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열네 살의 털

hohoyaa 2013. 6. 5. 10:48

 언젠가 상혁이와 빈둥거리며 털이야기를 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족끼리 흔하게하는 이야기는 머리털이야기로 나중에 대머리가 되면 어쩌느냐고 머리 빠지기 전에 얼른 결혼해야한다는 우스개소리들이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고보니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털이 등장하는가 보다.

"아무개는 겨털이 났고 또 거기에 털이 난 애들도 여럿 있어."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친구들이 부러웠는지 자기도 몇가닥정도 나고있는데 샤워하다가 잘못될까 봐 조심스레 한다고 말한다.

짖궂은 웃음을 지으며 "와~! 그래? 어디 났는데? 혹시 머리카락이 붙은 거 아냐? 증거를 보여 줘 봐." 장난을 치는 내게 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말하더니 "털이 나면 이제 키가 다 자란거라는데......."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떠보았더니 "털이 아니고 머리카락인가?"라며 잘도 넘어온다.

 

엊그제 학교에서 준비하라는 영어회화책을 사면서 읽고싶은 책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별로 관심이 없는 척 다가와서 이 책을 골랐다.

 

초등학교 적에는 좋아하는 책만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서 걱정이더니 본격적인 책읽기가 시작되는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나마 책읽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학원을 안다니는 대신 남는 시간에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채팅에만 열중하고 급기야 내가 핸드폰을 압수하면 그제서야 만화 삼국지류의 책을 펼쳐 들고 꽤 잘하고 있다는 듯 행동한다.

사실 이제까지는 내가 주로 아이에게 책을 추천하는 식이었는데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현재 상혁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책을 고르라 한 것이다.

 역시 관심사는 털?" 하는 내게 "에이~ 엄마. 그 털이 아니라고 책소개에 나와있잖아. 그저 재미있을 것 같고 열일곱이라니까 읽고싶은 거라고요."

지난 월요닐 날 2박3일 일정으로 수련회를 갔다가 오늘 돌아오는 아들 녀석의 책상위에 "열일곱 살의 털"을 올려놓았다. 아마도 수련회에서 지내는 두 밤 동안 남자들만의 은밀한 이야기 속에 "털"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인형들을 데리고 경찰놀이, 외계인과의 전쟁놀이를 하는 녀석.

재활용 날마다 다 갖다 버리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나도 저 장난감들을 차마 버리질 못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감성어린 놀이꺼리도 맘껏 뛰어 놀만한 장소도 변변치 않으니 저것마저 없애면 그야말로 우리 상혁이는 무슨 낙으로 살 것이냐는 걱정이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것이다.

한 편으론 아들녀석이 당당한 청년이 되었으면 싶고 또 다른 한 편으론 그렇게 쇠가는 아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싫은가 보다.

 

이번 여름에 들어 와 한 달에 1cm씩 키가 커지고 있는데 이 때가 기회다싶어 밖에서 햇빛과 바람을 받으며 마음 껏 놀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안으면 기분좋게 따뜻하던 녀석의 몸도 조금은 강해졌고 통통하던 발도 어른 발처럼 핏줄이 불거지면서 신발 사이즈가 250은 되어야 편하게 신을 수 있다한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부드럽게 넘겨지던 녀석의 머리털은 어느 새 굵고 뻣뻣해져서 말을 잘 안 듣는다. 여름이니 좀 짧게 깎으라고 주문을 넣으면 녀석의 얼굴에는 금세 고집스런 표정이 떠 오른다.

이제까지는 엄마가 하라면 하기싫어도 했고 마음에 안드는 일같으면 굳은 표정대신 "제발~~"하면서 살짝 웃으며 넘어가던 귀여운 아들이었다.

아침마다 나는 이마를 내놓으라고 성화이고 녀석은 현관문을 닫는 순간까지 가리느라 열심이다.

그 털 하나로 모자간에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 부언하자면 "열일곱 살의 털"은 머리털에 관한 이야기이다.

 

 

 

청소년
열일곱 살의 털
김해원 저
우아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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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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