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멥쌀에 찹쌀과 잡곡들을 넣어 지은 밥을 먹기에 어찌보면 날이면 날마다 대보름이지만
특히나 찰밥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대보름 기분을 내 보았다.
취나물과 도라지는 지난 번에 합천 가야산 밑에서 사온 것이고
콩나물과 시금치는 유기농이라고 오빠가 엄마에게 보내드린 것을
엄마가 손수 말린 호박,가지나물과 함께 가져 오셨다.
호박 말린 것은 나물로도 맛있지만 고추장 찌개에 넣어 먹어도 맛있고
특히 내가 가지나물을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신 엄마는 올 여름에 많이도 말려서 가져 오셨다.
한달음에 나물들을 볶아서 엄마 드릴 것,동생네 보낼 것,우리가 먹을 것으로 나누고 보니 풍요로운 대보름이 되었다. 더불어 동생네랑 맛좀 보시라고 절편까지 만들고 나니 명절 기분이 따로 없구나.
나물을 하면서는 양념으로 쓰는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 참기름은 우리 둘째 시누님이 보내 주신 것이고,참깨도 보내 주셨고,이번에 감태랑 석화를 보내며
다진 마늘도 함께 보내 주셨다고 친정 엄마께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서 듣던 상혁이가 한마디 아는 척을 한다.
"엄마,우리 집에 있는 것은 거의다 얻어온 것들이야."
"ㅎㅎㅎ 그러게."
그러고 보니까 조 위에 있는 김하고 나물에 들어간 집간장과 구운 소금도 지난 번에 친정에 갔다가 싸온 것이고 오곡밥에 들어간 콩도 제주에서 받은 것,나물이 놓여진 접시도 사은품으로 딸려 온 것들이다.
밥 공기도 둘째 시누님이 주셨고 콩나물국은 콩나물을 삶은 후 아까워서 국으로 끓여 내놓으니 돈 들어간 것이 별로 없으나 노동은 내가 했다.
찰밥에는 소금간을 약간하고 물을 적게 잡았더니 질지않게 잘 되었다.
나물과 찰밥을 엄마께 들려 배웅하고 우리는 남편이 공연 후에 들어오면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남편은 밥을 쪘느냐고 물어 본다.
압력밥솥에 해도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며 자기 어릴 적에는 밥을 쪄서 소쿠리에 펼쳐 놓아 식혔다고 한다.
내 기억속에는 그런 풍경이 없다.
난 그저 엄마가 해주시는 밥만 먹었는데 식구가 많은 남편은 밥에 대한 추억도 나와는 그 질이 다르다.
찰밥에는 역시 김이라는데 직접 김을 잴까도 생각했으나 소포장 김을 빨리 먹어야 하기에 이번에 안했다.
그러면서 식탁에서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엄마가 김재서 구워준 것 생각 안나지? 아마 엄마가 직접 재서 구워주면 뒤로 넘어갈걸?"
"ㅋㅋㅋ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 한 번 구워주세요."
"한 번 구웠다가 계속 굽게 되고 너희들 머리가 남아나지 않게 될까 봐 이 엄마가 참는다.^^"
명절에는 아무래도 우리 음식들을 많이 해먹게 되고 어릴 적에 먹어 보았던 음식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의 손맛이라는 그리움으로 입안을 적셔준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보면 때마다 음식을 챙기는 어머니를 낯설어하는 화자가 나오는데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집도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할머니,할아버지가 그런 날들을 일일이 챙기고 기다리셨으니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구색은 맞추느라 애를 쓰셨고 덕분에 나도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경제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그런 날들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런 추억들이 고스란히 전통이 되는 경험을 했던 탓이다.
꼭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기념할 만한 날들에는 고유의 음식들로 아이들의 입맛을 미리 길들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하나도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그 맛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물이 많이 있으니까 내일은 비빔밥을 해먹고 싶다고 벌써 입맛을 다시고 낼모레 쯤 아마 나는 다시마를 튀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가 나중에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면 아마 지금의 이 시간을 추억하며 나물을 볶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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