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현관문을 열어보면 전 날 어지럽던 바닥이 어쩐지 정리되어 보이는 때가 있다.
이상하다.
조금 후에 혹은 다음 날 청소하리라고 급하게 문을 닫았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열어 본 현관문 앞은 그닥 지저분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게 2년은 살았는가 보다.
언젠가는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겁이나서 가만히 있다가 소리가 그치고 한참이 지난 뒤 살며시 문을 열어보니 아무런 수상함이 없는 현관앞 전실이 깨끗한게 눈에 들어 왔다.
그 때서야 비로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우리 전실까지도 신경 써주시는 것을 알았다.
인상이 참 깨끗하시고 얌전하신, 겉으로 보기에도 교양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아파트 주민들과 수다스럽게 남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계단의 신주를 닦으면서도 얼굴 찌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벌써 우리 아파트의 청소를 하신지가 3년이 넘으신 것 같다.
우리 집 현관앞을 지켜주시니 평소에 차 한잔이라도 대접해 드리려고 했으나 기회가 여의치 않았는데
며칠 전 목포에서 올라 온 김장용 액젓을 선물로 드렸더니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혹시 토란을 좋아하느냐며
되레 토란을 한꾸러미 안겨주셨다.
토란도 역시 아파트의 어느 주민이 직접 재배한 것을 나눠 드렸는가 본데 극구 사양하는 내게 친정 어머니가 딸을 챙기듯 토란을 들려주셨다.
와서 보니 생전 처음 보는 껍질있는 토란이다.
쌀뜨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껍질을 깠다.
그래도 손등이 좀 가렵긴 하더라.
한 웅큼은 간장에 졸여 내가 혼자 다 먹었다.
먹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물토란, 근래에 먹은 토란은 유난히 딱딱하고 옛 맛이 안나길래 중국산인 줄 알았더니 토란에도 밤토란과 물토란이 있단다.
양이 많아 나머지는 진공해서 냉동보관해 놓았더니 뿌듯하다.
하나에게 토란 이야기를 하며 간장에 졸여줄가 했더니 뭐니뭐니해도 토란의 참맛은 국이라며 토란국을 끓여달란다.
조금 있던 양지로 국물을 내서 토란국을 끓여 보았다.
엄마의 맛에 조금은 근접했다.
먼 훗날 하나도 이 맛을 기억하며 토란국을 끓이겠지.
좋은 것을 나눠 먹으려는 이웃간의 정으로 하나와 나 그리고 친정 엄마의 추억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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