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새 집

hohoyaa 2006. 7. 2. 00:18

이 곳 남양주에 온지 벌써 8년이 되어 간다.

안양에 아파트를 분양 받은 뒤 IMF가 터져서 중도금을 넣느라 이 곳으로 이사를 왔었다.

입주 날짜가 되면 다시 안양으로 가리라고 늘 마음에 다짐을 했었는데,

둘째 상혁이가 생기는 바람에 걍 눌러 살게 되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것이 빚지고는 못사는 남편의 소심증 때문이기도 하다.

이자를 좀 내더라도 그 집은 꼭 갖고 있자고 하는 내게 그는 이자에 허덕이고 어찌 사느냐고...

자신이 봉급장이만 되더라도 어떻게 해 보겠지만 우리 둘다 자유직이니 수입이 없을 때를 생각해서 살지도 못하는 집은 그냥 처분하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내 성격은 궁시렁 궁시렁대는 그런 쪽은 아닌데,누구에게서건 '너 때문에...'라는 말은 죽어도 듣고 싶지않아서 남편의 뜻에 맞춰 주기로 했다.

그래서 안양의 아파트를 팔고 허전한 마음에 출퇴근 길에 눈에 띄던 아파트를 하나 샀다.

그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인데,우리 부부 모두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지라 좀더 가까운 집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은 친정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많이 돌봐 주셨고 이제는 다들 웬만큼은 컸으니 조금은 멀리 떨어져도 되겠다 싶어 지금보다 족히 30분은 가까운 퇴계원의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

그러나 건설사와의 소송때문에 작년 5월에 입주했어야 할 아파트에 올 8월이 되어서야 입주를 하게 되었다.

음력 6월은 썩은 달이라 이사도 안한다 해서 그 한달은 우리 식구가 주말이면 가서 청소하고 자질구레한 짐들을 우선 부려 놓기로 했다.

 

 

지은지 1년이 넘었고 겨울도 났기에 '새집 증후군'은 없으리라.

사실 내게 이런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처음 여기 남양주로 이사올 때 새집으로 왔었는데 이사를 마친 후 머리가 아프고 속이 느글거리는것이 물 한모금만 마셔도 올라 와서 출근도 못하고 혼이 났었다.

주위에서는 혹시 애서는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했고, 내 생각으로는 이사 몸살인가 보다고 했다.

그렇게 꼼짝 못하고 누워서 1주일을 앓았다.

 

그 후로도 새 집으로 이사를 두번은 더 했었는데 그 때마다 같은 증상이 있었다.

워낙에 엄살은 없는 '나'이지만 이사 때마다 번번이 이런 식이니 남편 보기에도 면구스러웠다.

포장 이사를 하면서도 저리 골골대나 할까 봐 은근히 눈치도 보였는데,

어느 날 TV에서 '새집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딱 내 이야기인거라.

그 동안은 내 정신 상태가 해이해서 생기는 몸살 정도로 생각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앙 다물고 움직였었는데,그것이 내 탓이 아니고 새 집 탓이었다니.

이제는 식구들이 다 아는지라 마음 편히 앓을 수 있게 된것이 내심 위안이 되었다.

 

남편이 이번엔 '새집 증후군'을 없애는 코팅을 하고 들어가자고 한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그 가격이 기십만원도 아니고,옥코팅이라나 하는것은 천만원까지도

호가한다는데 금액도 부담스럽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 지 의구심이 들었다.

워낙에 오래 비워 놓았던 집.

코팅을 하고 내게 아무 이상이 없으면 그 이유가 비워 놓은 때문인지 아님 코팅 덕분인지 알지 못할 바.

만약 코팅을 하고도 내가 아파서 그것이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하면 업체에서 순순히 수긍하고 변상을 해주지는 않을것이고 경험상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고 몰아갈 것이 뻔하므로 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우리 4식구가 가서 입주 청소를 했다.

아이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재미있게 쓸고 닦고,문이며 유리창에 붙어 있는 필름도 떼어 내고 신나게 청소를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 오면서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다음날인 일요일까지도 어지럽고 속이 니글거려서 기분이 안 좋았다.

일요일 아침에도 남편은 나더러 그냥 집에 있으라하고는 아이들과 청소를 하러 갔다.

집에서 노는것도 아니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서 늦은 오후에 새 집으로 갔다.

 

 

 

늦게서야 합류한 엄마에게

상혁이는 자기가 깨끗하게 닦았다며 자랑을 한다.

저 화단엔 무엇을 심어야 그나마 아파트에 산다는것을 잊을 수 있을까?

 

 

 

상혁이의 특기는 저런 골이 있는 문틀, 창틀 닦기이다.

손가락이 가늘고 작아서인지 우리 어른들보다 야무지게 닦아낸다.

 

 

 

이렇게 새카만 때가 상혁이의 손만 닿으면 하얗게 빛이 난다.

"아유~! 이렇게 힘든걸 했구나? 상혁이가~."

했더니 더욱 의기양양해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구경을 시킨다.

 

 

 

하나는 걸레 빨기.

이미 이전에 필름 벗기느라 손톰깨나 아플텐데도 내색을 안 한다.

평소에 자기 방을 지금의 1/10 만 정리했어도 내 잔소리가 없었을텐데...

역시 새 집은 아이들에게도 흥분이 되는가 보다. 

 

 

 

육체 노동을 한 후에는 역시 고기?

살고 있는 집에서 가까은 곳에 맛있는 집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것도 다른곳이 아닌 울 상혁이가 날마다 다니는 어린이 집 앞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 후배로 부터 그 동네에 간판 없는 맛있는 고깃집이 있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 때에는 내가 고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건성으로 흘려 들었던것이다.

 

 

 

'광릉불고기'

메뉴는 돼지고기와 소고기인데 숯불에 구워서 예사롭지 않은 그윽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핸펀이라 선명하진 않지만 반찬과 야채가 참 싱싱하고 맛있다.

체면 불구하고 반찬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하나는 원래 고기를 좋아하지만 외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 상혁이도 허겁지겁 밥 한공기를 다 비웠다.

반찬 리필은 셀프라 오히려 좋은것 같다.

간혹 어느 식당에 가면 영 찜찜해서 손이 가지 않는 반찬도 있는데 이곳은 시골임에도

서울식으로 아주 맛깔스런 반찬이 맘에 든다.

된장 찌개도 맛있고...

 

 

아마도 시골 집을 개조한것인가 보다.

처음 들어 서면 분위기가 약간은 색다른데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엔 벽장 미닫이 문이 있고,

천정엔 저렇게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남편은 이사 가려고 하니까 이런 집을 알게 된다며 못내 서운해 한다.

 

 

 

 

내가 좀 시원찮아서 청소를 도와 주지 못해도 투정 없는 식구들,고마운  이들이다.

오늘은 집에 있던 참숯이랑 산세베리아를 새 집에 들여 놓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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