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을 하기 전부터 방과 후 수학학원을 보내 달라며 조르던 녀석.
아직은 학원에 안가도 된다는 이 엄마의 말을 못 믿겠는지 틈만 나면 학원 이야기를 꺼내더니 방학을 하고 한동안은 잠잠했었다.
하지만 역시 하루에 태권도만 한시간 다녀 오는 것으로는 성이 안찼을까?
날마다 한숨을 치쉬고 내리쉬고 눈에 띄게 우울해진 상혁이에게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 보았다.
"상혁아,무슨 고민있어?"
"......." 고개만 외로 꼬고 좀처럼 입을 열 태세가 아니다.
"왜그러는데~? 애길 해야 엄마가 알고 같이 의논을 해서 해결할 것 아니야?"
"휴~! ........ 내 미래가 걱정이 되서 그래요."
"왜? 방학 숙제를 안해서? 지금부터라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해가면 되잖아?"
"그래도 역시 내 앞날이 불안하긴 마찬가지에요."
"선생님이 방학 숙제 안해오면 혼내신댔어?"
"아니요..."
"근데 뭘... 숙제를 아주 안해가는 것도 아니고 전시회 다녀 온 감상문이랑 일기나 독서록같은 것은 했으니까 괜찮을거야."
"그게 아니고 ....... 엄마가 나를 학원에 안 보내 줬잖아요.
다른 애들은 방학 동안 학원에도 많이 다니는데 나는 이렇게 놀고만 있으니까 당연히 앞날이 걱정되죠."
"괜찮아. 엄마가 보기엔 네가 특별히 공부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고 지금은 실컷 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학원에 안 보내는거야. 누나도 초등학교때는 놀기만 했었는걸?"
옆에서 듣고있던 하나는 얼른
"맞아, 누나는 초등학교 생각하면 맨날 맨날 밖에서 놀았던 기억밖에 없어. 초등학교 2학년인 지금이 얼마나 놀기좋은 때인데 학원엘 가려고 하냐? "
"그래도 나는학원도 안다니고 속편하게 놀기만 하는 내 앞날이 걱정되서 잠이 안 와."
얘기를 듣다 보니 딱한 생각도 들고 한 편으론 밖에 나가 놀 구실이 없어 그러는가 싶어 밖에 나가 친구를 좀 찾아 보라고 내 보냈더니 30분 정도 있다가 다시 들어왔다.
혹시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를 만날까 싶어 이리저리 다녔는데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갔고 날씨는 추워져서 그냥 들어 왔단다.
하나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학원엘 안 다니니 당장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늘 혼자 놀다 지쳤던 하나가 친구따라 학원에 가서 옆에 앉아 있다 왔다는 얘길 듣고는 미안해서 그 한달 동안 학원에 등록을 시켜주기도 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가 친구 옆자리를 지키고 있을 적에는 그렇게도 친절하시던 선생님이 막상 등록을 한 후에는 무신경하고 더 이상의 관심을 보이질 않아 하나의 학원에 대한 불신감만 키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상혁이의 경우는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학원을 안 다니면 아예 미래가 없는 듯이 한숨을 쉬는 것을 보고 네 미래를 위해 무엇을 배우고 싶냐고 물어봤다.
상혁이는 수학도 해야하고 영어도 해야하고 해야할게 너무 많단다.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학원보다는 미술이나 음악 학원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잠깐 치다 말았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고 해 등록을 시켰고 요즘엔 한결 활기찬 방학을 보내고 있다.
이제 방학이 거의 끝나가고 한가지씩 숙제를 챙겨야해서 단도리를 하다보니 일기장이 보였다.
이녀석,,,
미래가 어쩌고 앞날이 저쩌고 하면서 온 세상 걱정을 혼자 다 하더니 일기 한 페이지 쓰는 것도 힘이 들어 꾀를 내어 대충 쓴게 보인다.
눈이 오라는 내용으로 며칠 분량의 일기를 썼다.
그것도 칸을 채우기 위해 특수문자를 마구마구 남발하면서.
스키장엘 다녀 온 날, 피곤할텐데도 돌아오자마자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장엘 신나게 뛰어서 다녀 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이렇듯 즐거운 배움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엔 눈이 많이 와서 친구들과 눈싸움이라도 실컷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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