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던 작년 10월.
초등학교 2학년생 동생과 같은 수준으로 여름방학을 보내고 2학기 중간고사를 봤더니 평균 점수가 많이 떨어져서 자기도 좀 걱정스러웠는가 보다.
그러나 하나는 차분하게 ‘성적이 많이 떨어졌는데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고 싶으니 학원을 보내주세요.’가 아닌 불현 듯 생각나서 말하듯이 ‘나, 학원 다닐래.’이게 다이다.
솔직히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하나가 하도 졸라대고,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데 왜 안 보내주느냐고 어거지를 쓸 때에는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으나 최대한 냉정하게 시험을 못 봐서 일시적인 기분으로 학원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다닐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학원엘 다닌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한두 달 다니다 말 것이면 차라리 안 다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었다.
어쨌든 최소한 3달은 다녀보기로 하고 학원엘 가서 시험을 보고 반배치를 받았다.
처음 한 달은 어찌나 열심히 숙제를 하고 신이 나서 다니는지 진즉에 학원에 보내지 않았던 것을 살짝 후회하기도 하고 학원을 보냄으로써 이제야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자식 걱정을 하는 참부모가 된듯 격상된 느낌으로 열심히 도시락을 싸고 간식을 만들어 딸아이의 환심을 사려했다.
두 번째 달은 성적이 올라 최상급 반으로 올라갔으니 그 기분으로 구름을 밟고 다녔다.
누나가 학원엘 가니까 작은 아이는 집에서 내내 심심해했지만 내게는 둘이 만나 으르렁거리는 시간이 줄어 얼마나 편한지 아이를 다 키웠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렇게 잘 지나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말고사를 앞두고서는 학교 축제 연극에서 주인공인 ‘어린왕자’역을 맡았다고 연습을 하느라 학원에 빠지기가 일쑤더니 연극이 끝나고서는 학교 회장선거에 나간다고 분주했다.
하필 기말고사와 연극, 회장선거를 줄줄이 한꺼번에 치루니 옆에서 보는 내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회장 선거에 나가려면 학부모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가져온 추천서도 보는둥 마는둥 싸인을 안 해 주었더니 학교 가는 뒷모습이 곱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 회장이 되기라도 한다면 그 뒷바라지를 할 자신이 내게는 없었고 아이의 성격상 그 일에 매진할 것이기에 은근히 성적이 걱정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부터 속상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그제서야 찬찬히 추천서를 들여다보니 학교생활을 그렇게 엉망으로 하고 다니지는 않은 듯해서 마음이 좀 누그러지고 싸인도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회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고 이젠 좀 잠잠해져 방학을 보내고 있는 줄 알았다.
중간중간 힘에 부쳐 학원에 못가는 날들도 있었고 어느 날은 보는 내가 안쓰러워 차라리 하루 쉬라고 한 적도 있었으나 자신이 의지를 움직여 학원엘 가고 기운찬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하며 현관을 들어설 때에는 장하다 못해 고맙기 그지없었다.
방학을 했어도 4식구 모이는 시간이 어렵고 어디 여행을 가고 싶어도 하나의 학원이 걸려 온 가족이 포기를 했다.
얼굴이 노래서 다 늦게 들어오는 아이를 보면서 과연 학원에 계속 다녀야하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그런 회의가 들 적마다 하나가 하는 대답은 ‘다녀야한다’였다.
공부도 그렇지만 엄마나 저나 정보에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다.
학원을 다녀 보니 마치 신세계가 열리듯 시각이 달라지고 생전 처음 듣는 입시관련 정보들이 봇물 터지듯 하나에게로 밀려드니 자연 하나는 그 홍수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기꺼이 즐거운 표류를 하고 있었다.
더구나 다니는 학원의 고등학생들과 같이 난생 처음 본 TEPS모의시험에서도 600점을 받아 전체에서 7등을 했다하니까 나는 그게 다 학원 덕으로 생각되어졌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3월부터는 학원에 다니지 않겠다고 선포를 한다.
한참 재미있게 공부를 했는데 무슨 일인가 의아하게 여기기 전에 ‘역시 오래 못 가는군.’ 하는 탄식이 먼저 나왔다.
올케 언니는 진즉부터 내가 하나를 꾸준히 독려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중간에 그만두게 하면 아이에게 좋을 것이 없고 인내심도 없어지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자꾸 좌절하게 된다고 그 나이의 아이들이 뭘 알겠느냐면서 억지로라도 보내서 그 고비를 넘겨야한다고 충고를 했건만 조카에게 통하는 그 방식이 우리 하나에게는 먹혀들지 않는다.
하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는 다시 안 올 중학생활,남은 일 년까지도 학교 생활에 충실하고 싶다고 한다.
뒤늦게 학원엘 다니기 시작한 하나에게는 중학교 3학년 수학 선행도 사실 벅찬데 학원에서는 2월부터 고등학교 1학년 선행학습을 시킨다고 한다.
게다가 오답노트까지 만들라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는 당연히 모르는게 많아서 오답노트로 시간을 다 잡아 먹어 내신 관리마저도 힘들 것이고 나중엔 공부가 하기 싫어질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그러게 진즉부터 학원엘 다녔어야 했나보다고 했지만 하나는 막상 특목고 학원엘 다녀 보니 물론 잘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자기 생각만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고 반배치 고사까지도 컨닝을 해서 부풀려진 성적으로 최상급반을 유지하는 아이들이 태반이라 실망했다고 한다.
그간의 학원 생활을 돌이켜 볼 때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결코 부족하거나 질이 떨어지지 않으니 자기는 우선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싶고 이제껏 해오던대로 혼자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한다.
결국 2월까지만 다니기로 하고 3월부터는 집에서 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어디 두고보자하며 억하심정이 생기다가 요즘 곰곰 생각하며 내 자신을 바라보니 지난 3개월간의 내 모습이 참으로 우습게 보였다.
남들이 옆에서 조금만 시키면 외고에 갈 수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현혹되어 아이를 입시감옥에 가두고 공부기계라는 굴레를 쓰고 수인이 된 아이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간수의 역할을 학원 강사에 이어 엄마인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고가 인생의 목표도 아니고 또 우리 아이가 외고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면서 괜히 아이를 과신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는 아슬아슬한 담장위를 잘 걷나 못 걷나 감시를 했던 것이다.
이제 외고를 가기 위해 기계처럼 공부하진 않겠지만 나는 하나가 곧 새로운 목표를 세울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학교는 개학을 했고 하나는 지금 학원엘 가 있다.
특히 오늘은 영어 특강이 있어 12시에 온다고 하니까 그 시간 즈음에 나는 큰길로 아이를 마중나가 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늘 ‘그래도 우리 하나를 믿자, 믿자.’ 하면서도 순간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는 밤늦은 시간까지 문 밖에서 생활하는 아이를 보지 않아 마음이 놓이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미쳤는지 열외로 떨어져 나온 우리가 미쳤는지.......
집안에 울려퍼지는 하나의 발랄한 웃음소리를 곧 지겨워하게 될런지도 모르겠으나 티격태격할지언정 언제나 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엄마가 되어 보기로 한다. 올해에는.
나보다 훨씬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아빠가 사주신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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