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만지기(companion )

연하가 아니라 다행이야.

hohoyaa 2008. 11. 7. 21:03

 

 

 

난 집안에서 뱅뱅 돌거나 손은 꼼지락거릴지언정 밖으로 다니는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동갑내기 남편은 날더러 더 늦기전에 운동을 해야 한다며 같이 운동하러 나가자고 지난 여름부터 부쩍 성화가 심해졌다.

무슨 얘길 해도 나는 언제나 귓등으로 흘려 들으며

"운동은 자기같이 배나온 사람이 하는거야.난 가뜩이나 힘도 없고 배도 별로 안나왔는데 여기서 운동까지 했다간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어서 허리가 꼬부라질거야. 그러니 자기나 열심히 하슈~."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나만 빼고는 남편과 애들 모두가 콧구멍에 바람들어가는 걸 좋아하는지라 방학 중에는 애들이 졸라서 어쩔 수 없이 온 가족이 산책로로 날마다 밤마실을 다녔고 애들이 개학을 하고 해가 일찍 져 버리자 우리 둘이

그 코스를 아침마다 돌았다.

길지 않은 코스지만 다녀오면 한시간 거리. 이력이 붙어서인지 한 바퀴 돌고오면 몸도 가뿐, 기분도 좋고 남편의 밥맛도 살아나기에 아침 산책은 그래도 해 볼만 했다.

하지만 흐린 날이나 차가운 날에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추위를 잘타는 나는 한 겨울보다도 이런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지니까 괜히 몸이 무겁다고 엄살을 떨고

그러면 남편은 곧 협박을 시작한다.

지금 부지런히 따라 나서지 않으면 늙어서는 안 데리고 다니겠다고.

늙어서 자기 혼자 실컷 다닐테니 날더러 후회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 나는 '설마?' 하면서도 만에 하나 그럴 경우가 오면 어쩌나 싶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나선다.

남편은 걷는 것이 별 도움이 안된다며 땀이 날 정도로 달리고 싶어 했으나 나는 뛰는 것보다 걷는 쪽을 택했고, 느릿느릿 그야말로 여기 두리번 저기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자기는 뛸테니까 날더러 자전거를 타고 따라오면 어떻겠느냐고 은근히 부추기는데, 어릴 때 배운 자전거를 그나마 찻길에서는 안 타봤기에 야트막하나마 언덕으로 이루어진 그 산책로가 나는 겁이 났다.

오가는 차들을 피하기도 그렇고 혹 차를 피하려다 한 순간 아차해서 내가 아래로 굴러 떨어질까 겁나기도 해서 자전거는 안 타겠다고 난 걸어서 �아 갈테니 자기나 뛰어 갔다 오라고 해도 남편은 끝내 뛰는 것을 포기하고  같이 걸어 주었다.

 

 

 

걸어가다 보면 언덕밑으로 작은 개울(사실 개천인지도 모르지만.......)이 있는데 남편은 그 건너 언덕을 넘어 가면 어디가 나올지 한 번 가보자고 했다.

난 더 이상은 반경을 넓히고 싶지 않아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내가 없는 날을 받아 남편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그 개울을 건너갔다 오겠다고 했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지나서 옹색하나마 차 한대가 지나갈만한 넓이의 콘크리트 도로가  징검다리를 대신하고 있고 거기에서 다시 완만하지만 굽이진 언덕 너머로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가겠지.

다리 교체 공사가 한창인 그 곳에서 길이 막혔을 것이라고 난 큰소리를 쳤었는데.

남편은 자전거를 타라고 보내 놓고 나는 공방가는 버스에 앉아 상상을 해 본다.

'이제 전화 올 때가 됐는데? 그냥 공사중이라 길이 막혀서 그냥 돌아왔다고 하면 좋겠다. 내가 해 볼까?'

누가 이기나? 난 궁금증을 꾸욱 눌러 참았고 성질 급한 남편은 내게 전화를 했다.

개울 건너 언덕 너머 떠난 남편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린다.

"이야~! 그 언덕을 넘어서 비포장 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데 자기가 보면 진짜 반할거야. 야~! 진짜 좋다. 코스모스도 있고 왕숙천이 있고 여기로 가니까 농수산물 시장이 금방이야."

그 기세로 보아 남편은 분명 언제고 나를 자전거 태워 끌고 나갈 것 같아 불안했다.

 

결국 그 다음 날 나는 남편의 협박에 무릎을 꿇고 이번엔 자전거까지 타고 끌려 나갔다.

처음엔 골목길도 무서웠고 가끔씩 샛길을 찾아 들어 온 차가 다니는 산책로도 무서워 자꾸 자전거에서 내리게 되고 내리지 말고 옆으로 피해서 가라는 남편의 말에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첫 날은 저 내리막이 너무 급경사라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남편을 답답하게 했다.

맨날, 자전거 얘기만 나오면 내가 어렸을 적에 아파트 경사로에서 두손을 다 놓고 탔다고 얼마나 자랑을 했던가!

하지만 지금 보는 경사로는 너무 겁이 났다 ,자칫하면 개울로 곤두박질 칠수도 있다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맴맴 맴을 돌았다.

언덕 너머 나있는 비포장 길에서는 언덕 아래가 천길 낭떠러지로 보여 더더욱 불안했다.

 

 

비포장 도로가 끝나고 억새풀이 보인다.

 

그러다가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오니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코스모스 들판을 가르며 맘껏 달린다.

"좋지? 나오니까 얼마나 좋아? 저기 저 혼자 걷는 아줌마 봐봐. 얼마나  심심해 보이나.자기는 이렇게 남편이 옆에 있으니 얼마나 좋아?"

"흥흥흥... 난 저아줌마가 부럽네.혼자 자유롭잖아.맘대로 다니고 맘대로 쉬고."

"그래? 그럼 혼자 갈래? 소원대로 해줘?"

그러면서도 남편은 내 옆에서 달려 주고 나는 남편한테서 멀어질까 봐 힘들어도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이왕 나서는 길,마트와 농수산 시장에서 장보기를 목표로 미리 배낭까지 메고 왔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땅을 딛고 서니까 막상 이젠 집에 갈 일이 걱정이다.

그래서 잔꾀를 부려 마침 필요했던 애들 이불을 사 가자고 하면서 이불은 부피가 커서 자전거에 실을 수가 없으니 남편더러 혼자 자전거 타고 가서 차를 갖고 나오라 했는데 이 방법이 먹히질 않는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이 끊기고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다시 그 길을 자전거로 달려갔다.

우리 집까지 얼추 왕복 8Km는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첫 날을 보내고 집에와서는 완전히 뻗어 버렸다.

다리보다도 핸들을 잡느라 긴장했던 어깨가 많이 아팠다.

근육이 뭉치면 운동으로 풀어야한다며 그 다음 날 또 자전거를 타자고 하는 남편을 어떻게 하면 따돌릴 수 있을까 궁리를 하며 밤을 보낸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은 자전거를 월요일,수요일에만 타자고 했다.

두번째 날엔 그래도 내 체면이 있지,또 남편이 나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려야 하니 그것도 좀 미안했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기로 굳은 마음을 먹고 그 첫번째 관문인 경사로를 브레이크 안 잡고 내려갈 수 있었다.

초겨울 날씨에 왕복 8km를 달려서 점심을 사 먹고 배낭에 장까지 봐 오니까 상쾌하고 재미가 있긴 있다.

하지만 딱 요만큼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토요일 날 남편이 아들과 함께 왕숙천이 한강와 만나는 구리나룻터(?)까지 다녀 온 것이다.

상혁이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빠와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나 왔다며 자랑하는 녀석에게 일기에다가도 자전거 이야길 쓰면 좋겠다고 맞장구를 좀 쳐주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근심을 알아 채질 못했다.

막상 월요일이 되니까 어린 상혁이도 가는데 왜 못 가느냐며 정말 가슴이 탁 터지고 좋다고, 안 좋으면 가잔 말도 안 한다, 앞으로 혼자 다닐거냐, 여기와는 공기가 다르다하면서 계속 부채질이다.

결국 남편의 성화에 한 번 가보기로 한다.

 

 

정리가 잘 된 한강변엔 운동 시설이 여러군데에 있었다.

처음 보는 재미있는 기구도 있어서 골고루 섭렵을 하고 몸무게도 재어 보고,,,

발동이 늦게 걸려 그렇지 일단 시작을 하면 누구보다 좋아하고 신나는 내 성격이라 남편보다 내가 더 흥분한다.

이런 좋은 곳을 진즉 알았더라면 여름방학에 심심치 않았을텐데.......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애들과 좀 다니고 내년 봄부터는 우리 동네 비포장 도로도 완공되어서 아이들과 자주  왔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를 흘러가던 왕숙천이 다른 지류와 함께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

 

나릇터일까?

 

우리가 마음대로 명명한 나룻터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커피 한잔씩 마셨다.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커피보다도 남편을 위해 물을 싸와야겠다고 기특한 생각을 하며 모처럼 먼길을 온  그 감격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남편은 저 위쪽으로 한 번 가보자고 한다.

"우와~! 너무 무서워.옆으로 떨어지면 그냥 한강이잖아.난 안 갈래.여기가 좋아."

다시 돌아 오면서 남편은 못내 아쉬운 눈치였고 난 절대 안 가겠다고 다짐또 다짐을 했으나

다음 날 결국 남편의 강권에 못 이겨 저 오르막 한강변을 달려서 끝을 보고야 말았다.

 

 

휴~! 뒤를 돌아 보니 아찔하다. 내가 저 길을 달려온거야? 

 

여기가 끝이다.

구리시의 끝.

이 길로 계속 가면 여의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언젠가 또 여의도까지 가보자고 하는 지칠 줄 모르는 남편의 의욕이 예사로 안 들린다.

 

오른 쪽 나뭇잎에 걸린 건물이 워커힐 "W 호텔".

길만 연결되면 저 정도까진 갈 수 있겠다 싶어 내년 벚꽃축제가 기다려진다.

 

한강 건너 암사동까지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설마 자전거 도로는 안 만들겠지?! 만들면 안 되요.^^;;

 

쌀쌀한 날씨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

여기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바닥에 씌여진 숫자를 계산해 보니 왕복 30km에 두시간 정도가 걸렸다.

"아~! 좋다. 여기까지만 다녀도 운동이 되고 좋겠네~."

"여기보다도 아까 나룻터쯤에서 건너다 보이는 데 있잖아? 거기가 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아니? 난 여기가 좋아. 그 쪽엘 어떻게 가?"

"다리 건너 가면 되지?"

"난 다리는 무서워 잠깐 비틀하면 옆이 바로 물이잖아. 나 몰래 보험 들어 놓은 것 있어?"

"^^"

 

 

남편이 건너자는 다리는 이것보다 물이 많다. 하긴 물이 없어도 큰 일이지.

어쨌든 난 저 블록이 더 겁난다.

차가 올 때 피하느라 옆으로 붙었는데 페달이 저 구조물에 닿아서 중심을 잃을까 봐서.

그러고 생각해 보니 자전거를 배우던 어린 시절에도 난 넘어지지 않고 배웠다.

넘어질 것 같으면 얼른 발을 내려서 자전거는 쓰러뜨려도 난 무릎 한 번 까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웠는데 남편 말로는 그래서 두려움이 큰 것이란다.

자기는 어떻게든 타 보려고 혼자서 넘어지고 깨지고 하면서 배웠기에 자전거를 타게 되자 겁나는게 없었다는데 그렇다고 내가 이 나이에 다시 넘어져 가며 배울 수는 없는 일.

그러니 우리 이 길로만 다니자 했더니 내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나한테 좀 작은것 같으니 자전거를 좋은 걸로 바꿔주고 자전거 전용 복장도사주겠단다.

"싫다구~...난 이게 좋다니까. 자전거도 이걸로 족하고 옷도 필요없어."

 

내가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남편의 집요함은 넘을 수가 없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자전거를 바꿔 탔는데 이게 너무 편하고 안정감이 있더라는 것이다.

당연히 스피드광처럼 마구 달렸다.

내리막이고 오르막이고, 옆으로 한강이 흐르건 오토바이가 지나가건, 내가 가고 있는 곳이 보행로이건 주차장 입구이건 상관 없이 신나게 달리고 또 달렸다.

"훨씬 편하지? 자전거 사야겠지? 쇼바가 있는 제일 좋은 걸로 사 줄께."

아차하는 사이에 또 남편에게 걸려든 나.

흐으으응~~. 콧소리로 항복을 했다. 어쨌건 이 정도는 되어야 자전거 타는 재미가 있겠지?

 

오늘도 자전거 타러 가자는 남편 말에

"일주일에 두 번이었는데 다 탔잖아.나도 공방에 가서 취미 생활 좀 해야지. 정 타고 싶으면 자기 혼자 갔다 오던지......."

오랫만에 공방에 나가 나무를 만지느라 여념이 없는데 전화가 왔다.

"이야~~! 나 여기 다리건너 왔거든? 여긴 자기가 무서워하는 차도 별로 안 다니고 한적하니 정말 좋다.

딱 자기가 좋아할만한 분위기야. 완전 별천지네 별천지. 풍경도 새롭고 무슨 축제하는 곳이어서 음식점도 많은데? "

그러면서 음식점마다 내건 전문 메뉴까지 읊어 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에고~! 이젠 월요일엔 분명 저기 가자고 할거야.

그러니까 난 다리도 건너야 한다는 말이지.

아무리 버텨도 소용없이 남편의 작전에 말려 들고 말거야.

동갑이기에 다행이지 연하 남편이었으면 어찌 다 감당할 뻔 했어?

월요일에 비나 와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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