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소집일인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눈가가 촉촉했다.
수험표를 받아들고 교문을 나서는데 후배들이 교문까지 두줄로 서서 선배들의 출정식에 박수를 쳐주었단다.
그 끝에는 그렇게나 커보이던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걱정반 기대반으로 한층 작아보이기도 해서 울컥했단다.
그래도 씩씩하게 친구들과 교문을 나서는데 한켠에서 1학년때의 친구 한명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있더란다.
좋은 기억을 공유했던 친구이기에 딸아이는 그 친구를 안아주고 격려해주는데 자기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꾹 참았다며 왜 우리는 수능때문에 울고 웃어야하는지 푸념을 한다.
집에 오는 동안 페북에 그친구를 향한 마음을 써보았단다.
그리고 몇분후 친구의 답신.
어제,오늘 아직 보지도 않은 수능때문에 우는 아이들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우리가 그 시절이었을 때에는 예비고사를 보는 인구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혹시 대학엘 가지 않더라도 사회적 낙오자라는 인식은 그리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한창 꿈과 이상으로 가슴을 부풀려야 할 청소년들을 비상구도 없는 막다른 공간으로 마구 몰아넣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교육은 100년지대계라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딸아이가 태어났던 해에도 대학입시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고 세월이 흘러 이제 수능의 문턱에 서있는 지금에 와 돌이켜보건대 우리의 교육정책은 거듭된 미봉책으로 더더욱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어른들이 어쩌지 못하는 제도적인 불합리성속에서도 아이들은 인간다움을 잃지않고 친구를 적으로 여기기보다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자정능력이 있음이다.
들어보면 인생의 외줄타기를 하는 고등학교 3년동안 딸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숙하고 순수한 인간관계를 맺어왔기에 고등학교 3년간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제발 우리 딸이 엄마가 되어 그 딸이 사춘기를 지날 무렵이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져 있기를 소망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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