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엔 눈도 많고 추위도 상당하다.
나는 추워라, 추워라 하는데 우리 집 식구들-그 중에서도 상혁이만은 이 겨울이 즐겁기만 하다.
하루 한 번 바둑교실에 가느라 바깥행차를 하는 녀석에게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어라,모자를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잔소리가 시작되면 녀석은 한마디로 내 입막음을 해버린다.
"엄마,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에요."
그으래....그렇지 젊어서 좋겠다.
며칠 전 눈이 많이 온 날에도 녀석은 친구와 놀러간다고 나가더니 해질녘이 되어서야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길래 기운이 없는 것이냐.
빨갛게 얼은 두 볼을 보고 사진부터 찍는 엄마를 보더니 쑥스럽게 씨익 웃는다.
아~ 엄마. 제발 지금 엉망이잖아요.
그런데 사진찍지 말라고 돌아선 녀석의 등에는 가방이 있다.
"놀러간다더니 무슨 가방을 들고 나갔니?"
"엄마. 오늘 진짜 너무 신나게 놀았어. 윤범이랑 등산을 했는데 눈이 많이 와서 발이 푹푹 빠지더라고.
그리고 산에 가니까 군데군데 군인들이 들어가는 구덩이가 있길래 거기에 들어가서 준비해 간 컵라면을 끓여먹었지. 아!! 정말 맛있더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맛본 최고로 맛있는 그런 맛있는 라면이었어."
전 날 밤에 갑자기 자다말고 일어나서는 부시럭 부시럭 소리를 내더니 그게 다 이런 준비를 한 것이었구나.
아무렴, 친구와 함께 눈으로 뒤덮인 하얀 산에 올라 짧은 겨울 해를 아쉬워할 정도로 놀았으니 지치기도 했겠다. 학교 준비물은 그렇게 야무지게도 못챙기면서 컵라면과 뜨거운 물 챙길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녀석이 벗어놓은 부츠속에는 젖은 낙엽들이 한가득이더라.
이제 올 3월이면 중학생.
기나긴 겨울방학동안 무얼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방과후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생명과학뿐이고 학원은 바둑학원만 다니니 중학교를 대비해 수학을 좀 해보면 어떨까싶다가도 워낙 좋아하지 않는 수학을 어거지로 우겨넣다보면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 단념을 했다.
대신 바둑학원이 멀어도 차량을 기다리지 않고 운동삼아 걸어다니는 녀석이 걱정되어 일단 1급을 딴 바둑은
당분간 쉬고 대신 집앞의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체르니를 마스터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또 겨울엔 활동적인 것을 하면 좋을 것 같아 태권도를 다시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바둑과 피아노,태권도와 권투 모두를 하고 싶지만 엄마,아빠한테 미안하니 굳이 두가지만 고르라면......
방학 전에 체육선생님이 태권도 유단자인 사람 손들어보라고 해서 자기가 3단이라고 했더니 반 아이들이 모두 놀랐단다. 평소에 순둥이처럼 싸우지도 않고 '내가 때릴 수 있지만 참는다'라고 하던 상혁이의 모습에서 태권도 3단의 이미지는 상상하지 힘든 것이었나보다.
누가 집적거리면 당하지만 말고 너도 한 대 때리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맞고 들어오면 너도 맞는다라고 겁을 주어도 태권도는 방어하는 운동이지 남을 공격하는 운동이 아니라며 고집을 피우더니 그 날 반아이들의 반응이 좀 놀라웠단다.
이제 권투를 배워서 순발력도 키우고 복근도 키우고 용기있는 진정한 싸나이가 되고 싶은가 보다.
아마도 완득이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엔 바둑과 권투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내 생각엔 그저 바둑판의 집과 비례해 맷집만 키우게 되는 것은 아닌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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