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만지기(companion )

내 돈,남편의 돈,우리 돈

hohoyaa 2008. 2. 15. 01:59

 

 

 

지난 2일 남편에게 보낸 문자.

남들은 이 문자를 보고 비웃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꽤나 소심한 성격이며,

남편이라는 사람은 십원 한장의 씀씀이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쪼잔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나도 물론 처음부터 이런 아내는 아니었다.

결혼 전 나의 직업은 애니메이터였고 당시엔 수입이 꽤 좋은 직종이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애니메이션 업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던 당시에는 모두들 대기업을 선호했었고 여자 직업으로서는 선생이 최고이고 그래야 결혼도 잘 한다고들 하셨다.      

그 무렵 난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잘 알려지지도 않은 직종인 ㅡ 무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그 시절 나의 직업을 얘기하면 모두들 못 알아듣고, 만화영화를 만든다 하면 만화책을 연상하기 일쑤였다.ㅡ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들어가 있으니 어른들 보시기엔 상당히 난감했었나 보다.

그러나 입사 몇달만에 시중은행 지점장이셨던 당숙은 그 분의 것을 훌쩍 넘는 월급을 타 온 내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곤 엄청 놀라셨고, 유학하고 돌아온 사촌들이 외국에선 애니메이터를 고소득자 10순위에 들 정도로 다 알아 준다며 거드는 바람에 그나마 어깨를 펼 수 있었다.

그 때부터는 나를 보는 주위의 시선이 걱정스러운 것에서 호기심과 기특하다는 선의의 부러움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마 그 때부터 돈에 대한 개념이 남들보다는 훨씬 평가절하된 상태였을것이고 연극배우와 결혼할 수 있었던 용기도 계속 이렇게 내가 벌어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었던 것이리라.

 

결혼 후 하나를 낳고 쉬면서도 심심하니까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일을 가져다 했고 애기를 보면서 일주일에 한두번 잠깐 회사에 다녀오는 사람의 월급이 남들 한달 치 월급 값을 했으므로 돈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다.

그와 더불어 연극을 하는 남편에 대한 배려 또한 없었기에 어느 날에는 100만원이 넘는 책을 하나앞으로 덜컥 구입을 했다.

책이 오고 액수를 들은 남편은 어마어마하게 놀랐고 화를 냈다.

어떻게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랑 한마디 상의 없이 거금을 들여 책을 사느냐는 것이다.

난 속으로 '내가 벌어서 내가 낼건데, 더구나 우리 아이를 위한 책인데, 그게 뭐가 나빠서?'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말을 차마 입밖으로 내 뱉을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그 때 내가 내 남편이 연극을 하면서 10년동안 벌은 돈이 1000만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면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리라.

타향살이 총각이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극장에서 숙직을 도맡아 하면서 오고가는 선배들에게 얻어 먹는 술로 허기를 달래가며 모은 돈으로 아버지의 칠순 준비를 위해 착실히 저금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리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난히 무서움을 타는 남편이 극장 무대에서 귀신을 보았으면서도 밤이면 어김없이 그 굴속같은 어두움에 고단한 몸을 뉘였다는 걸 진즉 알았더라면 차마 그렇게 이기적 소비는 안 했을 것이다.

그 날 남편은 화를 냈었다.

그것은 남편의 권위를 내세운 뻣뻣함이 아니었다.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무참하게 짓밟은 철없는 아내에의 항변이었다.

난 펑펑 울었다.

우리 부모도 나에게 그렇게 안 하셨는데 동갑내기 신랑에게 야단맞고 나니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겨 찬바람에 모두 날려가 버리는 것같았다.

다행히 남편은 책을 물르라는 말은 하지 않았기에 난 그걸로 감지덕지 했고 그 후로는 돈쓰는 일을 남편과 상의했다. 일방적 통보가 아닌.

 

하나가 3살 무렵 다시 회사에 본격적으로 출근하면서부터는 더욱더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매일 출근하고 남편은 가끔씩 나가는 사람이니 자연 하나는 아빠손에서 많이 컸고 혹여 남편이 자격지심이라도 생길까해서 내 마음대로 돈을 쓰지 못했고 큰소리 또한 못 쳤다.

여자가 돈을 벌면 돈버는 죄인이란 말이 딱이다.

그러나 아마 남편 입장에선 내가 유세를 떠는것처럼 보이는 양이 있었을 것이나 그것을 빌미로 오해하고 다투고 하진 않았기에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편하게 지냈다.

 

20년이상 해오던 일을 작년에 그만두기까지 망설임이 있었다.

특별히 내 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예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의욕 또한 저하되어있는 상태에서 일의 양까지 줄었으니 별 미련없이 그만 둘 수도 있었으나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가 내 맘대로 쓸 수있는 최소한의 동전지갑이 아쉬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들에 비해 과소비나 사치를 한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남편보다는 내가 쏠쏠한 소비를 많이 했기에 상대적으로 앞으로 내게 닥칠 돈에 대한 갈증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내게 생활비외에 순전히 내몫으로 얼마면 되겠느냐고 원빈 스탈로 물었었고 난 일주일에 10만원?하고 농조로 받아쳤다.

남편은 인색한 남자는 아니었다

인색했다면 재작년 돈도 안 되는 자선바자용 수세미를 뜨겠다며 시간과 돈을 들여 한여름내내 실과 바늘을 들고 사는 나를 곱게 봐줄리가 만무이고 500장 정도의 수세미를 뜨면서 정작 실값이라도 건질 생각은 못하고 주위에 나눠주기만 하는 나를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보아줄리 없었을 것이다.

사실 실값이 많이 들긴 들었는데 그 가격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난 돈계산엔 맹추이다시피하고 지금은 괜히 내가 돈을 못 벌고 있으므로 또 죄인같고 셈에 어두운 여자의 지갑을 알아서 채워주는 남편에게 왠지 몹쓸 짓을 시킨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돈과 남편이 벌어 와서 내가 받아 쓰는 돈이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까?

누구는 내가 아직 아줌마가 덜 되어서 그렇다고도 하던데 하필 요즘 다시 돈 벌러 나가는 아줌마들이 늘어나 자꾸 비교가 되어진다.

그러면서도 난 쉬지 않는다.

공방에 다니면서 아이들 가구도 만들어 주고, 손뜨개로 선물을 대신하기도 하고,화초를 돌보고 블로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남들 보기엔 아주 가정적인 여자로 보일 듯도 싶으나 친정 어머니는 이런 나를 한마디로 정의 하셨다.

어머니 말씀이 "차라리 재주가 없는게 낫지.넌 지금 비싸게 놀고 있는거야."

처녓적에 다니던 도립병원 간호사를 결혼과 동시에그만 두신게 철천지 한이라시던 엄마 눈엔 가족을 위한 일을 한답시고 그저 돈만 축내고 사는 내가 못마땅하신게지.

 

내가 쓰는 것을 뭐라하는 남편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돈만 쓰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난 그 날도 문자를 쳤다.

 

 

그리고 사고도 같이 쳤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 있었던 소철이 너무 갖고 싶었다.

작년 여름 제주에 갔을 때 열매를 가져와 심었으나 기약할 수 없는 내일보다는 차라리 사고를 치는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남편의 돈으로 내 만족을 얻으니 이제 비로소 우리 돈이라는 생각도 들고 남편이라는 자리가 나에게 주는 위안과 안락함에 대해 고마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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