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만지기(feeling)

뜸했습니다.

hohoyaa 2009. 10. 12. 11:48

하나가 고등학교에 가게 된다.

그런데 그저 남들처럼 평탄하고 순조롭게 학업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무난하게 상급학교에 진학하리라던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변수가 생겼다.

올해 초, 3학년이 되어 진학 상담을 하던 중 진로부장 선생님께서 하나에게 딱맞는 학교라며

하나고등학교를 권하셨단다.

사실 하나가 "나, 하나고 가고 싶어." 했을 때만 해도 난 하나고가 있는줄도 몰랐고

그저 우리 딸의 이름이 하나라 다른 선생님들처럼 장난을 하셨나보다 했었다.

알고보면 우리 하나가 제법 큰 부자다.

시내에 나가 보면 하나 은행에서부터 시작해 고속도로에서 마주치게 되는 하나 관광버스,

그리고 가깝게는 하나 부동산도 있다. 그리고 우리 몰래 투자해 놓은 숨은 재산도 꽤 많은 것 같다.

하긴 하나의 네이버 로그인 화면에는 '하나님'이라고 뜬다니 이런 딸을 둔 것은 보통 빽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엔 자기 이름을 딴 하나고등학교까지 설립을 했나 보다, 우리 하나가. ㅎㅎㅎ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하나가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그 하나고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설립취지나 운영방침을 보니 딱 우리 하나가, 아니 이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바라마지않는

이상적인 학교인 것이다.

 

하나고의 홈피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다 보니 정원 200명 중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40명이나 뽑겠다는 약속이 마치 내게도 해당되는 일인양 기쁘고 이런 학교라면 우리 하나가 한 번 지원해 볼만한 학교겠다 싶어 꿈같은 시간을 보내며 희망으로 가슴을 부풀리는 아이를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하나고를 지원하게 되면서 마음에 품어오던 열망이

요즈음엔 은근히 불안감,조급함으로 바뀌게 되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이니 사교육의 안전지대일 것이고 명문대 진학률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취지아래 학생부외에도 자기 소개서와 추천서등으로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과 문제 해결력을 본다니 우리 하나가 들어가면 참 좋겠지만서도.......

언론에서 하나고와 민사고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민사고,과학고,외고등 특목고를 가려던 학생들이

대거 방향을 틀어 하나고로 하향 지원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하나는 중학교를 시험쳐서 들어갔기에, 또 전교생이 200명 밖에 안되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 속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내신이 썩 좋지는 않다. 

학원을 안다니고 애초에 특목고는 생각도 안했기에 남들이 쌓아놓은 화려한 스펙도 없고.

게다가 원서 접수가 시작 된 요즈음  학원가에서도 하나고 열풍이 불어 급기야 자기 소개서를 학원 강사가

대필해 준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 오고 심층 면접 준비도 알아서 다~해준다는데 하나는 오로지 자기의 글솜씨만을 믿고 자소서를 몇 번이고 들여다 보며 썼다 지웠다 하고 있다.

 

이번 하나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엄마인 나는 다시 한 번 우리 나라 교육 현실의 단면을 보게 된다.

하나고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학교 선생님들의 추천서를 받기가 굉장히 힘들고

어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대놓고 귀찮다고 하시는가 보다.

하나는 자기 추천서를 써 주실 선생님이 원서가 올라오기 전부터 미리 연습을 하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 너무 오버 하시는것 아니에요?~~^^" 했다는데, 모든 선생님이 다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어느 선생님께서는 게시판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 하시기도 했다.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친구도 잡무에 시달리는 교사의 현실에 대해 한숨을 쉬기도 했기에 이 글을 올리신 선생님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무엇이 될런지, 나만 알고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편협한 어른으로 성장할런지,

학창시절 학교 성적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떨어지지만 뒤늦게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작은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할런지 아직은 모르지 않는가.

 

이번 기회에 나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과학고 입시대비반을 맡고 있는 조카의 말대로 하나를 일반 학교로 전학시켜 내신을 높였더라면,

3학년이 되어 전교 학생 임원단이 되었을 때 그냥 허락을 해주었더라면-생활기록부에 등재되어 유리하다고??

조카네 학원에서는 하나가 자기네 학원을 다니면서 특목고에 붙으면 학원비 전액을 돌려주겠다고도 했단다.

다른 학원들보다 그런 학생이 한두 명 더 나오게 되면 그 학원은 또 명문 학원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는 것이기에.

그 때 그냥 학원에 보냈더라면 좀 나았을까하고 살짝 흔들리기도 한다.

입학원서에는 내신과 함께 스펙을 쓰는 란이 있는데 올림피아드니 영재교육원이니 뭐니 하는 것도 모르고 살았던 아니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우리기에 이제와서는 하나에게 미안해 지는거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아집때문에 부모로서 응당 뒷받침해주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은 우리는 아이의 미래에 한 겹 먹장 구름을 드리우게 하였다.

 

지난 추석에 들렀던 친정에 큰올케는 오지 않았다.

오빠말로는 외고 다니는 큰아이와 중학교에서 영재반에 들은 작은 아이의 중간 고사 준비때문이라고 한다.

단 하룬데, 단 하루라도 똑똑한 아이들은 쉬면 안되는 것인가?

이미 충분히 자기 길을 가고 있는 아이들의 엄마는 단 하루라도 아이들을 감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아마도 직장 생활을 하는 올케 언니의 입장에서는 정말 피곤한 몸을 잠시 쉬기엔 아이들 핑계가 그만이겠다 싶다가도 명절날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학교 시험일정에 풀어본다.

친척 모임을 좋아하는 하나는 어느 곳에 가던지 어른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반면 오빠네 조카들은 만나도 별로 할 말이 없고 그렇게 만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이니 공통되는 관심사도 찾기 힘들고 할머니 댁에 와서도 한 쪽 방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으니 말시키기도 미안하다.

동생댁은 하나가 다니는 중학교에 시험을 보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물었다. 

동생네 조카는 5학년인데 그 동네에는  하나가 다니는 중학교 입시 전문 학원이 성업중이라고 한다.

하나는 그런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합격을 했기에 올케는 그게 무척 궁금했는가 보다.

하나가 특별히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해서 붙었다고는 생각지 않기에 만약 지원을 하게 되면 좋은 팁을 줄테니 구태여 학원 다니지 말고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보고 열심히 놀라고 했지만 과연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 줄런지는 모르겠다. ^^;

그러나 선배의 입장에서 학교의 분위기도 선생님들의 인품도 너무 좋아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고모의 마음이다.

 

3월초의 하나고라면 몰라도 준비 된 우수한 학생들이 대거 몰린 현재의 하나고 수준에는 못미치는 하나의 성적이다.

그러나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자소서를 쓰고 또 쓰는 하나를 보며 다시 닥쳐 올 3년 후가 또 걱정이다.

합격을 하지 않아도 준비하는 과정만으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자고 얘길 하면서도 내 마음 한 켠에서는 이제 늦게나마 본격적으로 스펙을 쌓게 해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을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앞선다.

 

하나고에 바라기는 부디 처음 약속대로 척박한 우리 교육 현실에서 희망의 좌표가 되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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