 '변신'을 사달라는 전화다.
나는 "어? '장마'는 집에 있어. 그러니까 '변신'만 시키자."하고 부지런히 장마가 있음직한 책꽂이를 살펴본다.
이방, 저방, 베란다와 부엌근처까지 샅샅이 살펴 보아도 눈에 띄지않는다.
이상하다. 분명히 있었는데. '장마'랑 '에미'도 같이 봤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보니 그 책이 없다.
이럴 때면 이사를 다니느라 책들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누구는 우스갯말로 책상자가 무거워서 아저씨들이 버린다고도 하던데 정말 이사가 끝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도 무언가 필요해서 찾아 보면 문득 옷이나 책의 빈자리를 발견하게 된다.
분명히 있다고, 내가 샀다고 생각한 책이 없으니 다시 주문을 한다.
하나의 책을 주문하면서 상혁이 앞으로도 몇 권, 그리고 내가 읽을 책으로는 '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를 주문했다.책을 좋아하는 나, 읽기위해 사는 것인지 모으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마음에 드는 책은 일단 사놓고 본다. 책값이 한두푼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빌리면 좋을테지만 책을 빌리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고 왠지 한 번 읽고 돌려주기엔 아쉬움이 남을까 봐서 꼭 책을 사서 본다.
그러다 보니 넘쳐나는 책들로 -개중엔 진짜 가치없는 책을 제목만 보고 사서 본전 생각이 난 적도 있다.-집이 어수선해져서 어쩌다 정리도 해 보지만 이렇게 종종 없어진 책을 발견할 때면 무지 속상하다.
이 책은 이상 문학상 1호집이다.
우연히 오래된 책을 꺼냈는데 여기에도 윤흥길의 작품이 실려있었구나.
새로 산 책과 세월의 더께가 앉은 책의 모습.
펼쳐보니 세로편집이다.
여백도 많고 책가장자리는 누우렇게 떠가고 있다.
책꽂이에 꽂힌 색바랜 책에는 선뜻 손이 안가게 되는데도 두번 읽는 것은 극히 드문데도 그저 바라만보아도 좋은 마음으로 버리질 못하는 책들.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잘 알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작은 것 한가지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버리길 아까워하니 이 세상을 뜰때쯤이면 미련이 너무 많아 영혼이 무거울 것 같다.
한 번만 읽고 쌓아두는 책인데 이젠 빌려서 읽는게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훨씬 환경친화적이니 그 약속을 실천해 볼까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동네 도서관은 거의 아동 대상의 공부방모양이고 제대로 된 도서관은 너무 멀리 있기도 하거니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 어드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니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로 배송되어지는 인터넷 서점이 내게는 젤 가까운 도서관이고 서점이다.
나의 손 때묻은 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다.
글의 소제목만 보아도 종이에 관해, 책에 관해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 고온,국지성 호우,때아닌 폭설,한파등 기상이변이 이야기되어질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화석연료의 심각성과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숲이 벌목으로 사라져간다는 소식에 혼자 분개했지만 그게 나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북극 곰의 뜨거운 눈물이 내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첫장을 펼쳐보니 책을 좋아한다는게 소극적인 의미의 죄악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책소개에 보면 재생지에 인쇄된 '해리포터'도 있다고 한다.
지난 번에 산 도감은 종이의 질이 별로라 칼라인쇄가 맘에 안든다고 실망했는데 욕심껏 내 눈의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몇그루의 나무가 없어지는 것일까?
내가 한 번 보고 쌓아둔 책들은 어느 정도의 숲을 없앤 결과물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손안에 들린 눈부신 책을 새로운 눈으로 봐야할 것이다.
더불어 재생지로 출판되는 책이 많아지고 또 그 책을 반드시 사서보자라는 의지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차근차근 읽을 예정인 '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 아직 읽지 않고 서둘러 말해 보았다.
그리고 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이 책은 재생지로 만들었나요??
아마 재생지로 만들었다면 책의 앞뒷장에
'이 책은 재생지로 만들었습니다.'라고 씌여 있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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