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한 문장에 새겨진 선명한 트릭, 칼날처럼 빛나는 반전
“문학적 향기가 감도는 가운데 놀라운 진상이 드러납니다. 이것이야말로
‘렌조 미키히코의 마법’이라고 탄식하게 됩니다.” 온다 리쿠(작가)
화장(花葬) 시리즈 -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꽃
꽃을 빌어 시대를 이야기하다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화(?])로 불리는 연작단편집, 《회귀천 정사》가국내에 선보인다.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각각의 꽃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꽃으로 장사 지내다’라는 의미인 ‘화장(花葬) 시리즈’라 불리는 단편들이다.
1979년부터 시작돼, 여덟 편으로 남아 있는(남은 세 편의 작품은 이후 출간될 《저녁 싸리 정사》에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이 아직도 일본 미스터리 역사에 ‘아름다운’ 흔적을 새기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꽃’이라는 화려한 존재를 소재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 렌조 미키히코는 ‘화장 시리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스스로 언급한 적이 있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꽃입니다.
지지 않고 남은 꽃, 피기 전에 버려진 꽃, 진흙탕 속에서 짓이겨진 꽃, 피로 그린 꽃, 사람 피부에 스며든 먹물 빛의 꽃……. 그리고 쓰고 싶었던 세계는 탐정물이므로 트릭으로서의 꽃, 복선에 사용된 꽃,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꽃, 흉기가 된 꽃…….
……선택한 꽃들은 지금은 잊힌,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것들뿐입니다. 배경도 제가 태어나기 전인 상상 속에서만 아는 시대뿐입니다.
글자로만 배운 역사라는 어두운 세계에 한 포기 또는 한 송이 피어 있는 꽃들을 각각의 살인 사건을 빌어 흩뜨리려고 합니다.”
줄거리
「등나무 향기」
유곽 근처에 살고 있는 ‘나’와 동거녀. 옆집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대필가 한 사람이 유흥가의 글 모르는 여자들을 대신해 그들의 고향으로 편지를 써 보내준다. 어느 날 얼굴이 짓이겨진 시체가 발견되고, 목격자의 증언으로 대필가는 체포된다. 나와 동거녀는 그를 구하기 위해 위증을 하려 하지만 결국 대필가는 자살하고 만다. 이후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도라지꽃 피는 집」
손에 도라지꽃을 꼭 쥔 채 발견된 시체. 형사인 나와 선배는 시체 발견 장소에서 가까운 유곽에 도착해 탐문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피해자가 죽은 날, 후쿠무라라는 한 손님이 그 유곽을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단골 상대였던 한 창기를 조사한다. 그녀의 방 앞 노대에는 하얀 도라지꽃이 한 가득 피어 있었는데…….
「오동나무 관(?」
‘나’는 작은 폭력 조직 가야바구미에서 과묵하고 네 손가락이 없는 한 사내 누키타의 수발을 들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부탁으로 매주 한 여자와 밤을 보내게 된다. 인근한 조직과 세력을 다투던 중, 누키타는 ‘나’에게 가야바구미의 두목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왜 내가 속한 조직의 두목을 죽여야 했을까? 누키타 형님과 내가 밤을 함께하던 그 여자는 어떤 사이였을까?
「흰 연꽃 사찰」
내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가 한 남자를 죽이는 섬뜩한 영상이다. 어머니는 누구를 죽였을까. 그리고 왜 죽여야만 했는가.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수수께끼가 풀린 순간 내 눈앞에는 놀라운 진실이 떠오른다.
「회귀천 정사」
1920년대 일본, 천재 가인으로 불렸던 소노다 가쿠요는 두 번에 걸친 정사( ?? 미수 사건으로, 두 명의 여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소노다는 그 여정을 두 권의 가집으로 남기고는 목을 그어 서른넷 짧은 생을 마쳤다. 찬란한 명성을 얻은 두 권의 가집. 그 시구를 통해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과연 그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자리하고 있을까
예스24
책의 표지는 책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케하는데
제목도 그러하거니와 장정또한 사춘기 소녀의 핑크빛 꿈이 물들여진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다.
이런 책이 재미있을까?라기보다 이런 책이 추리소설이라니?하는 의아함이 먼저 드는 첫인상이다.
갑작스레 일본의 추리소설들을 몰아 보면서 몇몇 작가들의 팬이 되기도 했지만 이미 그들의 매력에 흠뻑
취한나머지 더이상의 흥미유발은 없으리라, 이보다 더 신선한 작품들은 더이상 없으리라 생각하던 차이다.
그런데 멀고도 먼 다이쇼(1912∼1926)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 더구나 꽃이 주인공이라는 작가 자신의 소개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아아~,그런데 단순히 쟝르소설로 분류한다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만큼 명작에 속하는- 추리기법보다도
작가의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 감히 아름다운 추리소설이라 부르고 싶은 작품이다.
지은이가 남자임에도 그 문체의 유려함이나 섬세함에는 혹시 여자가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만치
그러나 결코 수식이 화려한 것만은 아닌 그런 작품이다.
렌죠의 작품들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현대인의 감각을 자극하는 특이한 장치는 없다.
기교에 치중하는 트릭이나 반전이 없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추리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그 역이 어드메인지 미리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머리터지는 두뇌싸움을 걸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만족하게 된다.
일본이 미스테리 문학에 나름의 성과를 내고있는 이유는 획일적이고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류의 작품들 속에 흐르고 있는 도도한 역사의 물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에도가와 란포로부터 아직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접하지 못한 작가들이 많은 그 저변이 부럽기만 하다.
1948년 아이치 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재학 중에는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1975년 창간된, 전설의 미스터리 잡지 《환영성》에서 <변조 2인 하오리>로 ‘제3회 환영성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교묘한 플롯과 서정적인 문체, 일본 특유의 정서를 혼합한 독특한 작풍을 선보이며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는다. 특히 ‘화장(花葬) 시리즈’로 불리는, 꽃을 소재로 한 8편의 단편은 일본 미스터리 사상 가장 아름다운 단편으로 손꼽힌다. 이 단편들은 《회귀천 정사》 와 《저녁 싸리 정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화장 시리즈 중 한 편인《회귀천 정사》로 제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달맞이꽃야정》으로 제5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1984년에는 《연문》으로 일본 대중문학계의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나오키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회귀천 정사》나 《연문》 등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에는 《숨은 국화》로 시바타렌자부로상을 수상하는 등, 《연문》 이후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섬세한 연애소설로 작풍이 변화하는가 싶더니, 2000년대 접어들어 《백광》, 《인간 동물원》 등을 발표하며 서스펜스나 유괴 등으로 작품의 폭을 넓혀갔다.
1985년 불교학자 다시로 슌코에게 사사하고 불가에 귀의했던 렌조 미키히코는 최근 5년 만에 장편을 선보이고 새로운 ‘화장(花葬) 시리즈’를 계획하는 등 여전한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위키백과
회귀천 정사
'부엌에서 책읽기 > 책장을 덮으며(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벚꽃지는 계절에 생각나는 최고의 반전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0) | 2012.04.30 |
---|---|
물만두의 추리책방. (0) | 2012.04.18 |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0) | 2012.04.02 |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추리소설 그 이상의 것 (0) | 2012.03.12 |
책은 도끼다. (0) | 2012.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