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내 주변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여러명중 '40세가 되면 자살하겠다' 던 사람이 지금 기억난다.
그가 40이 넘으면 자살하겠다는 이유는 자신이 속물이 되고싶지 않아서라는 것이었고 그 말은 내게 가히 충격적이라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곤하던 그의 40세가 궁금했다.
자살하겠다던 40즈음부터 그는 보약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40세를 지나 50세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그는 보약과 건강식을 챙겨먹으며 잘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속물이 되기싫다던 그는 어느새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더니 중개료가 아깝다고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의 눈에 그는 속물이 다 된 사람이었으나 여전히 자신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들을 속물이라며 경멸했다.
그렇다면 그를 단정하는 나의 젊은 날과 현재의 모습은 어떠할까.
부조리함에 맞서 정의를 부르짖던 우리의 열정은 단순한 치기였을까?
나의 젊은 날에는 입시지옥이 있었고 최루탄이 있었으며 삼청교육대가 있었다.
눈,귀,입을 다 막고 살다가 외화직배와 스포츠에의 열광, 봇물처럼 터지는 성풍속의 변화로 대표되어지는 우민화정책까지 진하게 체감하며 살아 온 세대이니 속물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기도 전 불가항력적으로 그 물결에 편승하고 만 나역시 지독한 속물이다.
그러나 내 자신을 스스로 속물이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번에 읽은 푸른지식의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라는 책은 독일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와 작가의 솔직한 대담을 옮긴 것이라한다.
책을 받아들고 '악셀 하케'라는 이름이 낯익어 책장을 보니 '하케의 동물이야기'가 보인다.
동물이야기라고 해서 동물학자가 썼을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자.
2002년 당시에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인이 쓴 동물이야기에서 우리나라 축구선수 차범근이야기가 잠깐 나와서 의외라 여겼던 기억이 있다.
이 정도면 눈치를 챘겠지만 하케의 동물이야기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야기로 귀결되고 동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고 동물과 인간이 맺고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2011년 독일사회에 신드롬을 일으킨 두 남자의 속물이야기는 하루아침에 기획되어지고 즉흥적으로 나눈 대담이 아닌 그 두 남자가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늘 화두로 삼았던 가치관의 이야기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나치에서부터 통독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독일의 지성들이 나누는 대화는 의외로 딱딱하지 않다. 물론 초반에는 유럽적인 세계관에 나 자신을 담그기가 무척 힘들었으나 읽어가면서는 오히려 편안히 거실 소파에서 담소를 즐기듯 풀어나가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역시 속물이라는 것을 거부감없이 인정하게 된다.
책의 내용은 크게
1장 나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2장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3장 인류의 종말?
4장 나의 부모와 나의 아이들
5장 가장 큰 딜레마: 정의
6장 우리를 엄습하는 정신병
7장 우리 시대의 진짜 영웅
으로 나뉘어지는데 비록 동서양 문화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속물근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자살의 문제가 대부분 우울증에서 온다는 사실과 정치에 대한 냉소가 지나쳐 무관심으로까지 번진 세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상과 그들에 대한 편견, 늘어가는 이혼율과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비되는 캥거루족, 사회곳곳에 만연한 불평등을 보며 과연 정의는 있기나 한 것일까하는 의구심, 그리고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는 수많은 작은 영웅들.
그들이 이야기한 모든 것들은 외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바로 우리 사회에, 나의 가족들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지금 과연 속물이란 그렇게도 비난받아 마땅한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이상을 쫒던 청년이 생활인의 옷을 입는다는 것, 그것이 속물이 아닐까 자위도 해본다.
나는 속물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갖고 자신을 뒤돌아보는 한은 그렇게 멀리까지 나오지 않은 것이기에
노선을 조정해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가져본다.
리뷰어로 응모를 하고 당첨이 되면서 책속에 몇줄이나마 인사를 동봉한 메모를 받아본 적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그 첫번째는 몇 년전의 신생출판사였고 제법 내용이 좋은 책을 펴냈기에,그리고 당시의 나도 풋풋한 초보 리뷰어였기에 담당자에게 고맙다는 인삿말을 이메일로 보냈었다.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라는 책이 들어있는 봉투를 보니 '푸른지식'이라는 신생출판사의 주소가 강북청년창업센터이다.
미루어 짐작컨데 이들역시 이름에 걸맞게 속물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고 건강한 출판사를 꾸려갈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앞으로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50년,100년이 되도록 속물화된 괴물출판사가 아니라 연륜으로 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그런 늘푸른 청년출판사가 되기를 빌어본다.
아참참!! 이 책은 재생지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한다.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푸른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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