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생이란 이렇게 힘든거에요?"
좀 전에 9살 난 아들녀석이 온몸을 마룻바닥에 던지며 탄식하는 소리였다.
평일에는 학교 다녀와서 태권도장가서 신나게 2시간 가량을 놀다오고.
저녁시간에는 그 날 그 날의 숙제며 쪽지시험 준비를 하면서도 제 때에 빨리 빨리 안해서 내 속을 태우고.
책상에 좀 앉아 있나 싶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하면서 책들고 들어가서는 살림을 차렸는지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안하고.
이제야말로 숙제를 좀 하자고 달래면 배고프다고 밥 달라 하고.
밥 먹고 나서는 금방 공부하면 소화가 안되니까 쉬었다 한다하고.
그러면 벌써 시계는 9시 취침시간을 향해 가고 있고.
어제는 아빠랑 자전거타고 한강까지 갔다 왔다고 그렇게 신나하더니
오늘은 일기도 써야하고,받아쓰기 시험준비,독서록도 써야하고,국어 어휘력 인증준비 등등 일주일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자연 아침을 먹고부터 나의 채근은 시작되고
보통때면 하루종일을 잔소리 들어가며 온 가족의 진을 빼놓는 녀석이기에
늘 오늘만은,오늘만은 하면서 얼른 해치우고 맘편히 놀자해도 아이에게는 그게 쉽지가 않은가 보다.
결국 어제 자전거 탄 것으로 일기를 좀 썼나 싶더니 독서록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좌절을 하고 만다.
이 녀석, 독서록을 쓰려면 먼저 무슨 책이던지 당장 읽어야 한다.
이미 읽은 것을 쓰라해도 늘 새로 꺼내 읽는다.
아마도 그 시간만큼은 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그러다보니 자연 독후감 한 편 쓸려면 족히 서너 시간은 걸린다.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써 온 독서록을 보면 글씨가 괴발개발1이다.
이어서 글씨에 대해 한마디 하려하면 글씨를 잘 쓰려하면 글이 쓰기 싫어진다고 하니 아이가 안쓰러운 엄마는 더이상 어쩌질 못하고 그나마 그것 써온 것도 다행이라 생각을 한다.
독서록 앞 장에는 읽은 책 제목을 써놓는 항목이 있다.
그 항목을 일정 수 채우면 선생님이 스티커를 주신다는데 그렇게 스티커에 목을 매는 녀석인데도 책을 읽으면 그 뿐 절대 책 제목을 써서 항목을 메꾸려하질 않는다.
하루는 내가 왜 네가 읽은 책을 이런데 기록을 안 하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그 책 모두 독서록을 써야한다고 자긴 책을 읽는 것은 좋은데 절대로 읽은 책 모두를 독서록에 기록할 자신이 없단다.
왼손잡이라 글을 한 줄 쓰고 나면 손과 노트 모두 새카매지기에 주의도 받고 그래서 그런지 쓰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기껏 다 쓰고 나면 또 글씨타령이니 누군들 글을 쓰고 싶을까!
"엄마,엄마는 어렸을 때 좋았지요?
길거리에 차도 많지 않아서 실컷 뛰어 놀았었죠?"
나처럼 숙제도 많지 않았었고 시험도 많이 안봤었고
그리고 엄마는 받아쓰기도 단어만 보고 우리처럼 문장으로 써서 띄어쓰기하는건 안 봤다면서요?
"응, 그래. 하지만 엄마도 어렸을 때 실컷 놀지는 못했었어.
엄마도 날마다 숙제하고 또 체육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는걸?
그리고 한 달에 한번씩 시험도 있었고,구구단이나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워서 친구들 앞에서 시험을 봤었지.
집에서 외운대로 잘 외워지면 다행인데 어쩌다 틀리면 얼마나 창피했었는지 몰라.
상혁이가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최소한 숙제는 해가야 친구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 아니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휴~!......."
상혁이는 온 몸을 비틀면서도 독서록을 써 왔다.
무당벌레에 관한 내용인데 신이 나서 내게 읽어줬다.
맨 끝에
'무당벌레는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그리고 무당벌레의 애벌레가 흰색이었다가 까맣게 되는구나.'
이렇게 느낀 점을 적었다.
"엄마, 난 진짜 무당벌레가 이렇게 색이 변하는 줄 처음 알았어. 너무 신기해."
"엄마, 인생이란 이렇게 힘든거에요?" 하던 녀석이
"엄마, 책이란 이렇게 마음이 상쾌해지는거네요." 한다.
- 전체단어관용구/속담예문본문 괴발-개발 발음 : 괴ː발개발, 궤ː발개발 품사 : 명사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으로, 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이르는 말. 담벼락에는 괴발개발 아무렇게나 낙서가 되어 있었다. 관용구 및 속담 [관용구] 괴발개발 그리다 글씨를 함부로 갈겨쓰다. - 괴발개발 그린 낙서. [본문으로]
'작은 새 만지기(childr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대평가된 엄마가 하는 일 (0) | 2008.11.09 |
---|---|
나,스트레스 받았어. (0) | 2008.11.02 |
우리 딸, 장하다규.... (0) | 2008.10.30 |
내 딸 맞능겨?? (0) | 2008.10.29 |
두근 두근 (0) | 2008.10.22 |