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만지기(companion )

컴플렉스...

hohoyaa 2009. 3. 3. 15:24

 

하나가 우유를 먹겠다고 했는데 마침 우유가 떨어져서 슈퍼에 보내며 그 동안 모은 스티커표를 들려 보냈다.

5000원 매상에 한 장씩인 스티커 50장에 롤화장지 24개를 주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이 곳에 이사와서 3년이 되어가는데 오늘 들려 보낸 것이 두번째 표이다.

그러면서 지난 번에 한 번 당한(?) 기억이 있는 나는 하나에게 만약 24롤 대신 10롤을 주겠다고 하면 그냥 오라고 당부까지 해서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하나는 우유만 덜렁덜렁 들고 왔다.

"엄마,24롤은 안 된대요."

"그래? 누가? 주인 아줌마가?"

"아니, 첨 보는 아줌마던데......."

 

지난 번에는 내가 직접 그 표를 들고 화장지를 받으러 갔었다.

그랬더니 수퍼주인은 이제 24롤이 안나온다며 10롤을 주었는데 다음 날 물건을 사러 간 슈퍼에는 버젓이 24롤 화장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뭐야~이건...내가 또 속은거야?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정도로 두껍지 않은 나는 그저 화장지의 롤수가 적어 억울한 마음보다는

나를 만만하게 얕잡아 보고 그런 수를 썼나싶어 화가 났다.

그 전부터도 상혁이나 하나를 통해 심부름을 보내면 스티커를 안주기가 일쑤였고 내가 갔을 적에도 스티커 달란 말을 안하면 아예 줄 생각을 안하기도 했던 슈퍼였다.

처음 몇 번은 스티커 제도가 없어진 줄 알고 예사로 넘겼으나 있으면서도 안 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반드시 챙기도록 식구들에게도 당부를 했다.

그 후로도 집에서 과자를 만들다가 박력분이 모자라 하나에게 심부름을 보냈더니 박력분이 없으면 그걸로 끝나면 될 것을 애한테 집에서 해 먹으면 돈이 더 든다는둥 그냥 사 먹으라는둥 안해도 될 말을 해서 애 기분만 상하게 하고 건네 듣는 나역시도 심기가 좋지 않았기에 이번 일이 상당히 거슬렸다.

 

난 전화를 찾아 들어 슈퍼로 전화를 했다.

그러고는 전화받는 이에게 혹시 주인이 바뀌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화장지 얘기를 했다.

스티커를 붙인 표에는 분명히 24롤이라고 적혔는데 24롤을 안 준다니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부득불 안된다고 하면서 주인이 있으니 바꿔 주겠다고 한다.

사실 주인까지 닿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단골이랍시고 드나든 사람이 화장지 하나 때문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린다거나 말다툼은 생전 해 본적이 없는 새가슴이라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갑자기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은 어떻게든 지금은 전화를 끊고 나중에 남편이 오면 얘기를 해서 해결하도록 하는게 낫지 않을까? 남편은 나보다 훨씬 조리있게 이야길 하고 상대방도 그리 우습게 보지 못할테니까.

그리고 남편이 그냥 10롤만 받으라면 못 이기는척 받을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한 나는 괜히 혼자 흥분해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저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 그저 유야뮤야 되어서 다른 날 내가 가서 얘기해 볼 생각이었다.

다시 얘길하면 다 잘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퍼의 전화는 발신자 표시 전화기였나 보다.

우리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려서부터 늘 순진하다못해 어리숙하다는 말을 들어 왔던 나는 무의식중에 나는 내가 만만하게 보이고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실제로 주윗 사람들에게  이용도 당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내가 똑똑하게 얼굴을 보고 따지지를 못하니 당했는지 어쨌는지 알지 못하고 다만 뭔가 꼬였다 싶으면 다시는 상종을 안 하는 고집은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큰소리치거나 싸우지 못하는 나는 내가 이런 식으로 당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남보다 몇곱절은 더 내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화가 난다.

왜 사람들은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일까?

 

주인 아줌마는 내게 요즘 물가가 올라서 24롤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아니,물가가 오르기 전에도 스티커 표엔 24롤이라고 적어 놓고 10롤만 주더니 이제는 물가 핑계를 대느냐고,

물가가 올랐음에도 우리가 그 전 가격에 물건을 산 것도 아니고 오른 가격을 주고 샀는데,

만약 물가가 내리면 24롤 대신 36롤이라도 줄 생각이냐고,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따지는게 겁이나서 방어적으로 목소리가 가라 앉았었고 다음엔 이왕 이렇게 된 것 약점은 잡히지 말아야겠다 싶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고저 한 층더 싸늘하게 말했다. 내 생각이지만.....

그 가게가 개업할 때부터 이용해 왔는데 한 번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자꾸 약속을 어기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따졌더니 우리더러 언제 이사를 왔느냐고 묻는다.

이사 온지 3년 되었다니까 자기네 가게 역시 3년이란다.

아마 머릿속에서는 3년간 가게를 드나들던 사람들 얼굴을 생각하며 이렇게 따지고 있는 내가 누군지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애길해도 한사코 24롤은 안된다는데 옆에서 두 눈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두 아이를 보니 여기서 절대 밀릴 수는 없겠다 싶은 오기마저 들었다.

결국 슈퍼에서는 얼굴을 좀 봐야겠다고 24롤을 줄테니까 나오라고 했다.

얼굴을 보고 단골인지 아닌지 확인하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는데 내가 또 그럴 정도의 뻔뻔함은 없어서 그저 24롤 주겠다는 말만 듣고도 벌써 받아 온양 위안이 되었다.

비록 전화상이었지만 난생 처음 애들 앞에서 1대1 대결을 벌였는데 이긴 것이다.

그러니까 휴지는 안 받아도 된다.(사실 받으러 가기도 싫고 용기도 없었다.)

 

전화를 끊었더니 하나가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갑자기 돌변할 수가 있어요?"

"왜? 엄마는 큰소리 못 칠까 봐?   두근두근 "

"아니 그게 아니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엄마가 휴지때문에 화를 내니까.

그리고 그럴땐 좋은 말로 달래가면서 받아야하는 것 아니에요?"

순간 나는 뜨끔.

"그렇지 않아.이번이 두번짼걸? 그러니까 화가 나지.

너도 앞으로 살아 가면서 받을건 받고 줄건 주고 그래야지 괜히 너 혼자 참고 좋은게 좋은거다하면서 일일이 따지지도 않고 넘어가면 남들이  더 우습게 보면 우습게 보지,  절대 그 마음 안 알아 준다.

그리고 엄마도 화나면 따지기도 하고 무서운 엄마야.

너희도 앞으로 조심해.  두근두근"

잔뜩 눈치를 보고 있던 상혁이는 이 엄마의 약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가 십자가를 지려 한다.

"엄마, 내가 가서 휴지 받아 올까요?"

"아니야,됐어. ㅜㅡ;"

"나 슈퍼 아줌마한테 인사도 잘하고 친해요."

하나는 또 다른 걱정이 있다.

"엄마, 그 아줌마가 엄마의 남편이 누군지 알아요?"

"그럼, 알지. 엄마의 딸,아들이 누군지도 알거야. 왜? 엄마가 창피해서?"

"아니, 그게 좀......."

"이제 거기 가지 마. 앞으로는 할아버지 슈퍼로 가."

"그 때부터 엄마가 그랬잖아요. 저것만 다 모으면 가지 말라고. 대신 할아버지 슈퍼에서 팔아 주자고."

그랬었나? 아마도 첫번째 스티커 사건 때였는가 보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 심각하게 턱을 괴고 있으니 하나가

"엄마,이왕 이렇게 된거 휴지는 받아야지. 내가 갔다올께." 하며 나간다.

우리 딸 정말 용감하구나. ㅎㅎ  ^^;;

슈퍼에 다시 다녀 온 하나는 씩씩거린다.

"엄마, 갔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있길래 보니까 진짜 스티커를 안주더라고. 그리고 나를 보더니 아~ 너희 식구였구나 하면서 기다리라고 하길래 tv를 보는데 하필 구준표가 넘어지는걸 세번씩이나 계속 보여 주는거야.

그러니 내가 속이 좋겠냐고. 그래서 빨리 가야 된다고 해서 받아 왔는데 그러면서도 24롤은 절대 안되는 거라고 쐐기를 박는 말을......"

 

그래도 일단 받아왔으니,두번 당하지 않았으니 됐다.

이런 것도 컴플렉스인지 핸드폰에 모르는 전화 번호만 떠도 일단 마음이 닫혀져서 목소리부터 깔게 된다.

남편은 날더러 이상하게 핀트가 안 맞는 시점에서 서투르게 화를 낸다고 한다.

그래서 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는 남편이 나서고 난 뒤에서 모르는 사람인양 구경만 하다가

모처럼 한 건을 했으나 영 개운치가 않다.

만약 오늘도 남편이 곁에 있었다면 난 아무말도 못하거나 더 심하게 버벅거렸을 것이다.

나를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앞에서는 절대 강한 척을 할 수가 없다.

밤늦게 돌아 온 남편에게 내가 싸운 이야길 해 주고 앞으론 할아버지 슈퍼에 가기로 했다고 말해 주었다.

남편은 휴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아무 말이 없다.

잘했다고 한 마디 해 주던가,왜 그랬냐고 핀잔을 주던가하지.

앞으로도 계속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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