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느라 상혁이의 중학교 입학식에 가지 못했다.
엄마대신 누나가 아빠와 함께 갔으니 녀석도 속으로 든든했을 것이다.
산너머 산이라고 하나가 끝나고 상혁이 차례가 되었다.
엊그제 3월 17일에는 학부모 총회와 면담이 있어 학교에 갔는데 하나 때와는 달리 조급증이 생기는 것도 같다. 하나는 여자니까 맏이니까 믿거라하고 방임을 하는 면이 없잖아 있었는데 상혁이 이녀석은 남자라 그런지 동생이라 그런지 영 미덥지가 못하다.
담임 선생님은 이 학교가 초등학교부터 쭉 올라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그 가운데 상혁이가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처신을 바르게 해 인기가 있다는 증거라며 대견해하셨다. 선생님을 만나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녀석이 우리가 보는 것처럼 아주 어리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괜한 기우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하나와 마찬가지로 사교육없이 알아서 공부를 하게끔 하고있지만 (사실 이 부분은 순전히 엄마의 게으름때문이기도 하다.) 왠지 마음이 흔들리는 지금이다.
작년 이맘 때 고3이 된 하나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혼자 교실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었단다.
마침 그모습을 지나가던 담임선생님이 보시고 몇가지를 물으셨고 하나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학원이나 과외를 안하고 혼자서 공부를 해왔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바뀌더란다.
아마도 '아아~. 그저 그런, 아이의 성적에 관심이 없는 집의 아이로구나. 혼자 해봤자 얼마나 하겠나?'라는 식의 눈빛이었단다.
하나는 그 눈빛에 모멸감을 느껴 당장 다음 날 자신이 틈틈이 준비해온 자기소개서와 학생부 기록을 들고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려며 무엇이 더 필요한지 선생님께 봐달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관심대신 너무 성급하게 하지 말라며 하나의 자소서는 읽어보지도 않으셨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개인 면접시간이 되어서야 하나의 성적을 알게된 선생님은 혼자서도 준비를 잘해온 부분에 대한 칭찬보다도 다른 과목에 비해 떨어지는 수학은 과외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해주셨다.
아무래도 고3은 불안한 시기이다보니 선생님의 말씀대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수학과외를 알아보고 대학생한테 두달 정도 과외를 받긴 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수학쪽으로는 두뇌가 없어 그 효과가 미미했고 수학이라는 과목이 단기간에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기에 혼자 해오던대로 하겠다고 했다. 마음같아선 이왕 시작하는 과외니까 조금이라도 덕을 보고 싶었던 것이 우리의 마음이었지만. 그나마 위안이라면 1학년부터의 수학성적이 들쭉날쭉하지않고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렸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했지만 나중에는 수학이 3등급이라 사실 지원하는 학교에 제약이 있기는 했다.
10월 말에 수능없이 합격을 시켜준 학교가 있어 일찌감치 수능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덕에 수능에서 언어,외국어를 만점을 받았는데 그것을 두고 주변에서는 수학만 잘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들 한마디씩 했다.
욕심을 부리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대학 간판일진대 우리는 이미 중학교 때부터 그것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듣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가정 대소사에 빠지는 것은 아이들이나 부모인 우리나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보통의 아이들보다는 공부할 시간이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가 열심히 해주었고 대학에 합격하기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척척 알아서 해 준 고마운 딸이기에 대학과 전공도 모두 본인의 의지에 맡기고 그저 지원만 해주며 작년 일년을 보낸 것 같다.
고3이던 딸아이도 이렇듯 불안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 녀석은 걱정이 많이 된다.
누나만큼만 해주면 고맙겠다하면서도 누나처럼 수학이 발목을 잡게되면 어쩌나 그것도 걱정이다.
오늘은 입학하고 처음 치렀던 진단평가의 결과가 나왔다.
사립학교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많아서 우리 상혁이의 성적이 바닥에 있지는 않을까 염려했는데 다행히 중상위권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벙글어졌다. 피는 속일 수가 없는지 두녀석 모두 엄마를 닮아 수학이 가장 떨어지는 과목이 되어버렸지만.......
아이에게도 생각보다 괜찮구나하면서 격려해주고 앞으로 얼마든지 발전가능성이 있으니까 열심히 해보자고, 화이팅을 했다. 엄마의 격려에 기분이 좋은 녀석은 숙제도 열심히 하고 저녁도 맛있게 먹고 컴퓨터앞에 앉아 어제 일찍 자느라 보지 못한 '안녕하세요' 다시보기를 하고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고 우스운지 연신 깔깔대며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학생들의 자살소식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요즈음, 내 눈앞에서 저렇듯 밝게 웃고있는 아들의 모습이 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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