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는 155마일의 휴전선이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분단국가라는 상흔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그 동안 우리는 현실을 바로보는 대신 대외적인 국력신장에만 힘을 쏟아붓지 않았는가 싶다.
올림픽도 유치하고 전후의 경제성장또한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고 이젠 한류라는 문화수출의 시대를 맞으면서 늘 밝은 면만을 보려고 한 것은 아닌지 자문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10년 3월26일 금요일 밤 9시 22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화로운 저녁시간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는 1,200톤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의 침몰소식이 들렸다. 갑작스런 소식은 그만큼이나 짧은 시간안에 푸르른 젊은이들의 붉은 목숨을 앗아갔다.
침몰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에 수장된 승조원 46명이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국방의 의무를 지고 배를 타고있던 그들중 사상자가 단 한명만이었더라도 우리는 당연히 비분강개했어야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분단된 땅에 태어나 신체건강한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군대.
그러나 국가는 젊은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위해 얼마만큼이나 신경을 쓰고있었을까?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다녀왔고 앞으로도 우리의 아들들이 그들의 청춘을 바칠 군대는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과 믿음을 받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동안 천안함 침몰의 원인보다도 우리 군의 총체적 부실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런 아쉬움에서부터 연유했을 것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키워내고 IT강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군부대는 온갖 비리와 권력 암투의 온상이 된지 오래이고 부모형제가 두 발을 뻗고 편히 자는 동안 매의눈으로 전방을 주시케 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손에 쥐어준 것은 연식이 오래된 골동품과 진배없는 무기들이었다.
군납비리라던가 군수업체 로비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것이 이리도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다니.
천안함의 침몰 이유를 두고도 피로파괴니 기뢰, 어뢰, 잠수함 충돌운운하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기보다는 자신들의 오점가리기에만 급급해하는 기성세대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떤이의 제보로 '천안함사건' 최초 보도라는 특종을 잡은 김문경기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으로 3년여간 진실을 추적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 이전에도 천안함을 다른 각도에서 다룬 책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있는데 개인적으로 천안함 침몰의 제1보를 전한 김문경기자의 책이라서 꼭 읽고 싶었다.
책을 읽다보니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들이 다시 떠올려지기도 했다.
저자역시 한가지 사실과 또 다른 한가지 사실을 조합해 퍼즐을 맞추려니 애써 찾은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갔다는 쾌감보다도 이 자리에도 맞고 저 자리에도 맞고 한편으로는 양쪽 다 아닌 것도 같은 허망함도 맛보았으리라.
그러나 김문경기자는 이 책에서 조급하게 결과를 도출해내려 애쓰지는 않았다.
객관적 자료를 나열하며 배경까지 설명해주는 친절함은 있지만 저자또한 진실의 문앞으로 이끄는 그 무엇인가를 우리만큼이나 학수고대하고 있는다는 것을 느꼈다.
어찌보면 이미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되었던 이슈들이었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모든 것을 믿을 수는 없었던 당시를 돌아보고 이렇게 기자의 이름을 걸고 한권의 책으로 나온 것을 읽고나니 근거없는 낭설로 여겨졌던 것들도 나름대로 구체적인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인간의 오감이란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칫 오류의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한발자국, 한발자국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남겨진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그 의미있는 발자국중의 하나가 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보고서형식도 아니고 허구도 아닌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썼기에 어려운 군대용어나 전문용어가 있음에도 여자가 읽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지 이제 3년, 진실의 문을 열기에 아직은 짧다면 짧은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녹을 만드는 동안 진실의 문을 열기위한 조각들마저도 그 빛을 잃어갈까 염려스럽다.
과학으로도 명쾌하게 풀어낼 수 없었던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 결국 인간의 양심에 달린 것일까?
휴전선이 생기고 휴전선이 숙명인양 오로지 경제부국을 향해서만 달려왔던 대한민국.
2013년 4월의 한반도는 변화무쌍한 국제정세 속에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 안에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여럿이기에 지금 이시간에도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국군장병들에게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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