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인사 잘하기,그리고 관심 받기.

hohoyaa 2008. 4. 1. 10:11

하나는 어릴 적부터 말도 잘하고 붙임성이 있어 어른들의 귀염을 많이 받았다.

그런 성격이기에 늘 걱정스러워 유괴범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교육을 시켰는데,

일테면 "낯선 사람이 과자 사줄께 같이 가자 하면 넌 어떻게 할래?"

나는 "우리 엄마가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랬어요."라는 답을 기대하고

그 기대를 저버지리 않는 답을 하게 되면  "아이구~ 우리 하나 똑똑하네.그래 그렇게 하고 절대 따라가면 안 되는거야,알았지?"하며 재차 다짐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과자만 받고 안 따라가요." 

에구~~~^^;;

 

유치원에 다니면서 하나는 오후 시간을 외할머니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서 다짜고짜 외할머니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더란다.

그러면서 앞서가는 어느 할머니를 가리키며 씩씩거리며 하는 말이 " 할머니, 저 할머니가 나를 유괴할라 그랬어요."

그러니 앞서 가시던 그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서 해명을 하시더란다.

아이가 처음 보는 나를 무서워도 안하고 인사를 싹싹하게 하길래 하도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고~이쁜 것, 이 할미랑 같이 살래? 했더니 애가 얼굴이 파랗게 되서는 뛰어 가더란다.

그래서 그냥 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저 할머니가 유괴범이라고 소리를 지르니 얼마나 놀랐는지....

우리가 어릴 적엔 그런 말을 수시로 들어왔고 그 말이 농담인것을 알면서도 속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당시 tv에서 '경찰청 사람들'과 '긴급출동 119' 같은 프로그램을 보던 하나에게는 그 할머니야말로 tv에 나오는 나쁜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길가다가 공중전화 박스에 있는 흑인을 만나게 되자 호기심이 많은 우리 하나,

"아저씨는 왜 얼굴이 깜깜해요?"

"오우~ 아저씨는 콜라 많이 먹어서 그래. ^^"

그 흑인이 조금이나마 우리 말을 해서 다행이지만 거의 이런 식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는 하나였다.

하나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년이 올라가고 점차 내 마음이 놓일 듯 하던 어느 날

모처럼 치킨을 배달 시켰다.

그 치킨 박스에는 실종미아찾기 캠페인으로 미아의 사진과 상세 정보가 나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걸 한 참 들여다 보던 상혁이가 부러운 듯 한 마디 한다.

"엄마, 얘는 저번에도 여기 있었는데 오늘도 여기 있어.나도 여기 이렇게 사진나오고 싶어."        

나는 다시금 긴장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어 다시 상혁이의 정신 교육에 들어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혁이도 누나와 마찬가지로 인사하기를 좋아해서 길가다가 낯선 사람을 보아도 늘 인사를 했고 어른이 미처 알아채지 못해 인사를 받지 못하면 끝까지 따라가 앞으로 돌아서 인사를 했다.

한 번은 하수도 공사 때문에 땅을 파헤친 공사장에 상혁이가 쪼그리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가 봤더니 땅속에서 공사 중이던 인부 아저씨의 등에 대고 인사를 하고는 아저씨의 대답을 기다리느라고 계속 인사를 하면서 그렇게 앉아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더니 마침내 이상한 느낌을 받은 아저씨가 굽혔던 허리를 펴고 위에 있던 우리를 바라보고 "오냐,고맙다."하자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서울 시내에 나가서는 지하철을 내려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혼자 뛰어 가길래 어딜가나했더니 계단 통로에서 구걸을 하시는 아저씨 앞에 서서 "안녕하세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아저씨는 애가 동전이라도 줄려나 싶어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계속 안녕하세요?를 외치는 상혁이에게 슬그머니 웃어 주셨다.

하나는 철이 없다고 펄펄뛰고 ,남편은 아저씨 약올리느냐고 질색이었지만 난 아마도 그 아저씨는 오늘 가장 좋은 선물을 받았을 것이라고 상혁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상혁이의 눈엔 그렇게 구걸을 하는 아저씨가 무서워 보이지 않는다는게 참 신기했다.

하나는 지난 번에도 지하철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구걸을 하는 소경 아저씨 앞에 서서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며 상혁이를 마구 잡았다.

그렇게 사람 얼굴을 앞에서 빤히 쳐다 보느냐고.

그 때 사실 나도 당황했지만 소리내지 않고 애를 끌어 오느라 아뭇소리 못하고 있었는데,

철없는 아이가 한 행동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하나의 말을 듣다 못해 "그래도 그 아저씨가 소경이어서 얘가 쳐다 보는 걸 모르셨을거야.그러니까 됐어.그만 해." 했더니

하나는 "......그게 더 슬퍼요."한다. 그러니 하나를나무랄 수도 없고 어릴 때 자신이 흑인에게 뭐라 물었는지 그 이야기를 해 주면서 겨우 분위기를 돌렸다.

 

사실 인사성이 밝은 것이 좋기는 하지만 아무에게나 인사를 하니까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우리 아이들은 좀 유명했다.

하도 인사를 잘 하고 다녀서 야쿠르트 아줌마까지도 동네 방네 소문을 내 주시고 나이차이 나는 하나와 상혁이를 남매인 줄 모르고 따로 생각을 했었기에 그게 화제가 되어  미장원의 통유리 너머 아주머니들의 눈이 늘 아이들을 따라 다녔다.

아파트 앞 슈퍼에서도,붕어 빵 아줌마도,경비 아저씨도 아이들이 가는지 오는지 알고 계셨기에 직장 생활을 하는 내게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그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단절 된 아파트 생활에서 오는 이웃간의 무관심이 무분별하게 인사를 하고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관심으로 되돌아 오니 무슨 위급한 일이 생기더라도 주변 분들이 도와 주시리라는 생각에 굳이 그런 행동을 말리진 않았다.

 

뉴스에서 연일 터져 나오는 끔찍한 소식에 몸서리를 치고, 학교에서는 가정 통신문이 와서 아이가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외우게 한들 아이는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십중팔구 거의 다 넘어간다고 한다.

나라도 동네 아이들을 관심있게 보아주고 몇 동에 사는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싶지만 나가보면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고 노오란 학원차만 단지를 돌고 있다.

상혁이는 어리니까 어린대로 걱정, 하나는 이제 좀 컸으니까 더 걱정이고.

앞으로 시켜 먹는 치킨 박스에는 더이상의 어린이사진이 안 올라 왔으면 좋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 본다.

 

 

'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혁이표 책고무줄  (0) 2008.04.10
안 사주길 잘 했네...  (0) 2008.04.07
내 딸도...  (0) 2008.03.27
반장 선거  (0) 2008.03.07
Dear Kalimo  (0) 200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