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내려가면 어머님은 항상 조기며 갈치, 오징어, 굴, 조갯살 등 갖가지 해산물들을 손질해 냉동시켜 두었다가주시곤 했다.
서울에서만 자란 나는 쌀 나무는 아니더라도 농사짓는 집은 시장에서 보는 모든 농산물이 넘칠 만큼 있는 줄 알았고, 바닷가 근처에 살면 해산물은 그냥 건져 먹는 줄로 알았었다.
그런 철부지 막내며느리는 시댁에 내려가서도 어머님이 차려 주시는 음식을 받아먹었었다.
나는 서울내기이고 목포는 결혼 후 처음 가본 곳이며 더구나 내 입맛은 밍밍한 서울 음식이니 섣불리 음식을 했다간 어른들 입맛에 안 맞을까 싶었고 본래 부엌은 안주인이 차지하고 음식 맛을 내야 하니까 난 그저 설거지와 양념 대령 조수가 제일 맘이 편했다.
그렇게 며칠을 있다가 올라오면서는 바리바리 싸서 가져오고...
시댁이 아니라 친정에 왔다 간다는 남편의 핀잔을 받아 가면서도 주시는 것은 다 들고 왔다.
아버님은 허허 웃으시며 우리 막둥이가 욕심이 많아 잘 살겠다 하셨지만 난 욕심이 아니라 어머님의 즐거움을 더욱 빛내 드리기 위해 무조건 받아 왔던 것이며 종국에는 수십 년 세월의 터럭이 무겁게 내려 앉아 희뿌연 커피 잔 셋트까지도 받아와 진열장에 두었다.
늘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셨다고 믿고 싶다. 그러셨기에 고맙게 받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 했지만 해가 지나면서 허리가 몹시 안 좋으시단 걸 알게 되어 점차로 그러한 일들이 힘에 부치실 것 같아 일절 못하시게 말려도 봤다.
어쩌다 갑자기 내려가게 되어도 미리 알리지 않고 내려가는 것이 어머님을 덜 고달프게 하는 것이니 야밤에 문 앞에 차를 대기 일쑤였다.
그래도 어김없이 다음날 새벽에는 카트를 끌고 아버님과 함께 시장에 다녀오신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본가는 상가 주택이라 1층은 세를 주고 2층에 사시는데 중간에 다락마냥 공간이 하나 더 있으니 가파른 층계는 3층 못지않다.
편찮으신 허리를 이끌고 그 계단을 오르내리시는 어머님.
노인성 질환으로 치부하기엔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이번에 올라오시라고 한 것이었다.
고칠 수 없다면 과연 앞으로 남은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고통이 덜 할런지 알고 싶었다.
양방에서는 수차에 걸친 수술밖에 없다 하는데 이미 한 쪽 무릎에 인공 관절을 대신 상태이고 허리수술은 연로하셔서 위험하니 답이 없는 상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연히 소개 받아 가게 된 한의원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님의 극심한 허리 통증이 홧병의 결과라는 것이다.
TV에서 간혹 보던 원적외선 촬영을 해 보니 어머님의 가슴 중앙이 붉은색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다.
생각에는 붉은색이 활기차고 혈액 순환이 잘 되는 것인 줄 알았더니만 가장 좋은 상태는 녹색이고 붉은색은 울화(심화)가 심해 기가 뭉쳐 있는 것이란다.
아무리 그래도 홧병으로 그 정도까지 갈 수 있을까 싶어 의구심이 들었지만 의사와 상담하는 동안 어머님의 감정이 복받치시는 듯 떨리는 목소리는 확실히 마음의 병이로구나 하고 단정 짓게 만들었다.
홧병이라면 더구나 한국의 주부인 나와도 무관하지 않으니 호기심 반, 탐구심 반으로 대체의학에 관심이 있던 바 이것저것 물어가며 어머님의 증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님의 X-ray 사진을 보면 확실히 허리뼈가 많이 퉁그러져 있는데 실제적으로 어머님이 통증을 호소하시는 부위는 그와는 상관이 없는 곳이다.
침대에 눕혀놓고 여기 저기 눌러가며 촉진, 문진을 하고 그 설명을 내가 너무 열심히 들었나? 아예 컬러판 해부도까지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강의를 하니 어머님의 울홧병이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님은 평생을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지 못하고 사셨을 것이다.
난 이제까지 어머님이 아버님의 뜻을 거스르거나 반기를 드는 것을 보질 못했다.
아버님이 빨간색을 희다 하시면 어머님은
“당신 생각이 맞소. 그란디 어찌 보면 빨간색 같기도 허요.“ 하신다.
아버님은
“어허~! 시방 다시 봉께 참말 빨간색인가 보네.” 어머님을 인정 하신다.
나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당연히 빨간색을 빨갛다고 하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어머니, 전 그렇게 못 할 것 같아요. 저도 쪼매 성질이 있거든요.”
“아야~.나도 젊었을 때 성격이 강했었다. 그란디 아버님이랑 살다 봉께 다 부질없어 지드라.”
어머님이 결혼 후 내게 해 주시던 말씀 중 하나 아빠 성격에 관한 것이 있었다.
“갸가 꼬라지가 나면 대걸이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그라. 나중에 조근 조근 야기 하면 다 잘 듣느니라.”
그 말씀이 아들을 생각해서 며느리에게 숙이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더니 어머님이 오랜 세월 살아오신 경험상 남편과 아버님의 닮은 성격을 아시기에 말씀 해 주신 것이었다.
남편에게서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맞은 얘기를 심심찮게 들으면서도 난 그저 신기하고 재미 있어서 웃었다.
반찬 투정하면 밥상을 엎으셨다던가, 찐 고구마를 놓고 형제간에 옥신각신하다가 아버지가 날린 목침에 맞았다던가, 어느 때에는 시커먼 고무 호스로 두들겨 맞기도 하고,,,
내게는 그 모습들이 소설 속의 아버지 같았고 손찌검은 커녕 큰소리 한번 안 내시던 울 아버지와는 달리 피와 살이 붙어있어 감정이 울컥울컥하는 생동감마저도 느껴져 자꾸자꾸 또 다른 얘기를 해 보라며 채근을 했었다.
그렇게 어릴 적 얘기를 하다보면 결론은 어머니로, 만약에 어머님이 중간에서 바람막이가 되어 주시지 않았다면 다른 형제는 차치하고라도 자기의 인생이 180도 꼬여 버렸을 것이란다.
이번에 달 반을 어머님과 함께 지내며 어머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역시나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동네에서도 모두 귀여워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순간 환하게 피어나니 어릴 적 사랑받던 그 시절이 강퍅한 세월에 위안이 되어 주었던 듯싶다.
남편의 성격이 욱해서 무서워도 따사롭게 대해 주시던 시어머님이 계셔서 모진 시간을 감내하시고 나중에는 자식들 때문에 또 한 번 자신을 죽이셨으니 그 속이 얼마나 곪았을까?
아버님의 성격만큼은 아니지만 내게는 버거웠던 하나 아빠와 부딪치며 살아 온 나는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욱하는 성격에 목소리까지 커서 처음 부부싸움을 한 이래 일 년이면 한 두 번씩 듣게 되는 그 목청에 아직도 단련이 안 되어 가슴이 콩닥 콩닥 뛰고 아이들이 커 감에 따라 결국에는 내가 싸움을 피하게 되었다.
“나도 십 년 후면 병원 가서 홧병 진단 받는 것 아니야?
아버님이랑 사시는 어머님도 그렇고, 비슷한 성격의 큰 시숙과 사시는 큰 형님도 건강이 안 좋고 자기랑 사는 나도 그리 좋은 것 같진 않네.
난 내가 평소 자세가 안 좋아서 허리가 아픈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다 자기 성질 탓 인가봐. ^^; “
며느리의 비아냥에 우리 어머님, 어느 날 아침 청소기 돌리는 남편을 보시고는
“하나 엄마야, 니는 참말로 남편 잘 만났데이~. 늬 아버님은 젊어서 절대 저런 것 안 하셨느니라. 시방은 내가 아픙께 헐 수 없이 하시지만 서두.......
그라고 너두 한번 진찰 받아 보자. 그라고 조심해야지. 막둥이 성격이 딱 즈그 아버지라.“
옆에서 듣던 남편은
“병원은 내가 가야 쓰겄소. 나 하나 땜에 세 식구 병원 다니느니 내가 치료 받아 성격을 고치던가 해야지. 쩝. 고것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겠고......."
큭큭 잘 생각 하셨네.
“어머니, 피부 미인 만들어 드릴까요?”
평소 팩이나 맛사지는 안 하지만 한번 해 보리라 마음먹고 사 둔 것이 있어 얼른 분위기 쇄신하고자 어머님께 팩을 해 드리고 내 얼굴에도 하고 소파에 나란히 누웠다.
누워서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니 고부간이라기보다 먼저 산 여인과 나중에 사는 여인이 되어 그 숨결을 나누다 잠이 들었다.
지난 이야기ㅡㅡㅡㅡㅡㅡㅡ> 尊舅姑ㅡ시아버지와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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