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0대를 지나면서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여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구나 주인공은 우리가 질시하여야 마땅한 완벽한 여성이 아닌 어찌보면 나보다도 한두가지가 빠지는 고아출신의 밉상이니 시새움에의 괴로움없이 읽을 수 있는 완벽한 마음의 양식이었다.
제인 에어의 첫 장을 읽는데 울 아들이 옆에서 슬쩍 곁눈질로 제법 재미있게 훔쳐보더니 내가 자리를 뜬사이 아예 자기가 펼쳐놓고 읽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반엔 제인 에어가 외숙모에에 학대(?)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나이도 상혁이와 엇비슷하니 아마 동화책같다 생각이 들었나 보다.더구나 제인 에어가 붉은 방에 갇힌 장면에서는 공포 소설이라며 움찔하면서도 끝까지 읽고 싶은 눈치인데.......
부득불 자기도 엄마옆에서 같이 읽겠다는 것을 귀찮다고 떼어 놓으니 슬몃 멀어졌다가 어느 날 다시 묻는다.
"엄마, 엄마가 읽으시는게 '제인 에어'지요?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두권짜리?"
"응..."
"엄마는 두꺼운 책이 좋아요? 너무 오래걸리잖아요."
"그만큼 자세한 이야깃거리가 많으니 좋잖아."
"엄마, 이거. 이렇게 얇은 책이 있는데 왜 그렇게 두꺼운 걸로 읽어요?"
보아하니 빨간색의 영한대역 문고판 '제인 에어'다.
"하하... 그러게~ 이렇게 얇고 간단한 책도 있었네.^^;;(니가 읽어라,이렇게 얇은 책.)"
"엄마, 우리나라 말은 영어보다 훨씬 복잡하고 긴말이 많은가 봐. 그러니까 이렇게 얇은 책으로 이렇게 두꺼운 책을 만들지."
"그럴까? 정말로 그렇다면 미국사람이 30분 이야기한 것을 우리나라 사람이 3시간은 통역을 해줘야 할텐데 그렇지는 않잖아."
"그럼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거지?"
중학교 때 읽었던 '제인 에어'의 첫장은 제인이 로체스터가의 문을 노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앞의 이야기가 한뭉태기 들어내졌다는 것은 모른채 그 집에 오기까지 제인 에어의 배경이 어떠한지 알 수가 없었기에 답답하게 읽었었는데 알고보니 제인 에어, 나름대로 인생역정이 있었던 게다.
제인 에어는 재미있게 읽었다.
철없던 시절에 읽었던 제인 에어를 통해서나 지금 이 나이가 되어 다시 읽은 제인 에어에서 보면 그 안에 내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까 낮에 멜라니아님과 통화를 했는데(이 글은 6월 29일에 쓰기시작. ㅠㅠ ) 멜라니아님은 제인 에어의 그 성격이 이해가 안된다고,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인 로체스터를 그렇게 괴롭혀서 밉다고 했는데 나는 그 제인 에어가 천번 만번 이해가 되는 것이다.
신분이 높아서 남들이 우러러볼 만한 처지도 아니고, 인물이 잘나서 칭송받는 것도 아니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누구든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기에 그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이란 얄궂은 감정이 그저 의심스럽고 불확실할 수 밖에.
제인 에어는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는 세상에서 불현듯 찾아온 가장 고귀한 사랑이라는 감정마저 신분과 사회제도의 억압,그리고 스스로의 이성적인 판단하에 기꺼이 포기하지만 끝내는 진실한 사랑에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사랑을 쟁취한다는 점에서 출판당시에도 인기가 높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사서 읽은 이들은 아마도 보통의 평범한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는 여성들에게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장치인 것이 틀림없다.
아름다운 여성을 지칭하는 잣대가 '오로지 외모'에서 '그나마 개성'쪽으로 조금 달라졌을 뿐 딸을 낳고 키우면서 결혼에 관한 막연한 상상내지는 망상을 함께 키우는 엄마들의 수는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
책의 뒷표지에 보면 '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은 일본의 부모들이 선물하는 책 1위'라고 소개되어있다.
평범한 내 딸이 로체스터같이 사랑에 눈 먼(?) 남자를 만나 행복한 종속의 삶을 사는 것이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부모들의 바램인 한 제인 에어가 차지하는 그 위상은 영원불변일런지도 모른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 루저 남성을 선택한다면 제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서 보듯이 대부분 그 끝은 좋지 못하다. 여성이 갖는 영향력은 남성이 갖는 그것보다 월등해야만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을 보면서 남녀평등이라는 말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외쳐질 것이라 예측을 해본다.
제인 에어에서 참 흥미롭고 불쌍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그녀의 사촌오빠 '세인트 존'이다.
그는 가난과 고결한(?) 자존심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속세에서 펼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대신 선교사로서의 소명안에서 자신의 모든 감정과 욕구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인물이다. 배우자역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따르기보다는 그저 수단의 한 방편으로 선택을 하려하고 그 대상이 바로 근면,인내,노력의 결정체인 제인이었던 것이다.
세인트 존이 제인에게 청혼을 했을 때 세상에서 이미 쓰디쓴 상실감을 맛본 그녀였기에 그 청혼을 받아들이게 될까 봐 저으기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제인은 타당하기만 하다면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선교사 부인으로서의 역할과 맞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었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그녀였기에 가장 고귀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세인트 존에게 충실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매듭을 지어야할 것이기에 제인도 아마 그런 마음으로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좇아 손필드로 길을 나서고 둘은 먼 길을 돌아 하나가 된다. 제인이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 자신했던 세인트 존은 결국 혼자 인도로 떠났다. 어쩌면 세인트 존도 원주민 여자를 만나 로체스터의 전철을 밟게 되지는 않을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선학교나 기숙학교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진 자선학교,그 목적이 세금에 있었던 공명심에 있었던 그 실체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해도 그 교육의 혜택은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친척 아이를 떠맡으면서 애보개나 식모살이를 시킬망정 가르치려하지 않았던 우리와는 달리 열악한 환경의 자선학교로나마 뚝 떼어 내버리는 그네들의 행동이 어느 면에서는 부러운 것이다.
제인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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