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달팽이의 별'을 보러 왕십리 cgv에 가며 했던 말은
"엄마, 이번 영화는 신나고 재미있는 영화라기보다 눈물과 감동이 있는 인간극장같은 영화에요."였다.
장애인이 나오는 다큐영화니 당연히 감동이 있을 것이고 소외된 그들이 지구라는 별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니 또 당연히 눈물도 있을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은 빗나갔다.
추수가 끝나 겨울을 나고있는 시골 들판에 키작은 여자와 키큰 남자가 연을 날리려 애를 쓰고있다.
그런데 주변에 아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큰 어른들이 연을 날리면서 즐거워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그 둘사이의 소통방식이 독특하다.
서로의 손을 만지며 가볍게 톡톡 치는 점화(點話;점자수화)가 그것이다.
그 소통의 시간에는 모든 촉각이 손끝으로 가 온 세상만물이 숨을 죽이는 순간이다. 톡톡톡톡.......
시청각중복장애인 영찬씨는 스스로를 우주인이라 칭한다.
어쩌다 이 지구로 옮겨와 살게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주인인 그가 아내와 살고있는 평화롭고 작은 공간을 그는 달팽이별이라 칭한다. 그가 사는 달팽이별에서는 만지기로 소통을 한다.
그 달팽이별의 작은 공간의 따뜻한 공기속에서 손끝으로 전해져오는 감각적인 만지기에 앞서 영찬씨의 만지기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져주는 능력이 있다.
외형적으로 놓고보면 척추장애인인 아내 순호씨가 보지 못하는 영찬씨보다는 좀더 나은 형편이라고 할까.
그래서 관객들은 대부분 우주인 영찬씨가 키작은 아내에게 의지하고 위로를 받는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 미지의 세계에서 온 우주인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달팽이 별의 우주인도 다르지 않아 그는 아내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능력을 발휘하는데 그것이 바로 평범한 우리들이 간과하는 '공감'이다.
울고싶은 날에는 비를 맞는다는 순호씨의 내밀한 고백이 영찬씨에게 도달하는 순간 우주인은 "아~,그랬구나."하며 그녀의 감정에 공감을 보내고 그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치유를 한다.
그런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몇프로나 될까.
우리같은 비장애인들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사는동안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마음을 여는 것에는 많이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누가 누구에게 짐이 되고 안되고, 도움을 주는 입장과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달팽이 별의 이야기.
단지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놓고 볼 때 심각한 수준의 장애를 가진 이들은 오히려 우리쪽이 아닌가 싶다.
2010년 EIDF 에 출품했었던 평범한 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받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반드시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만은 아니고 이 '달팽이 별'에는 눈물이 없다.
눈물이 없다고 해서 감동도 없으란 법이 있는가마는 클라이맥스도 없는 이야기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원한 생수 한모금을 길어올리는 이것은 원초적인 갈증을 해소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눈물이 날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이 빗나가고 우주인인 영찬씨의 위트와 용기, 그리고 어차피 이사온 지구별에 정착하기 위해 첫걸음을 뗀 우주인의 혼자걷는 길의 끝에 희망이 보였다.
나도 그들처럼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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