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좀 잘 쓸걸.......

hohoyaa 2014. 9. 5. 21:00

어제 오후 늦은 점심을 먹고 남편과 팥빙수를 앞에 놓고 투섬에 앉아있었다.

♪ 띠리리리~리

핸드폰을 받은 남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싶더니 "아,그건 제 와이프가 썼으니 직접 통화하시죠."하며 전화를 건네준다.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누구지?부터 시작해 무슨 일이지? 내가 뭐 실수한 일이 있나? 가슴이 콩당거리는 지경에까지.......

 

핸드폰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사투리 억양에 연세가 좀 있으신 분 같다.

알고보니 얼마 전에 친정 어머니의 권유로 마감시한 몇 분 전에 이메일을 날렸던 "주택연금 체험수기" 건으로 걸려 온 전화였다.

친정 어머니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로 한참 오해하고 계시다. 그래서 예전부터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라는둥 주문이 많으신데 이번에 주택연금 금융공단에서 수기를 공모한다는 유인물을 받으시고는 바로 나한테 전화를 하셔서 응모해보라고 채근을 하셨다. 어머니 생각에는 딸인 내가 쓰면 상을 받을 것 같으시단다.

그런데 아다시피 블로그에도 글이라는 것을 안올린지가 오래인데 난데없이 수기에 응모를 하라니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돌을 얹고 다녔던 며칠이었다.

어머니는 잊혀질 만하면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마감시한까지 카운트 다운을 하시니 살짝 짜증도 났다.

 

날마다 일이 있어 서울로 나다니고 공방에서 주문가구도 만들어야 하는 중간에 이모와 어머니를 모시고 춘천까지 다녀오니 체력은 물론 마음 밭에도 도무지 글쓰기 씨앗이 싹트질 않아 난감했다.

그래도 어머니의 권유를 무시했다는 말은 듣기 싫어 억지로 마감시한을 20여분 남기고 겨우 몇 자 적어 응모를 했다. 그리고는 곧 잊어버렸다.

 

그랬는데 주택연금 금융공사에서는 수상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응모작을 가리는 과정에서 졸작이지만 내 글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일단 후보군에 올려놓았는가 보다. 그 후에 응모자를 살펴보니 이름도 전화번호도 아무것도 없어서 이메일로 정보요청 회신을 보냈던가 보다.

사실 요즘 이메일 체크도 자주 안하다보니 그런 내용의 메일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답신이 없으면 포기할 만도 하건만 나못지 않은 집요함을 가진 주택연금에서는 글의 내용만 가지고 목포까지 가서 서류일체를 받아오는 서비스를 해주신 광주지부의 담당자를 찾아냈는가 보다.

그 담당자분이 아버님을 기억해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며느리 전화번호를 알려달라하니 90넘으신 울 아버님,큰며느리-큰형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신 것이었다.

당연히 큰형님은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하니 다시 아버님께로 연락이 가 며느리 중에 글 잘쓰는 며느리는 없느냐고 하니 그제서야 아버님은 막내며느리가 글을 좀 쓴다고 하시며 남의 며느리 전화번호는 알아서 뭐하려느냐고 막내아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신 것이다. 그 전화가 남편에게 오고 다시 내게로까지 이어진 것인데 멀리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광주지부의 담당자 분 목소리가 참 생기있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수기글을 잘 써서 중앙에서 찾는다는 말을 전해주시는데 내 상상으로는 그 분의 한껏 고무된 표정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말이다.

내가 그렇게 썼다.

멀리 광주에서 목포까지 방문하셔서 연로하신 부모님대신 모든 서류를 준비해 가신 담당자 분께 감사하다고.

주택연금 금융공사 중앙부서에서 찾는 사람의 수기에 그 분에 대한 감사의 념이 있었으니 아마도 그 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 상기된 얼굴을 그려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시댁에까지 소문이 났는데 정작 친정어머니께는 아무 말도 안했다.

혹여 기대를 하셨다가 실망하실까 염려스러운 감도 있지만 머지 않아 추석에 오빠네와 동생네 식구들이 모일텐데 그 자리에서 내 이야기가 나오면 며느리앞에서 딸자랑하는 시어머니가 될 터이니 좀만 참았다가 추석 지나고 말씀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왜 이리아쉬운지.

이리 될 줄 알았으면 좀 신경써서 잘 써볼 걸.

엄마가 시켜서 하는 억지공부하듯이 괜히 툴툴거리며 썼다.ㅠㅠ

그래도 영광이지,당선이 안되더라도 이 정도면 영광이지.

그래서 이 글로나마 증거를 남기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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