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모옴에게 괜히 딴지를 걸어 본다.
달과 6펜스, 과자와 맥주.
중학교에 올라가고 엄마가 사주신 세계문학전집 중 한권의 표제어였다.
제목을 보면 사춘기 소녀의 시선을 끌만한 아주 달콤한 제목이 아니던가.
또 방학이 오면 종종 놀러가곤 했던 상도동 이모네 집에서 보았던 타히티의 원주민을 그렸던 고갱의 삶을 그린 소설이라 해서 아주 풍부한 이국적인 느낌을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달과 6펜스’의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고갱이 이런 사람이로구나 정도의 감흥으로만 읽었던 것 같다.
전에는 그랬다.
사로잡힌 영혼을 가진 이런 훌륭한 남자라면 죽음만큼 끔찍한 내조를 해야만 하고 나또한 당연히 할 것이라고 정체모를 사명감으로 무장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세월의 밭고랑을 얼굴에 그리고 보니 고랑이 더욱 깊고 짙어지게 하는 지독한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이런 남자따위는 헌신적인 아내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비분강개가 일었다.
전에 보았던 고갱의 그림은 그랬다.
남국의 야자나무 아래에서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는 이쁘지 않은 원주민 여자와 그 색채의 강렬함에 눈이 부셨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는 고갱의 그림은 왜 그리 이지러져 보이는 것일까?
채 차오르지 않은 달의 어설픔을 보는 기분이랄까?
아마 모든게 세월탓이겠지.
실은 난 고흐가 좋다.
고흐가 좋아서 그의 그림을 즐겼고 나의 고흐가 고갱과 같이 살았다해서 친구의 친구를 아는 느낌으로 고갱을 조금 아는척 해주려고 했다.
고흐가 동생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어느 자서전 작가에 의해 재구성되어진 책을 보았는데 고통스런 삶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잃지 않은 그의 그림은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척도가 되었다.
그 후 ‘달과 6펜스’를 읽고 나서는 고갱이 서머싯 모옴이라는 작가를 만나 오히려 고흐보다 한층 더 화가다운 화가처럼 보여서 어린 마음에 참 못마땅했었고 고흐가 아닌 고갱을 소재로 이런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모옴을 무진장 싫어했다.
*모옴에게 딴지거는 재미
스트릭랜드가 앉았던 팔걸이 없는 의자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한다.
그 의자는 종종 스트릭랜드의 극한의 절제를 나타내며 한편으론 고행을 하는 순교자처럼 자신이 저지른 온갖 만행에 대한 속죄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의자라면 고흐가 ‘노란 방’에서 보여준 의자가 있다.
고흐는 고갱이 앉던 의자도 그렸다.
고흐가 그린 고흐의 의자.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
고흐가 여성적이고 양성애의 경향이 있다던가 고갱이 가부장적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그림을 깊이 보지는 않더라도 일단 고갱의 의자가 훨씬 부르조아적이고 역동적인 것만은 틀림이 없고 모옴이 고갱을 만났으리라는 가정하에 그가 보았던 의자는 아마 고흐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갱의 의자에는 소설속에서와는 달리 팔걸이가 있다.
***그럼 서머싯 모옴은 어떤 작가인가?
‘인간의 굴레’라는 책도 같은 책꽂이에 있었으나 ‘달과 6펜스’외 ‘과자와 맥주’를 읽고는 더 이상 모옴에 대해 알기를 거부했기에 이번에 다시 읽은 ‘달과 6펜스’로 모옴에 대한 편견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 소설안에는 실존 인물같은 등장인물들이 여럿 나온다.
어디에든지 꿰어 맞추기 좋아하는 내가 유추해보기로
스트릭랜드가 고갱이라면 바보같은 스트로브는 고흐(이 점이 진짜 마음에 안든다. 아마 모옴의 본성이 고갱과 비슷해서 고흐를 이런 식으로 묘사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앞길에 놓인 부와 명예를 단칼에 자르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 아브라함은 슈바이처가 아닐까 싶다.
스트릭랜드와 아브라함의 선택으로 보는 작가의 인생관은 인간의 존재가치가 부와 명예가 아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불굴의 의지, 지난한 인생의 진실에 맞서 뒤걸음치지 않는 것에 촛점을 맞추는 것 같다.
그런 모옴이니까 아마 작가 자신도 최소한 그와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약식으로 살펴 본 모음의 생은 자기 소설 속 인물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책을 많이 팔기 위해 재치있는 편법을 사용한 것만 보아도 소설 속 인물들의 우직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무책임한 가장이 아닌 화가 고갱을 소재로 했기에, 타히티에서의 생활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으리라 기대했으나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키기까지의 워밍업과 클라이막스가 없어 내심 실망스러웠다.
단 한작품이라도 그 과정과 스트릭랜드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해 주었더라면 이런 갈증은 없었을텐데.
모옴이 인간의 본성외에 예술에 좀더 관심이 깊었다면 아마 더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싶다.
공교롭게도 이글을 다 읽었을 때 산악인 고미영씨의 실종 소식을 들었다.
악조건을 무릅쓰고 험준한 산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물며 남자도 아닌 여자의 몸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발아래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보지 못한 채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담보하였을 그녀도 가치있는 인생을 산 것인가?
스트릭랜드가 육신이 병들어 마음의 눈으로 그림을 완성시키는 장면과 천길 낭떠러지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 봤을 고미영씨의 마지막 모습이 오버랩되어져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중 젤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이상이 큰 사람은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해.’
흠흠흠!!!
책은 벌써 읽었는데도 개인사가 바빠서 이제야 독후감을 쓰려니까 처음의 그 느낌이 많이 퇴색되어지고
설상가상 치매 초기 증상으로 말미암아 기록해두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또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고 되도록이면 중복되지 않는 내용으로 쓰려다보니 약간 옆길로 샌 것도 같고요.
암튼 이 작품으로 첫번째 미션 성공입니다. *^^*
달과 6펜스(세계문학전집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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