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맞벌이 엄마의 비애

hohoyaa 2006. 4. 14. 21:43

오래전 얘기지만 때때로 머릿속에 들어와 한 바탕 휘저어 놓고 가는 기억이 있다.

 

직장 다니는 엄마로서 아이들의 하루 생활을 다 알고 싶어도 그리 할 수 없는 현실이고,또 나름대로 적응도 빠르고 명랑한 하나여서 별 걱정이 없다고 믿었었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와서는 출퇴근만 해도 버거운 상황이라 하나의 유치원 하교시간엔 늘 친정 부모님이 신경을 써 주셨었다.

 

 멀리서 지켜보기가 특기인 울 아버지, 돌아오는 하나를 늘 조용히 지켜 보시다가  엄마에게 한 말씀을 하셨나 보다.

 

숙영이가 들으면 가슴 아프니까 하나 엄마에겐 얘기하지 말라시며...

 

유치원 차가 아파트 광장 안으로 들어 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애들을 기다리던 엄마들이 제각각 아이들 손을 잡고 사라져 버리면

울 하나는 어리둥절해서 갈바를 모르고 한 참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혼자서 집으로 올라 가더라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넓은 광장에 5살배기 어린 아이가 홀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느낌이 들어  왈칵 눈물이 났다.

 

때때로 기다리던 엄마들이 의기투합해서 애들을 모두 몰고 바로 앞의 슈퍼라도 가는 날이면 눈치 없는 울 하나는 영낙없는 왕따가 되었다.

그 엄마들 속에는 우리 앞집 엄마도 있었고 유치원버스를 같이 타고오다가 같이 내려서 모두들 슈퍼엘 들어가면 하나도 덩달아 따라들었갔는가 보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들 손에 하드 하나씩을 들고 나올 때 울 하나는 빈 손이었다.

 

이 이야기는 슈퍼 아줌마가 해 주셨다.

 

엄마들이 너무 한다며,,,

 

어느 날인가 하나가 출근 준비하는 내게 돈좀 달라고 한다.

 

어린 것이 무슨 돈이냐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는데,안 된것 같아서 1000원을 할머니께 맡겨 놓고 가겠다고 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

 

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물어 보면 '보람이'(앞 집 아이)랑 하드를 사 먹었다고...

 

며칠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앞집 아줌마를 만났다.

 

일상적인 인사를 주고 받다가 보람이 엄마 왈

 

"하나 말이에요. 무슨 애가 그렇게 말을 잘 해요?

요즘에 유치원 재밌니?하고 물으니까 그 어린애 입에서 '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안 다니겠다고 했는데  안 다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어요.'라는 말이 나오더라구요.그 말 듣는데 온 몸에 소름이 좍 돋더라구요.어른 뺨 치겠어요."

 

"......"

 

그 말이 내게는 무슨 애가 알로 까져서 어른 하는 말에 대꾸를 잘하느냐고,

우리 딸은 순진해서 네 정도 밖에 안 한다고,,, 로 들렸다.

 

"그런데 요새 우리 집 현관 문앞에 하드가 하나씩 놓여 있더라구요. 혹시 하나가? "

 

"네? (움찔하며..) 하드 봉지요?"

 

"빈 봉지는 아닌데 안의 내용물이 다 녹은 채로 있더라구요."

 

"......"

 

집에 들어 와서 하나에게 물어 보았다.

 

"하나야, 보람이 하고 하드 사 먹었니?"

 

"응, 근데 내가 하드 두개 사와서 보람이랑 먹으려고 벨 눌렀는데 아무도 안 나와서 그냥 문앞에 놔 뒀어. 나중에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하나야, 하드는 그냥 두면 녹아서 물이 되기 때문에  맛있게 먹을 수가 없어. 그러니가 보람이가 없으면 그냥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나중에 줘."

 

친구가 참 그리웠는데 직장 다니는 엄마는 동네 아줌마와 어울릴 시간이 없으니 아이 역시 외톨이가 되는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근데 아무리 노력해도 앞 집과는 좀처럼 어울릴 여건이 안 되었다.

 

하나 생일이 1월달이라 그렇지 보람이와 같은 나이인데도 그 엄마의 동아리는 따로 있었으니까...

 

어느 날인가는 애써 친하려고 도넛을 만들어 앞집으로 놀러 갔다.

 

하나와 보람이가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며 그래, 엄마가 이렇게 해 줘야 애들도 행복해..하고 열심히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려고 애를 썼다. 

 

"하나가 참 맹랑해요?"

 

"아~,네. 애가 혼자이고 애 아빠가 막내라 모두들 귀여워 해주다  보니 어른 어려운 걸 몰라서..."

 

"지난번에 벨을 눌러서 나가 보니까 하나더라구요.

보람이랑 놀려구 왔다길래,보람이는 친구 집에 갔다고 하니까 자기는 혼자서도 잘 노니까 우리 집에서 놀면서 보람이를 기다리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줌마도 지금 나가야 한다니까 자기가 놀면서 집을 봐 줄테니 걱정 하지 말고 갔다 오라나요?

내 보내느라 애 먹었어요. 호호호^^"

 

"(같이) 호호호...ㅜㅡ;"

 

하나 아빠가  대학로에서 애들 연극을 보여 주려고 약속을 하면 번번이 펑크를 내고,나중엔 지쳐서 친해지기를 포기 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에게도 다른 친구가 생기고, 또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 엄마도 생기고,,,

세월이 흘러서 아이도 커가고,결국은 이사도 하고 ,,,

 

어느 새 다 잊은것 같은데 불현듯 그 생각이 파고 들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처음엔 울 하나가 정말 당돌하고 어른들이 싫어하는 아이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다 그렇지는 않았다.

 

쉬는 날 하나 손을 잡고 아파트 안을 돌다보면 나보다도 동네 아줌마들을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엄마, 저기 아줌마,우리 아파트 반장 아줌마야. 반장 아줌마,안녕하세요? 우리 엄마에요."하고 소개도 시켜준다.

 

"어머! 하나야. 오랫만이다. 안녕하세요? 하나 어머니시구나~. 하나가 너무 명랑하고 이뻐요. 인사도 잘 하고  부모님이  누굴까 궁금했는데...직장 다니시느라 반상회에 못 나오신다면서요? 언제 시간 나면 저희 집에도 놀러 오세요. 우린 애들이 다 커서 하나만 보면 기분 좋아져요.*^^*"

 

"예~! ●^ㅡㅡㅡㅡㅡㅡ^●"

 

울 하나의 마음속에는 그 시절의 아픈 기억말고 좋은 기억만 남아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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