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블로그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 덕이다.
하나는 어느 쪽으로든 늘 나를 심심치 않게 해주었고 간혹 그 어린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튀어 나올 때면 황당한 웃음과 함께 녹음이라도 하고 싶어지곤 했다.
하지만 늘 생각만 앞서고 바삐 사느라 일일이 기념이 될만한 녹음이나 녹화는 제대로 해보질 못했고 인터넷을 하면서 대충이나마 사이버 공간에 끄적여 보기도 했으나 그도 역시 지극한 정성이 필요한 일인지라 그리 열심이지는 못했다.
하나가 유치원에 가고 종업식 날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일년치 결과물들을 받아보며,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방학식 날이나 해가 바뀔 때마다 내 나름대로 추억이 될만한 것들을 간직하기 시작했다.
대개는 일기나 글짓기가 그 대상이었다.
하나는 특별히 솔직한 글을 많이 썼기에 지난 일기를 읽는 맛이 쏠쏠하다.
누나의 일기를 어쩌다 들춰 본 상혁이도 누나의 일기는 참 재미있다며 자기도 일기를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오늘 아이들의 낡은 종이박스를 정리하느라 예전의 그 시절을 잠시 들추어 보았다.
하나 것과 상혁이 것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종이박스,추억의 보물상자이다.
그 당시의 노트를 보니 하나는 글씨도 또박또박 잘 썼다.
그런데 그 때에는 그걸 미처 몰라서 인정해 주지 못하고 칭찬해 주지 못했다.
대충 둘의 것을 나누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중학생이 된 하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이렇게 십여권의 노트로 남았다.
오른쪽의 것은 상혁이의 일기와 독서록등이다.
특별히 상혁이의'쓰기책'에는 재미있는 생각을 많이 적어 놓아 버릴 수가 없었다.
하나가 쓴 두부 만들기.
하하하... 하나의 초등학교시절 별명은 '조폭마누라'와 '여깡'이었다.
두부 만들기의 과정을 소상히 기록하는 중에도 하나만의 특별한 포스가 느껴지는 글이다.
그래,하나가 전학을 와서 왕따를 당하고는 분해서 씩씩거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웅크리거나 질질짜는 대신 당당하게 맞서 도전을 하고
결국은 선생님의 관심을 받아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되었었다.
그 일기도 있는데 나중에 한 번 찾아서 올려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졸업식 날에는 문학상도 탔었구나.
장학금도 탔었고.
오늘 낡은 종이 박스안에서 난 하나를 그리고 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 시절 너무 바빠서 신경쓰지 못하고 잘했어도 잘했다고 칭찬할 줄 모르던 무심한 엄마였다,나는.
하지만 하나는 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한테 혼이 나도 무언가 서운한 것이 있어도 늘 편지를 썼었다.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으나 하나는 늘 엄마를 그리워했었다.
원하는 답장을 제때에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는 늘 '사랑하는 엄마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늘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하나에게 미소보다는 짜증을 먼저 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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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낡은 종이박스안에서 어리고 어여쁜 우리 하나를 보았다.
그 낡은 박스는 나의 짜증을 담아 재활용장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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