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책읽기/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주석마저 재미있는 역사책 "제왕들의 사생활"

hohoyaa 2013. 7. 16. 18:06

 

 

 

 

제왕들의 사생활이라니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동하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세계사의 한 장을 장식할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제왕들의 화려한 이름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런 위대한 길로 나아가도록 안내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실제로도 존경받는 현자였을까?

이러한 모든 것에 앞서 가장 궁금하고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역시 인류에 회자되는 외적인 치적보다 그들 내면에서 꿈틀대던 한 인간으로서의 욕구와 고뇌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한 편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을 엿본다는 것이 그리 떳떳한 것만은 아닐진대 역사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그들의 사생활을 공개적으로 들추어 준다니 이 또한 흥미롭지 아니한가.

더구나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들이 카더라통신이 아님은 저자소개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으니 그 신빙성에까지 무한한 경외심을 품게 된다.

 

저자 윌리엄 제이콥 커피’(William Jacob Cuppy)는 소심하고 사교적이지 못해 대중 앞에 나서기보다는 다양한 주제의 책과 학술지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꼼꼼히 기록하는 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도시의 소음과 번잡스러움을 싫어해서 모두가 잠든 시간에 집중적으로 글을 썼는데 어느 주제에 관해서건 글을 쓰기 전에 그 주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책과 기사를 읽고 그 자료를 완전히 이해해야만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때로는 100자짜리 짧은 기사 한 편을 쓰는 데에 25권의 두꺼운 책을 읽었다니 그가 모은 자료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믿고 볼만한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재미있다 못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바로 책의 하단에 있는 주석이다.

사실 다른 책들에서는 주석을 꼼꼼히 챙겨보게 되질 않는다.

어떤 작가는 주석을 너무나 장황하게 써놓아서 본문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던 아픈 기억이 있기에 거기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윌 커피는 달랐다.

1884년에 태어나 1949년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던 그였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찾기 어려운 자료까지도 어떻게든 찾아내 방대한 양의 자료를 확보한 다음 3x5인치 크기의 카드에 제목을 달고 주제에 따라 내용을 정리하여 수백수천의 카드를 만들어 놓은 윌 커피덕분에 오늘 날 우리는 편안하게 앉아서 누군가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그의 재능에 감탄하며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저자의 성격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다지만 본문 곳곳에는 그의 유머러스한 면이 녹아있어 이야기를 듣듯이 편하게 읽힌다. 거기에 주석까지 섭렵을 하게 되면 정말이지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크 트웨인 못지않은 위트와 풍자로 좌중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이 작품은 저자가 16년이나 매달렸던 대표작 만인의 쇠퇴와 멸망의 원고를 탈고하지 못해 미완성인 채로 사후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 ‘윌 커피가 자료정리로 지새우던 하얀 밤을 대가로 우리는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역사에는 정사와 야사가 있다.

딱딱한 정사보다는 적당히 노글노글한 야사가 재미있게 읽히지만 결국 역사란 두 가지를 모두 아울러야만 완전체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시각에 따라 그 기술방식이 달라지기에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역사 속 인물들은 어쩌면 한 겹 이상의 가면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윌 커피가 작업한 일이 그 가면을 한 꺼풀 벗긴 것인지 아니면 한 겹을 더 올린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역사를 딱딱한 암기과목으로 배웠던 우리 세대와 이제는 그나마도 역사배우기를 점수로 환산해서 도리질을 먼저 하는 청소년들에게 흥미유발의 촉매로써 꽤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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